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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수업의 가벼움

2018년 08월 17일(금) 제570호
이윤승 (서울 이화미디어고 교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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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성화고나 자사고는 매년 신입생 모집을 위해 중학교에 홍보 활동을 나간다. 과열된 홍보전에 재학생도 동원된다. 수업은 뒷전이다.

나는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 첫 시간마다 ‘왜 모두가 수학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수학교육론에 따르면 수학을 배우는 이유는 논리적 사고 능력의 배양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주된 대답은 시험과 성적, 진학이다. 학교가 내게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논리적 사고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수학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과 수업은 시험을 목표로 진도를 나간다. 그러다 보니 시험이 끝나면 교사와 학생은 목적을 잃고 만다. 고3 학생들이 수능이 끝난 후에 “우리가 왜 학교에 나와야 하나요?”라고 묻는 것은 10여 년간의 습관에 따른 당연한 의문이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딴짓이라도 하면 바른 태도로 수업을 경청하라고 말하지만, 고등학교 입시 홍보철이 되면 너도나도 학생들을 동원해 중학교로 달려간다.

ⓒ박해성 그림

특성화고, 자사고 등은 매년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중학교에 홍보 활동을 나간다. 성적이 좋은 중학생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다 보니 학교 홍보는 점점 빨라지고 과열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매년 서울과 경기도 100여 곳의 학교에 홍보를 나가고 있다. 입학설명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전달하기 위해, 혹은 중학생들과 직접 만나 학교와 입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학교를 여러 차례 방문한다. 중학교는 ‘진로 탐색’ ‘진로 멘토링’이라는 이름을 붙여 고등학교에 입학설명회를 열어달라는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고, 고등학교 교사는 미달 사태를 막기 위해 이 기회를 활용하여 어떻게든 학교의 장점을 어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에 학생이 투입된다. 아무래도 중학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모교 출신 재학생의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교사들은 먼저 자신이 홍보를 맡은 중학교의 졸업생을 찾는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홍보를 같이하자고 권유한다. 학생은 대부분 동의하고 수업을 빠지고 교사와 모교를 찾는다. 적게는 2시간, 많게는 4시간 정도의 수업을 빠진다. 교육청 지침에 따르면 해당 학생을 위해 보강을 해주라고 하지만 홍보 때문에 수업에 빠지는 모든 학생을 보강하기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이 빠지기 때문이다. 학생의 수업권을 침해한다고 항의해봐야 돌아오는 건 학교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소리뿐이다. 더구나 수업을 빠지는 학생도 좋아라 한다. 학생들은 서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재미없는 수업을 듣고 있느니 간식도 먹으며 모교를 방문하고 오는 게 더 즐겁다고 한다.

수업이 정말 배움과 깨달음의 시간이라면…

안타깝지만 내가 학생이었어도 그랬을 것 같다. 학교에 오는 이유와 목적이 교과 수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닌 학생에겐 더욱 그럴 것이다. 어차피 시험과 성적을 위한 수업이 대부분이다. 수업이 정말 배움과 깨달음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사도 학생에게 수업을 빼먹고 나가자는 권유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 말은 안 하지만 학생도 교사도 알고 있다.

수학 수업 첫 시간, 내가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모두가 수학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수학을 잘 못한다고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수학 문제를 잘 풀지 못해도 인생을 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수학 수업을 할 것이며 내 목표는 1년 동안 잠시라도 ‘수학의 즐거움은 이런 것이구나’라고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잘 안 될 때가 많지만 어쨌든 그게 내가 수학 수업을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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