여성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f(x))의 멤버 엠버(Amber)는 얼마 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런 게시물을 올렸다. ‘오랜 시간 동안 저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제 몸을 창피하다고 여겼어요.’ 글은 계속 이어진다. ‘더 이상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항상 더 열심히 하고 더 강해지고, 이런 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예요. 완벽하지 않아도.’ 당당한 포즈로 거침없이 렌즈를 응시하는 자신의 사진과 함께였다.

ⓒ시사IN 양한모
해당 게시물은 사실 엠버를 서울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나이키의 새로운 컬렉션 홍보였다. 강렬한 메시지만큼이나 분명한 의도에 조금 아쉬워지려는 찰나, 엠버가 자신의 계정에 이런 글을 올렸다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대통령까지 읽었다는 〈82년생 김지영〉만 읽어도, 시중에 판매하는 휴대전화 케이스만 사용해도 갖은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여성 아이돌의 SNS 계정에 말이다.

엠버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꾸밈없이 그리고 꾸준히 밝혀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보편적으로 ‘여성스럽지 않은’ 외모는 데뷔 당시부터 엠버를 괴롭혀왔다. 특히 각종 프레임에 맞춘 전형성을 극대화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최적화된 아이돌 시장에서 그는 늘 모난 돌이자 외로운 섬이었다. 그룹을 위해 일부러 잡은 콘셉트가 아닌,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엠버의 일관된 목소리는 ‘여성 아이돌은 이래야 한다’는 구태 앞에 번번이 무너졌다. ‘f(x)는 혼성 그룹이냐’, ‘엠버(Amber)가 아니라 맨버(Manber)다’ 따위 악질적인 반응에 엠버는 2017년 10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WHERE IS MY CHEST?(내 가슴이 어디에 있지?)’로 대응했다. 아이돌은 물론 지금껏 한국의 어떤 연예인도 시도해본 적 없는 더없이 유쾌하고 명쾌한 자기 풍자 콘텐츠였다.

조회수 300만을 훌쩍 넘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에도 큰 화제를 모은 이 영상은 엠버에게 더 많은 주목과 용기를 선사했다. BBC·〈포브스〉 등 케이팝에 관심 있는 해외 유수 언론이 그를 인터뷰했고, 2016년 3월 발표한 싱글 ‘보더스(Borders)’도 새삼 주목받았다. 이민자 출신인 자신의 어머니를 소재로, 인종·성별·국적 할 것 없이 경계와 한계 앞에서 주저하는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만들었다는 노래는 다름 아닌 엠버 자신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Through the borders(한계를 넘어)/ Fight your way, fight your way(너의 길을 위해 싸워, 너의 길을 위해 싸워)’.

나고 자란 모습 그대로 노래하며 춤추고, 넘치는 생명력과 젊음을 과시하고,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타인의 삶에 긍정적 에너지를 전하는 일. 이것은 지금까지 엠버가 해온 모든 일의 근원이며 엠버라는 존재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외친 모든 것이다. 올해로 데뷔 9년차, 세상은 이제야 비로소 엠버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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