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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배터리’에 한국이 꽂은 빨대

2018년 08월 22일(수) 제570호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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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23일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보조댐이 무너졌다. 약 5억t의 물이 13개 이상의 마을을 휩쓸었다. 친기업적인 공적개발원조(ODA)가 이번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길이 770m, 높이 16m, 폭 8m. 쉽게 상상되지 않는 크기의 보조댐은 ‘새들(saddle) D’로 불렸다. 라오스 남동부 아타프 주에 자리한 수력발전소(410㎿급)는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다. 1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로, 본댐인 세피안·세남노이 댐을 비롯해 알파벳 A부터 F까지 이름을 붙인 다섯 개의 유량조절용 보조댐이 건설됐다. 내년 2월부터 상업 발전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지난 7월23일 보조댐 중 ‘D’가 무너졌다. 참사였다.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우기가 겹치며 약 5억t의 물이 13개 마을을 덮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민 6000명 이상, 사망자 131명, 실종자 100여 명. 피해 규모는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2012년 이 댐을 수주한 회사는 ‘PNPC’. 한국 기업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 타이 라차부리 전력, 라오스 국영 LHSE의 합작회사다. PNPC의 최대주주는 SK건설로 서부발전 지분(25%)까지 합치면 한국 기업이 전체 지분의 51%를 보유하고 있다. 향후 27년간 수력발전소 운영 수익을 얻는 BOT(Build Operate Transfer) 방식으로 계약됐다. 한국 정부는 라오스 국영 LHSE의 출자분 24%를 공적개발원조(ODA) 형태로 제공했다.

8월9일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기업인권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된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대응 한국 시민사회 TF(TF)’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공사인 SK건설과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TF의 주축 중 한 사람인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에너지지원센터 센터장은 2007년 한국국제협력단원으로 라오스와 인연을 맺은 대표적 ‘라오스통’이다. 2010년부터 최근까지 라오스 오지에 전기 공급을 위한 재생에너지 사업을 민관 합작투자사업(PPP)으로 진행했다. 8월2일 이 센터장에게 라오스 현지 분위기와 참사 원인을 들어봤다.

ⓒ윤성희
이영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에너지지원센터 센터장은 대표적인 ‘라오스통’이다.


세피안·세남노이 보조댐이 무너지면서 약 5억t의 물이 13개 마을을 휩쓸었다.

13개 마을이라는 것도 정확하지 않을 거다. 집계되지 않은 피해가 그보다 훨씬 많으리라 보고 있다. 구글어스로 라오스 지도를 보면 도로 표기 없는 곳이 대다수다. 특히 라오스는 국토의 70%가 산악지대로 산골 마을은 길이랄 게 없다. 도보로 움직이거나 오토바이, 경운기 등을 이용한다. 그것도 건기(10~4월)에만 가능하다. 우기(5~9월)에는 들어가지도 못한다. 최대로 잡아 7월 초까지 이동이 가능하고, 산골 마을은 그나마도 6월부터는 못 들어간다.

우기에는 주민들이 고립되는 건가.

일종의 하안거(夏安居)다. 국민 90%가 불교를 믿는 영향도 있겠지만 기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라오스 사람들에게 우기라는 건 모든 게 중단되고, 모든 걸 조심하는 시기다. 스님이 절에 스스로를 가두고 수행하듯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우기에는 결혼식도 안 한다. 안 한다기보다 못한다. 읍내도 7~8월에는 거의 안 움직인다. 포장도로가 놓인 곳은 산사태 위험이 있고, 저지대는 진흙 갯벌이 되기 십상이다. 불과 3~4시간이면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도 우기에는 12시간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버스 승객을 보면 짐도 무척 크다. 밥·물·담요·이불, 심지어 솥단지를 들고 타는 사람도 있다. 경험상 열 번 중 한 번은 이동 도중 고립당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이번에 참사가 난 지역 역시 그런 오지다. 대개 한국 사람은 라오스를 관광지로 기억하지만 650만 인구 중 70%가 그런 지역에 살고 있다.

불발탄과 지뢰가 토사와 함께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라오스는 베트남전쟁 당시 물자를 대기 위해 베트남이 이용한 ‘호찌민 루트’였다. 미국이 보급로를 끊겠다는 명목으로 전쟁 지역도 아닌 곳에 200만t 이상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군수공장의 재고 폭탄을 총동원했다. 정말 사람만 한 크기부터 손톱만 한 포탄 껍데기까지 온갖 종류의 포탄이 다 있더라. 라오스가 개방될 때 국제단체가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불발탄 제거였다. 이 사업도 주거지역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땅속에 묻힌 불발탄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지 않는다. 이번 참사로 마을에 유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Xinhua
7월24일 라오스 남동부 아타프 주 주민들이 지붕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참사는 세피안·세남노이 보조댐이 무너지며 발생했다.

라오스 정부가 ‘사망자 수를 축소하고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외신 취재도 공식적으로는 허용하지 않는다.

우선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은 라오스 국영기업도 출자한 합작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 책임을 축소하려는 측면이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참사 수습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반정부 기류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라오스는 49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나라고, 1975년 공산혁명 이후 일당독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소수민족 사이 큰 분쟁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분명 조용하고 안정적인 사회가 맞긴 한데…. 세피안·세남노이 댐을 비롯해 각종 댐이 건설되고 있는 지역 대부분이 산골 마을이고 주로 소수민족 거주지다. 지난 10여 년간 댐 건설로 인한 대규모 강제 이주가 빈번하다 보니 누적된 불만이 이번 참사를 계기로 터질 가능성이 있다. 주민이 아무리 문맹이라 해도 입소문은 나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도 한몫한다. 라오스가 수력발전 이전에 주력한 게 광산 개발인데, 여기에 투자한 외국 기업이 내는 세금이 라오스 정부의 매우 중요한 예산이었다. 과도한 개발로 광산 경제성이 없어지고 외국 기업이 철수하면서 공무원마저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 해마다 2~3개월은 반복되고 있다.

댐을 많이 짓는 이유도 경제적 문제와 연결되는 건가. 이미 현지에 크고 작은 수력발전소 46개가 있고, 2020년까지 54개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2010년에 라오스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을 알아보려고 에너지광산국(한국으로 치면 산업통상자원부)에 방문한 적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런데 왜 이렇게 무리해서 큰 댐을 많이 짓습니까?’ 물어봤다. 이미 라오스 내 메콩강 본류에만 9개의 대규모 댐이 있다. 에너지광산국장이 갑자기 화를 내면서 엄청난 두께의 사업보고서를 꺼내와 책상에 던지듯 내려놓더라. ‘이거 봐라,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라오스에 도움 된다고 우리한테 추천한 거다’라면서. 너도 ODA 하는 사람인데 왜 이들과 말이 다르냐고 따지는데 할 말이 없었다. 라오스 정부도 각성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이 정부의 부족한 역량을 이용해 선진국들이 정작 라오스에는 도움 될 것 없는 발전 방식을 계속 권하고 있다. 자기들 나라에서는 각종 규제와 감시의 눈 때문에 할 수 없는 ‘나쁜 개발’을 라오스에서는 너무 쉽게 한다.

ⓒ시사IN 신선영
8월9일 참여연대에서 ‘라오스 댐 사고대응 TF’ 기자회견이 열렸다. TF는 시공사인 SK건설은 물론 한국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라오스는 ‘아시아의 배터리’를 자임하고 있는데.


빛 좋은 개살구랄까. 실상은 주변국의 ‘전기 하청 국가’다. 라오스는 최빈국이고 별다른 천연자원도 없다. 심지어 인적자원도 없다. 한반도 1.2배 면적에 인구가 650만명밖에 안 된다. 유일하게 뽑아먹을 수 있는 자원이 메콩강이다. 세피안·세남노이 댐 역시 생산 전기의 90% 이상을 타이(태국)에 수출할 계획이었다. 거기에 한국도 이른바 ‘빨대’를 꽂은 거다.

댐 건설로 이주해야 하는 주민에 대한 지원이나 보상 역시 전무한 걸로 알려졌다.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은 한국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들어간 사업이다. 한국 세금이 사용된 공공사업이란 얘기다. 라오스 내 사이냐부리 댐은 민간 자본으로 지었는데도 이주민을 위한 정착촌과 학교를 지어줬다. 물론 허허벌판에 일종의 ‘전시용’으로 짓긴 했지만. 2013년 세피안·세남노이 댐 건설이 시작될 무렵 국제단체 활동가들이 어렵게 현장에 들어가 조사를 진행했다. 이주나 보상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전무했다. 라오스는 라오스 내 이주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보면 ‘국제적인 이동’이다. 소수민족이 많기 때문에 언어가 다 다르다. 또 숲과 물에 적응해 수렵과 채집, 어로로 삶을 꾸려온 사람들을 대뜸 평야 지역에 데려다놓고 농사지으라고 하면 못한다. 강제 이주는 인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폭력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ODA 사업인데 그런 방식이 가능한가.


ODA(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 ment Assistance)의 기본은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 해결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대 위원회’ 중 하나로 꼽히는 핵심 기구의 하나가 DAC(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이다. OECD 회원국이라고 다 DAC에 가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해외 원조 규모가 국민총소득(GNI) 대비 0.2% 이상이거나 1억 달러 이상이어야 하는 등 일정 조건을 갖춰야 한다(1996년 OECD 회원국이 된 한국은 2009년 DAC에 가입했다.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세계 최초 사례다). DAC에는 ODA 환경영향평가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빈곤 해결을 위해 경제적, 사회 문화적, 정치적 차원은 물론 환경과 성평등 요소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이상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안 된다. SK건설이 초기에 ADB 투자를 받으려다 실패했는데, 그 이유가 부적절하고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눈을 돌린 게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이고, 공기업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EDCF 자금을 끌어들이기도 쉬워졌다.

ODA에 기업이 참여하는 게 일반적인가.


기업의 ODA 참여는 국내에서 기존에 해왔던 사회공헌 사업보다 더 많은 책임감이 요구된다. 라오스 같은 최빈국일수록 규제가 덜하고 감시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을 정부가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를 기점으로 주도권이 완전히 기업으로 넘어갔다. 민관 합작투자사업(PPP·Public Private Partnership)에서 OECD나 UN이 권고하는 ‘민’은 중심이 시민사회단체(CSO·Civil Society Organization)다. 정부가 진행하는 대규모 ODA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직접 대면하는 비정부기구(NGO)를 늘리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국의 PPP는 친기업적이다. 한국도 초기에는 CSO 트랙만 있었는데 어느 순간 대학이나 연구소가 참여하는 아카데미 트랙이 생기고, 그러더니 이명박 정부 때 비즈니스 트랙이 생겼다. ODA를 해외자원개발이나 기업을 위한 ‘블루오션’으로 활용한 거다. 나는 그게 이번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ODA를 보면 수원국의 빈곤 퇴치보다는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나 ‘국익’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21세기형 식민지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한국 정부도 문제의식 없이 각 기관이 ODA를 ‘유행’처럼 진행한다. 시공사인 SK건설의 책임도 막중하지만 한국 정부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번 참사를 한국 ODA 방식이 변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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