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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 닮은 하모니카 연주

2018년 09월 06일(목) 제572호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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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제덕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하모니카 연주자이다. 서정적 감수성과 화려한 테크닉을 갖춘 그의 연주는 독보적이다. 그와 같은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는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정도다.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전제덕

ⓒ전제덕 제공
전제덕은 정규 음반 석 장과 리메이크 음반 두 장을 발표했으며,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 및 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했다.

한 뼘 남짓한 크기의 하모니카는 사람 체온에 가장 가까운 악기다. 사람의 들숨과 날숨만을 이용해 연주하는 악기는 하모니카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전제덕은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하모니카 연주자이다. 서정적 감수성과 화려한 테크닉을 동시에 갖춘 그의 연주는 독보적이다. 그와 같은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 그는 생후 보름 만에 찾아온 원인 모를 열병으로 시력을 잃었다. 이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 재학 중 사물놀이를 익힌 그는 세계 사물놀이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하모니카에 빠져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기의 주력 악기를 바꾼다는 것은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야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는  익숙한 사물놀이를 그만두고 스무 살 이후에 독학으로 하모니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의 모든 걸 해체했다가 새롭게 다시 익힌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치열하게 노력해서 결국 국내의 대표적인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가 되었다. 그는 정규 음반 석 장과 리메이크 음반 두 장을 발표했으며,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 및 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했다.


이기용:어떻게 음악에 사로잡히게 되었나?

전제덕:중학교 2~3학년 때 라디오에서 록이나 R&B 등을 듣기 시작하면서 머리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웃음). 놀라서 며칠 밤을 새우며 들으며 그렇게 음악에 빠졌다. 나에게 음악을 듣는 것 이상의 큰 기쁨은 없었던 것 같다. 몸도 불편하고 비도 오는데 혼자 밖에 나가 음반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듣는 날엔 그 기쁨이 너무 컸다.

이기용:그때를 떠올리는 지금도 얼굴에 행복감이 가득해 보인다. 악기를 새로 익혀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는데도 하모니카를 선택한 이유는?

전제덕:나는 10대, 20대 시절에 서양음악을 하지 않고 사물놀이를 했다. 당시에는 제작자를 만나지 못해서 음반을 낼 수 없었다. 그때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음반으로 구현하지 못했다. 그러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투츠 틸레망(벨기에의 세계적인 하모니카 연주자)’의 하모니카에 매료되었다. 그 이후로 하모니카라는 악기를 새로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하모니카로 연주 음악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열심히 하모니카를 한다면 음악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기용:스무 살 넘어 새로 배운 하모니카 연주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전제덕:처음에 하모니카라는 악기가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하모니카 연주로 빠른 음악보다는 발라드 같은 걸 많이 듣다 보니까 조금만 하면 뭔가 할 수 있을 줄 알고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프로의 세계로 들어가니 그런 게 아니었다. 그때부터 연구와 분석이 필요했다. 악보의 도움 없이 하모니카를 연주하기 위해 같은 음반을 천 번 넘게 듣다 CD가 손상되기도 했다. 입술이 부르트며 한 달에 하모니카 하나를 못 쓰게 할 정도로 연습했다. 그 무렵 내게는 ‘보통의 시각장애인들처럼 안마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음악을 너무 하고 싶었고 음악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이기용:지금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하모니카 연주자가 되었다. 꿈을 이룬 셈이다(웃음).

전제덕:이제는 후배들 중에 좋은 연주자가 많이 생겼다. 그 친구들이 얼마만큼 올라올지 궁금하다. 많이 올라오면 안 되는데(웃음). 어쨌든 젊은 친구들이 하모니카를 자기 방식으로 클럽이나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좋다. ‘내가 하모니카로 처음 연주 음악을 시작해서 저 친구들이 지금 이렇게 연주를 하는구나’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이기용:노래를 만들 때에도 자신만의 방식이 있을 것 같다. 곡 작업은 어떻게 하나?

전제덕:예전에는 컴퓨터로 많이 했는데, 고생도 많이 하고 번거로움이 있어서 지금은 그렇게 잘 하지 않는다. 지금은 내 머릿속에서 음악의 구조가 통으로 완성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어떤 악기를 쓰고 어디에 배치할지 하나하나가 완성된 후에야 악보를 만든다.

이기용:마치 머릿속에서 악기로 집을 짓는 것 같다. 그런데 전제덕의 음악은 3집 <Dancing Bird>나 <And So It Goes> 같은 앨범처럼 점점 따뜻한 감성을 담고 있다.

전제덕:내가 평생 동안 그렇게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런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닐까 (웃음). 사실 내가 내고 싶은 궁극의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와 같은 하모니카 소리다. 어떻게 보면 곡 전체의 멜로디를 이끄는 악기들에 노래하고 싶은 사람의 본능을 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많은 분들에게 따듯한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다.

이기용:다른 장르가 아니라 재즈에 바탕을 둔 이유가 궁금하다.

전제덕:재즈는 어떤 틀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다. 재즈의 어떤 틀은 굉장히 엄격하게 지켜지지만, 그 틀 안에서 연주자의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공간을 확장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래서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연주까지 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이기용:요새같이 음반이 잘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연주 음반을 앨범 단위로 내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을 듯하다. 제작비 부담도 있을 테고.

전제덕:사실 힘들다. 사람들이 연주 음악을 잘 안 듣는다. 예전에 케니 지(미국의 색소포니스트)가 나오는 바람에 사람들이 잠깐 들었다가(웃음), 요즘엔 또 안 듣는다. 그래서 늘 앨범을 낼 때 이게 과연 맞나 싶어 회사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결국은 늘 다시 정규 앨범을 만드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나의 작업이 다양하게 음악을 듣는 층을 넓히는 데 보탬이 되면 기쁠 것 같다.

이기용:자신의 앨범 하나를 추천한다면.

전제덕:3집이 좋을 것 같다. 편하게 들을 수 있고, 하모니카 소리도 잘 표현된 것 같다. 그중에서 ‘Dancing Bird’와 ‘Come Back As A Flower’ 같은 곡을 추천하고 싶다.

이기용:다음 음반 계획은?


전제덕:아직 다음 정규 음반을 어떻게 만들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하모니카 연주 외에 한두 곡은 내가 직접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작년에 발표한 ‘Breezin´’ 같은 곡에서 전제덕은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창문 틈으로 봄이 오는 것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하고, ‘Dancing Bird’에서는 새가 지저귀며 날아가는 몸짓이 바로 눈앞에서 보이는 듯하게 들려준다. 그 어느 소리도 필요 이상 무겁지 않다. 실제로 만나본 그는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했다. 혼자서 통과해왔을 많은 어려움을 어느 순간 이겨낸 듯 그의 음악엔 무거운 자의식 대신 자유롭게 흐르는 음악의 날갯짓이 있었다. 그는 이미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하모니카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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