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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1번지에 출마한 ‘순천댁’, 국회를 접수하다

2018년 08월 23일(목) 제570호
김형민 (SBS CNBC PD)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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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순천은 임영신에 이어 두 번째로 국회에 진출한 여성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남자들의 공격에도 생리휴가를 관철하고 간통쌍벌제를 통과시키는 등 여권 신장에 앞장섰다.

요즘 썼다간 경을 칠 표현이지만, 살아오면서 심심찮게 들었던 말이 있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울 때 뱀 혀처럼 불쑥 튀어나오던 말이었지. 이 기원은 아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단다. 기원전 11세기, 중국 은나라 주왕이 여자에 빠져 어지러운 정치를 펴자 주나라 무왕이 이를 비난하며 이렇게 얘기했거든.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고 울면 집안이 망한 것이다.” 그 후 장장 3000년 동안 남자들은 이 말을 스스럼없이 써왔다. 하물며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쯤 여자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면 어땠을까?

1948년 5월10일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여성들이 있었지만 여지없이 “암탉이 울면…”의 표적이 되었어. 대구에서 출마한 김선인 후보의 선거사무소는 수십 차례나 공격을 받았고, 선거 당일 아침에는 “투표장에 나타나면 사살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고 해(<조선일보> 2015년 2월13일자).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은 1949년 보궐선거에서 탄생했지. 임영신이라는 사람이었어. 이승만 대통령은 임영신을 상공부 장관에 임명하는데, 놀랍게도 상공부의 일부 공무원들은 장관에게 결재받기를 거부했다는구나. “서서 오줌 누는 우리가 어찌 앉아서 오줌 누는 족속한테 결재를 받나.”

ⓒ연합뉴스
1973년 8월 박순천 여사(오른쪽)가 중앙정보부에 납치되었다 돌아온
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서서 오줌 누는 걸 대단한 유세로 알던 지질한 수탉들이 판을 치던 시절, “암탉이 낳은 병아리가 이렇게 꼬꼬댁거리니 길러서 쓰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일갈하고 “암탉이 울면 알을 낳아 가정과 사회에 이익을 보탰는데 장닭은 울어서 무엇을 보탰습니까?” 호통치던 용감한 ‘암탉’이 있었단다. 박순천(1898~1983)이라는 분이야.

생몰 연대에서 보듯, 이분은 19세기에 태어났어. 어릴 적 이름은 명련(命連). 부산의 일신여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인 선생을 골탕 먹이고 천황의 초상화를 북북 긁어놓는 등 범상치 않은 기질을 내비치던 박명련은 여학교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전국적으로 벌어진 3·1 항쟁에 가담한단다. 일본 경찰의 추적을 피해 제자의 오빠 집에 숨었는데, 그만 동네에 수상한 처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쫙 퍼졌어. 그때 숨겨준 제자 오빠의 부인은 이렇게 둘러댔다는구나. “순천으로 시집보낸 동생인데요. 에그, 소박을 맞고 왔지 뭐예요. 남우세스러워서.” 이렇게 하여 여교사 박명련은 ‘순천댁’이라는 별호를 얻게 됐는데, 후일 아예 박순천으로 개명을 해버린다.

해방 이후 박순천은 대한부인회 등 여성 단체를 만들고 부인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사회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하니 나대지 마라”는 멍청한 수탉들의 편견을 깨고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여성 19명 중 하나가 돼. 그것도 정치 1번지라 할 서울 종로에서.

상대는 후일 대한민국 대통령까지 역임하는 윤보선이었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지만 낙선하고 말아. 당시 박순천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이희호 여사(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에 따르면 낙선한 가장 큰 원인은 홍등가 때문이었다는구나.

박순천이 이끌던 대한부인회는 ‘간통쌍벌죄’를 목청 높여 외치고 있었어. 1948년 당시 간통죄는 아주 엉뚱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어. 남녀가 간통을 했을 때 여자는 범법자로 처벌받지만 남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던 거야. 그야말로 ‘음란한 암탉’만 벌하여 ‘수탉들의 질서’를 지키겠다는 수작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대한부인회는 “간통한 남녀 쌍방 모두를 처벌하라”는 간통쌍벌제를 외쳤던 거야. 한데 박순천의 지역구인 종로에는 당시 국내 최고의 홍등가가 자리 잡고 있었거든. 돈 많고 심심한 남자들이 무시로 드나들며 눈에 드는 기생과 놀아나고 두 집 살림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지. 간통쌍벌제가 적용되면 당장 장사가 안 될 게 뻔한 이치였고, 홍등가의 여성들은 “여성은 여성에게 투표합시다” 부르짖는 박순천을 외면했다는구나(<한겨레> 2015년 5월24일자).

그러나 박순천은 굴하지 않고 1950년 5월30일 실시한 2대 총선에 나섰고, “입에 붉은 칠도 지우고 얼굴에 지분도 잊어버린 박순천 여사는… 종로갑구라는 어마어마한 구에서 출마 처음부터 리드하여 드디어 1만250표라는 놀라운 숫자를 얻어 국회의원 의석을 차지(<동아일보> 1950년 6월1일자)”하게 된다.

박정희도 ‘누님’이라 불렀던 여장부

야무진 암탉의 위력은 대단했어. 공무원들이 ‘앉아서 오줌 누는 장관 결재 거부’를 시전하던 시절에 5선(選)이라는 위업을 이룬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쌓았다고 칭송할 만하지만, 그 기간 내내 그녀는 국회의 꽃이 아니라 남자들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호랑이였다. 6·25 전쟁 당시 박순천은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하고 숨어 지낸 국회의원 21명 중 하나였어. 서울이 수복된 후 인민군에 걸려들어 어쩔 수 없이 부역했던 국회의원 3명을 징계하자는 논의가 나왔을 때 박순천은 이렇게 호통을 친단다. “국민과 국가의 재산을 하룻밤 사이에 공산도당에게 넘겨주고 도망갔다가 이제 돌아온 사람들이 시민들과 더불어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에게 용서할 사람,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구분하겠다 하니 차라리 (부역) 방송한 3명뿐 아니라 21명을 모두 한꺼번에 징계하라.” 부역자로 몰리면 어느 서슬에 죽을지도 모를 전시에 말이야.

박순천 의원은 당시 수탉들의 등쌀에 야윌 대로 야위었던 여권(女權)을 향상시키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근로기준법 제정 과정에서 생리 기간 중 격무가 임신에 미칠 피해와 생리 중 괴로움을 감안하여 하루를 유급휴가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이를 관철했고, 출산휴가 등을 법적으로 보장하도록 했지. 또 한때 그녀에게 좌절을 안겼던 간통쌍벌제를 기어코 통과시키는 숙원을 이룬다.

당시 대법관 최병주라는 양반이 “여자만 처벌해야 한다. 여자는 남자와 생리적으로 다르고, 심리적으로 다르며, 또한 남자의 성욕과 다르다”(<한겨레> 2008월 11월7일자)고 떠벌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텼어. 1953년 피란 국회에서 간통쌍벌제는 정원 112명 중 찬성 57표, 딱 1표 차이로 통과됐단다.  

젊은 날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정치인들도 고개를 숙이고, 박정희 대통령까지 사석에서는 누님이라 불렀다는 여장부 국회의원. 물론 그녀에게도 친일 시비는 따라다니고 유신 정권 때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투항해버린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을 파악할 때 우리는 그 빛 때문에 어둠을 놓쳐서도 안 되고, 어둠을 의식하며 빛을 지워서도 안 돼. 인생은 짧고 그 각양각색의 인생들을 물감 삼아 이리 짜고 저리 칠하며 역사는 기나긴 캔버스를 그려나가는 거니까. 어느 날 기자가 “(국회 안에 여성) 혼자라서 외롭습니까?”라고 물었단다. 그때 박순천 의원은 쓸쓸하게 이렇게 대답했다는구나. “나에게 남성·여성의 구별조차 남았을 성싶어요? 차라리 고독했으면 오죽 좋겠어요.” 고독마저 느낄 수 없을 만큼 절대적 남초 사회에 상륙해서 싸우고 살아냈던 한 여성 국회의원. 그 의미는 지대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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