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양한모

아직도 박재범을 아이돌 카테고리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묘한 죄책감이 든다. 물론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2004년 JYP 엔터테인먼트의 시애틀 오디션에서 합격하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2008년 2PM으로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박재범이 걸어온 길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포 출신 케이팝 아이돌의 삶 그 자체였다.

만일 그 커리어가 이어졌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케이팝 역사가 쓰였을 것이다. 리더 구실은 물론이고 춤과 노래, 예능감 모든 면에서 발군의 재능을 발휘하던 박재범은 데뷔 전 온라인 개인 공간에 남긴 게시글로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뒤 팀도 회사도 떠났다.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고향인 미국 시애틀로 돌아간 그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부터 불리던 이름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이 팍(Jay Park). 새 이름으로 연 인생 2막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새로운 기획사를 찾고, 영화를 찍고,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특히 음악 작업이 대단했다. 첫 솔로 미니 앨범 〈Take A Deeper Look〉(2011)을 시작으로 〈New Breed〉(2012), 〈Evolution〉 (2014) 등 정규 앨범이 잊을 만하면 발매되었다. 놀라울 정도의 속도와 양, 질이었다.

세간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한 건 이즈음이었다. 다소 소란스러웠던 그룹 탈퇴 시절이 서서히 잊히며 그 자리를 음악과 스타일이 채웠다. 그리고 그는 2013년 레이블 AOMG를 설립했다. 힙합 그룹 ‘슈프림팀’ 출신 사이먼 도미닉을 공동대표로 내세운 그는 힙합을 베이스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명확히 보여주는 음악가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그레이, 로꼬, 차차말론, 후디, 코드쿤스트, 우원재 등이 그렇게 모였다. 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국내외가 주목했다. 박재범은 음악성을 중심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한국대중음악상, 한국힙합어워즈 등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2017년 7월 미국 힙합 음악가 제이지(Jay-Z)가 설립한 레이블 ‘록네이션’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으며 게임의 승자가 되었다. 그는 아이돌 출신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음악 신 안에서도 손꼽히는 자수성가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러한 성공 가도가 더욱 의미 있는 건, 그가 이 모든 성과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솔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휴식다운 휴식을 취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힙합 스왜그(swag)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2PM 시절도, KBS2 TV 〈불후의 명곡〉 출연도, 〈SNL〉 패널로 활약한 시절도 모두 자신의 모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제도권 밖에서 거둔 이 유쾌하고 멋진 성취는 지난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동시에 미래를 스스로 제한하지도 않으며 그저 무한히 확장해간다.

그리하여 이것은 아이돌의 미래가 되기도, 한국 가요계의 미래가 되기도, 아니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한 청년의 미래가 되기도 한다. 비보이와 알앤비, 힙합과 아이돌, 한국과 미국, 좀처럼 쉽지 않을 것만 같던 이 모든 영역의 연결고리를 자처하며 흥겹고 치열하게 활동하는 사람.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겪은 이에게서 느껴지는 여유가 기분 좋다. 믿음직스럽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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