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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값 흥정하는 무장세력의 총부리

2018년 08월 20일(월) 제570호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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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 한국인 남성이 리비아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리비아에서 납치는 이미 하나의 사업이다. 정치인·사회운동가·외국인 등 ‘몸값’ 높은 이들이 납치의 표적이다.

리비아에서 한국인 1명이 무장세력에 납치되었다. 7월6일 리비아 서부 자발 하사우나 지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장 민병대가 한 회사의 캠프에 침입해 한국인 1명과 필리핀인 3명을 납치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외국인 50여 가구가 체류하는 곳이다. 오전 8시에 침입한 상황으로 보아 납치범들은 경호가 소홀한 시간대를 노린 듯하다. 통상 외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은 경호가 삼엄하다. 하지만 사건이 벌어진 날은 금요일로 이슬람권 휴일 예배인 ‘주마’가 있는 날, 즉 공휴일이다.

납치된 우리 국민은 60대 남성이다. 리비아에서 동아건설이 대수로 건설을 한 후 수자원을 관리하는 현지 회사에 17년간 근무한 기술자로 알려졌다. ‘아랍의 봄’ 이후 급격하게 나빠진 리비아 치안 상황 때문에 한국 정부는 2014년 리비아를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그는 리비아에서 20년 이상 오랫동안 체류하며 생업에 종사했기에 철수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218NEWS 페이스북
리비아에서 무장세력에 납치된 한국인 남성(아래)은 동영상에서 “대통령님,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리비아의 수자원 관리 회사는 공기업이다. 원칙적으로 리비아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의지를 갖고 이번 납치 사건을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리비아 정부는 그럴 능력이 없다. 현재 리비아 안에는 2개의 정부가 존재한다.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라진 뒤 우후죽순 등장한 세력들 가운데 겨우 들어선 리비아 임시정부는 이슬람주의파와 세속주의파로 분열되었다. 리비아 사람들은 각자 정부가 차지하고 있는 지역 이름을 따서 ‘트리폴리 정부’와 ‘토브루크 정부’라고 부른다. 여기에 이슬람국가(IS)까지 등장해 ‘제2차 내전’을 방불케 할 만큼 혼란한 상태다. 국제사회에서 공식 정부로 인정받는다는 조건으로 연정 형태의 ‘리비아 통합정부(GNA)’를 세웠지만, 분열은 여전하다.

리비아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도 직면해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난민선을 탔다가 지중해에서 희생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들에게 그나마 안정적인 직장은 각 부족의 민병대다. 이번 납치 사건이 발생한 리비아 서부 지역은 여러 부족끼리 분쟁이 잦아 각자 무장 민병대를 두고 있다. 납치 사건의 범인들도 이들 중 하나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리비아에서도 미개척지나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은 발생 후 27일이 지나서야 한국에 알려졌다. 하지만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활동하는 한 온라인 뉴스 기자는 “현지에서는 7월6일 당일부터 바로 뉴스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이 늦게 알려진 건 우리 외교부가 한국 언론에 엠바고(보도 시점 유예)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가 자칫 납치범과의 협상에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엠바고는 <218 뉴스>라는 리비아 현지 매체가 한국인 남성이 인질 상태로 촬영된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깨졌다. 동영상에서 그는 영어로 “대통령님,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동영상이 실마리가 되었다. 첫째, 인질이 입고 있는 옷이 평범한 반팔 티셔츠였다. 과거 여러 납치 사건에서 IS 등 이슬람 급진 세력은 인질들에게 오렌지색 옷을 입히거나 이슬람 복장을 하게 한 경우가 많았다. 둘째, 영어로 말하도록 시킨 것은 인질로 하여금 납치범의 다른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려는 의도다. 또한 자신들의 은신처가 발각되지 않게 사막 한가운데에서 촬영했다. 셋째는 대통령을 언급한 부분이다. 우리 정부와 직접 협상을 원한다는 의미다.

ⓒAP Photo
현재 리비아에는 2개의 정부가 존재한다. 위는 2011년 10월22일 시르테에서 벵가지로 돌아온 리비아 반군을 환영하는 시민들의 모습.
<218 뉴스>는 협상 창구가 될 수 있을까


<218 뉴스>는 2017년 설립된 리비아 민영 무료 위성방송 채널이다. 이 매체의 설립자는 리비아 출신 여성 인권운동가 후다 에스라리와 반카다피 활동가 무자히드 보시피 부부다. 부부는 페이스북과 온라인 매체를 같이 운영하며 성공한 리비아 언론인으로 평가받는다. <218 뉴스>는 TV도 운영하지만 납치범들은 페이스북 뉴스를 택했다. 한국에서 이 동영상을 직접 봐주길 바라는 의도로 보인다. <218 뉴스> 홈페이지 및 페이스북에는 해당 영상을 입수한 기자 이름 등 영상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다. 만약 <218 뉴스>와 납치범 간에 어떤 관계가 있다면 우리 정부가 납치범들과 연락을 취하는 창구가 될 수도 있다.

리비아에서 납치는 이미 하나의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리비아 총리도 납치된 적이 있다. 트리폴리 임시정부의 총리였던 알리 자이단은 과거 두 번이나 납치됐다 풀려났다. 올해 3월 압델라우프 바이텔말 트리폴리 시장은 집으로 들이닥친 무장단체에 납치됐다가 간신히 풀려났다. 모하마드 에스테위 미스라타 시장은 2017년 12월 터키에서 귀국하던 길에 납치됐다가 협상 과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슬람권 적십자 단체인 ‘리비아 적신월사(Red Crescent)’는 2014년 2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약 1년2개월 사이에 600명 이상이 납치됐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리비아 통합정부 내무부는 트리폴리에서 2017년 3월 한 달간 189명, 4월 한 달간은 68명이 납치되었다고 발표했다. 납치의 표적은 정치인, 사회운동가, 기업가 등 몸값이 높은 이들이다.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리비아 당국은 타리크 후네이쉬가 이끄는 무장세력이 자신의 형제이자 조직 핵심인 알무바라크 후네이쉬의 석방을 목적으로 한국인과 필리핀인 등 4명을 납치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알무바라크 후네이쉬는 민주화 운동으로 축출된 카다피 추종자들과 연계된 조직을 이끌며 치안 불안을 일으킨 혐의 등으로 지난해 10월 체포됐다. 납치 당시 인질의 물품을 빼앗은 것으로 미루어 알무바라크의 석방 외에 금품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리비아에서는 과거 금품을 통해 많은 납치 사건이 해결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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