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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저 북녘땅 언젠간 걸어볼 수 있겠지

2018년 08월 23일(목) 제570호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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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IN> ‘함께 걷는 길’ 행사의 일환으로 북한·중국·러시아 접경지를 둘러보았다. 육로로 러시아와 중국 국경을 넘고 멀리서 북한 풍경을 바라보며 통일 시대를 상상했다.

중국·러시아 국경 통과는 이번 여행의 특별 체험이었다. 2011년 중국 쪽 훈춘 세관까지 왔다가 건너편 러시아 쪽을 바라만 보고 돌아간 적이 있다. 이번에는 육로로 러시아 쪽 크라스키노에서 훈춘 세관으로 넘어갔다. 크라스키노에서 러시아 국경검문소까지는 17㎞, 국경검문소에서 러시아 출국사무소까지 민간인 통제구역이 약 13㎞, 그다음 러시아 쪽 세관을 지나야 한다. 차로 30분이면 닿는 거리다. 하지만 국경검문소-출국사무소-세관을 거치며 3~4차례 검문을 받으면 보통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날 우리가 맞은편 훈춘 세관에 도착하는 데 1시간45분 정도 걸렸다. 여행객들이라 버스에 탄 채 여권만 검사했다. 옌지 쪽에서 들으니 중국 기업은 장령자 세관을 이용해 자루비노 항으로 육상 물류를 이용하면 편할 법도 한데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통관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중국 쪽 세관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화물은 그대로 통과시키는데, 러시아 세관은 일일이 확인하며 까다롭게 검사한다. 중국이 자루비노 항으로 출해권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북한 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다.

ⓒ시사IN 남문희
북·중·러 3국의 접경 지역인 방천 용호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두만강 철교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북한의 두만강리역, 왼쪽은 러시아 국경도시인 하산 시다.
곧바로 북·중·러 3국의 접경인 방천으로 갔다. 여행 일정을 마친 뒤 함께 간 이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설문조사했더니 방천 용호전망대에서 바라본 북·중·러 3국 국경을 꼽았다. 그만큼 이곳의 풍경은 장관이다. 두만강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두만강 철교가 놓여 있고, 오른쪽은 북한의 두만강리역이다. 왼쪽은 러시아 국경도시인 하산 시다. 두만강 철교 넘어 앞녘 산봉우리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 활약했던 녹둔도라 한다. 저 멀리 동해가 아른거린다. 철교 못 미쳐 중국의 국경 끝을 알리는 토자패(土字牌)가 있다. 1886년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가 변경을 확정하고 우수리 강에서 두만강까지 8개 지역에 경계비를 세우기로 했는데, 게으른 청의 관리들이 동해를 10㎞ 앞두고 지금 위치에 경계비를 세웠다고 한다. 중국이 동해로 나갈 길이 막히고 그 뒤 동해 출해는 중국의 비원이 됐다.

그 출해의 꿈이 영그는 곳이 있다. 방천에서 훈춘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취안허 세관이다. 훈춘 쪽의 중국 세관인 취안허 세관에서 두만강을 가로질러 원정교를 건너가면 북한 쪽 원정리 세관이 나온다. 원정리 세관에서 54㎞를 달리면 북한 나진항에 닿는다.

ⓒ시사IN 안희태
육로로 러시아 쪽 크라스키노에서 중국 훈춘 세관(위)으로 넘어오는 동안 3~4차례 검문을 받았다.
ⓒ시사IN 안희태

중국 투먼에서 바라본 북한 남양의 모습.
원정교와 원정리 세관 그리고 나진항까지 도로는 사연이 많다. 2010년 11월 북·중 간 나진항 개발 합의를 할 때도 기존 원정교 옆에 새로운 다리를 놓고 나진항까지 도로를 개보수하기로 했다. 당시 중국이 나진항 4·5·6호 부두를 새로 건설해 50년 사용권을 갖는 대신 다리와 도로를 개보수해주고 그에 합당한 금광 개발권을 갖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사망으로 중단되었다. 그 뒤 재개돼 2016년 10월 신두만강 대교가 개통되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2차선 원정교 대신 4차선 새로운 다리가 놓여 있었다.

중국 투먼에서 바라본 북한 남양의 모습도 놀라웠다. 2년 전 큰물 피해로 남양의 낡은 가옥이 모두 물에 잠겨 다시 지었다더니 정말 그랬다. 예전 남루한 모습은 사라지고 새로운 주택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기존 투먼 대교 외에 이곳에도 새로운 다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훈춘-원정리 구간이 나진항으로 이어진다면, 투먼-남양 구간은 북한의 청진항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청진항 통해 동해로 나온다면

2010년, 2011년 당시 유행하던 중국의 ‘창지투 프로젝트’는 창춘·지린·투먼과 북한의 나진·선봉을 연계 개발한다는 국가급 계획이었다. 훈춘에서 나진항으로 헤이룽장성의 석탄을 수송하려고 했다. 실제로 다롄의 창리라는 회사가 트럭 수십 대에 석탄을 싣고 나진항까지 가서 나진항에서 다시 배로 상하이 근처 닝보까지 수송했다. 몇 차례 해보니 문제가 많았다. 특히 석탄가루 때문에 도로가 더러워졌다. 당시 투먼 시 정부 차원에서 투먼과 북한 남양 간 철길을 손봐 청진항까지 열차로 수송하는 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진항보다 규모가 큰 청진항을 뚫고 동해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니 북·중 간에 이미 합의가 끝나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5월7~8일 중국 다롄 방문 당시 북·중 간에 청진항 부두를 중국이 개보수해 50년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시진핑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철도·도로와 관련해 한반도의 서해안 쪽으로 연결하는 방안과 동해안 쪽으로 연결하는 방안 중 어디를 택하겠는가라고 묻자, 김 위원장이 나진 선봉을 홍콩을 능가하는 국제도시로 키우고 싶다며 동해안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즉 훈춘-나진-청진을 철도와 도로로 잇고 청진에서 평양으로 잇는 것이다. 중국 일대일로의 6번째 루트가 중국-몽골-러시아를 잇는 것인데, 이 중 투먼 루트가 훈춘-하산-자루비노 그리고 훈춘-나진을 잇는 것으로 거론돼왔다. 일각에서 일대일로의 북한 쪽 목표는 나진이 아니라 청진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일대일로의 한반도 쪽 투먼 루트의 끝은 훈춘-나진이 아니라 훈춘-청진(항)일 수 있다. 북한은 청진항 사용 대가로 중국에서 거액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청진 아래쪽은 남북이 동해선과 경원선을 이을 예정이다.

ⓒ시사IN 안희태
압록강가에서 바라본 북한 혜산시. 혜산은 양강도 도청 ㅁ소재지다.
ⓒ시사IN 안희태
중국 지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위)와 장수왕릉. 두 유적은 고구려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시사IN 안희태
중국 지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와 장수왕릉(위). 두 유적은 고구려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중국 배가 나진항을 통해 동해로 나올 때도 동북아 정세가 출렁였는데, 앞으로 나진항보다 더 큰 청진항으로 나오려 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한다. 물론 중국은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동안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 때문에 북한을 일대일로 대상국에 포함시키지 않고 기다려온 것처럼 청진항 사용 문제도 북한 비핵화의 정도를 보아가며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젠가 중국이 청진항을 통해 동해로 나올 때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 여행 일정은 백두산 서파를 거쳐 압록강가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처음 가는 길이었다. 장백에서 하루를 자고 압록강변 북한 혜산시를 바라보았다. 두만강가에서 바라보던 북한 국경도시와는 스케일이 달랐다. 혜산은 양강도 도청 소재지다. 큰 도시이기 때문에 스케일이 다를 수 있지만 중국 지안에서 바라본 북한 만포도, 단둥에서 바라본 신의주 모두 두만강가 북한 도시와는 달랐다. 산사태로 도로가 끊겨 압록강가를 타고 끝까지 내려오지 못한 게 유감스러웠다.

중국 지안의 고구려 유적 하면 광개토대왕릉비, 장수왕릉, 환도산성만 생각했다. 광개토대왕릉이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반도로 쪼그라들기 전 대륙을 누비고 다닌 이 무덤의 주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동북아의 외로운 섬처럼 나뉜 남과 북이 이제 닫힌 빗장을 풀고 문호를 열려고 하는 지금 그의 지혜를 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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