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의무 가입이다. 지난해 가입자는 2182만4000명, 수급자는 471만6000명에 달한다. 그만큼 ‘내 문제’라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국민연금은 종종 ‘분노’의 대상이 된다. 5년마다 재정추계 결과가 발표될 때면 더 그렇다. 외국에서도 국민연금은 수백만명을 거리로 나오게 하고, 잘못 건드리면 정권이 날아가는 논쟁적 이슈다.

〈시사IN〉은 제4차 재정추계 결과가 발표된 8월17일부터 8월26일까지 열흘간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댓글 많은 기사’ 5위 안쪽에 든 국민연금 기사를 추렸다. 댓글이 공감순으로 정렬된 8개 기사 가운데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을 10개씩 살펴봤다. 이 80개 댓글에서 빈번히 발견되는 ‘정서’를 추출했다. 정교하게 표본을 설계한 여론조사와는 다르지만, 국민연금의 어떤 지점이 여론을 건드리는지 ‘날것’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다.

80개 댓글에 나타난 여론을 살펴본 결과, 시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을 대략 다섯 갈래로 추출할 수 있었다. 첫째, 의무 가입에 대한 반감이다. 〈TV조선〉의 8월18일 기사 ‘내 노후에 간섭 마라… 국민연금 개편안에 뿔난 민심’의 경우, kimh****가 쓴 “국민연금 폐지해주세요~~~!!!”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공감(공감 3만2342명)을 기록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 그만 좀 빼앗아가라”(carm****)도 1만1575명의 공감을 받았다. 다른 기사에서도 “하고 싶은 사람만 가입하게 바꾸고 원금만 줘라. 하루 한 끼 라면만 먹는다ㅜㅜ”(zhan****, 공감 3212명), “강제로 가입시키고 강제로 돈 걷어가고 강제로 더 가져가겠다는데 어떤 사람이 좋아하겠냐? 칼만 안 들었지 강도하고 뭐가 다르냐?” (toto****, 공감 2453명) 같은 댓글이 인기를 끌었다.

ⓒ시사IN 이명익

둘째, 이 같은 폐지론이 나온 배경인 ‘기금 고갈’과 그로 인한 후대의 보험료 ‘폭탄’ 우려다. 〈뉴시스〉의 8월17일 기사 ‘국민연금 2057년 고갈… 보험료율 11∼13.5%로 올려야’ 기사에 이용자 dyda****는 “더 이상 폭탄 돌리기를 두고 볼 수만 없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일시금을 수령하게 해달라는 청와대 청원 링크가 적힌 이 댓글에 9127명이 공감했다. 〈중앙선데이〉의 8월18일 기사 ‘[단독] 국민연금 방치하면 자식 세대 보험료는 소득의 24.6%’에는 “후대에 부담이 크죠. 그러니 폐지하세요. 이건 사기예요. 다단계 피라미드예요. 먼저 가입한 사람만 이익 보는”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3645명이 공감했다. 

이 같은 국가의 ‘다단계 사기’를 막기 위해 셋째, 설령 폭탄이 터지더라도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나온다. “국가가 망하더라도 보장한다는 문구 명문화해야 된다”(eiss****, 공감 3492명)라는 댓글이 대표적이다. 이는 다시 넷째,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는 다른 연금과의 형평성으로 이어진다. “공무원만 국민이냐? 국민연금만 개혁? 결사반대한다~”(sein****, 공감 1만8103명). 다섯째로 화살은 국민연금 관리 주체인 국민연금공단을 겨냥한다. “국민연금공단은 매년 운영 적자인데 왜 고연봉에 성과급은 지급되는 건가?” (jiki****, 공감 707명)

국민연금의 기본 성격부터 세대 간 형평성 문제까지 이어지는 이 ‘댓글 여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금·경제 전문가 다섯 명에게 물었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사회분과위원장을 맡았던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 이번 국민연금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2013년 제3차 재정추계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IT금융경영학) 등이 답했다.


Q 싫다는데 왜 의무로 가입해야 하나? 자유 가입으로 돌려라.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다.

A 윤석명 연구위원은 의무 가입의 취지에 대해 “돈이 많은 사람은 전 재산을 탕진하지 않는 이상 노후 준비에 문제가 없다. 반면 생활이 빠듯한 사람은 노후를 준비하기 어렵다. 이들이 노후 빈곤에 빠지면 국가 재정에도 부담이 된다. 의무 가입이 아닌 경우,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상대적으로 교육받고 소득이 높은 이들만 제도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러면 근로기간의 소득 양극화가 그대로 노후소득 양극화로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김연명 교수는 “국민연금 같은 제도를 시행하면서 의무 가입이 아닌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가장 시장주의적 연금제도를 가진 나라인 칠레의 경우 민간 회사 7곳이 연금을 운영하는데, 이때도 회사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가입하지 않을 자유는 없다. (노후 대비를) 개인 자율에 맡기는 게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않고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검증되었다”라고 말했다.

자유 가입 시 대안이 될 개인연금보다 국민연금이 유리하다는 점도 국민연금 폐지나 자유 가입 전환의 반대 근거가 된다. 국민연금은 수익비(납입 보험료 대비 연급수급액의 비율)가 개인연금보다 훨씬 높을 뿐 아니라 물가 인상에 맞춰 연금액이 조정된다. 2015년 기준 국민연금의 수익비가 1.9인 반면 퇴직연금은 1.01, 개인연금은 1.08에 불과했다(오건호, 〈내가 만드는 공적 연금〉, 2016). 오건호 위원장은 “개인연금에 가입하면 본인이 보험료를 다 내지만, 국민연금은 직장 가입자의 경우 회사가 절반을 내준다. 지역 가입자도 본인이 낸 것에 비해선 후하게 받는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과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여론이 높다.
위는 2015년 5월28일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집회 모습.

 

Q 다단계 사기, 폭탄 돌리기다. 먼저 가입한 사람만 이익을 보고, 젊은 세대는 연금을 못 받거나 쥐꼬리만큼 받는 것 아닌가?


A 연금을 못 받는 일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세대 간 부담의 형평성 문제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김연명 교수는 ‘현 세대는 보험료를 적게 내고 연금을 많이 받는데, 후세대는 보험료를 많이 내고 연금을 적게 받을 것이다’는 우려 자체가 ‘프레임’이라고 주장한다. 현 세대는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하면서 자신의 보험료도 내는 ‘이중 부담’을 졌다는 것. 또한 현 세대가 낸 보험료로 기금 수익이 만들어져 미래 세대의 부담을 이미 줄인 공헌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적립기금 고갈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예전에 적립기금이 고갈되었다. 그러나 그해 수급자에게 줄 급여를 그해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로 충당하는 ‘부과 방식’과 함께 재정 투입을 통해 공적연금을 운용하고 있다. 이번 재정추계에 참여한 정세은 교수도 비슷한 시각이다. 정 교수는 “지금처럼 노동소득에만 보험료를 물린다면 (노동자들의) 부담이 현실화하겠지만, 자본소득이나 불로소득으로부터 걷은 세금을 연금에 투입하는 방법도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을 둘러싼 ‘다단계 사기’ ‘폭탄 돌리기’ 우려가 근거 없는 게 아니며, 이를 위해선 보험료를 빨리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건호 위원장은 “너무 자극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단지 괴담일 뿐이라고 할 순 없다. 현재의 국민연금은 세대 간 형평성이 훼손돼 있다”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김연명 교수의 주장에 대해 현 세대의 이중 부담을 고려하더라도 다음 세대가 초고령사회에서 짊어질 부양 부담이 너무 크다고 반박한다. 재정 투입론에 대해서도 오 위원장은 “보험료로 내든 세금으로 내든 후세대 부담이 큰 것은 마찬가지다. 재정을 투입하려면 국민연금이 아니라 재분배 효과가 더 큰 기초연금에 투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윤석명 연구위원 역시 “지금대로라면 그런(다단계 사기) 성격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처음에 제도를 만들 때는 경제성장이 계속됐기에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저부담-고급여 체계가 용인되었다. 지금은 저성장·저출산에 평균수명이 늘어 연금을 받는 기간이 길어졌다. 젊은 세대는 ‘연금이 다단계 사기’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현 세대에게 추가 부담과 연금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용하 교수는 ‘다단계 사기’라는 규정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급여 수준(45→40%)을 보장받으려면 원래 (소득의) 16%를 보험료로 내야 되는데 지금 9%밖에 안 내고 있다. 이 부분만큼 미래에 부담이 전가된다. 지금 보험료를 내는 20~40대 역시 본인 노후에 연금기금이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보험료 인상을 감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Q 국가가 지급 보장을 명문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A 문재인 대통령이 8월27일 국가의 지급보장 의무를 명확히 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다. 김연명 교수는 “당연히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지급해야 할 연금이 국가부채로 잡혀 국가 신용도를 낮출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전 국민 대상 공적연금제도 잠재부채를 회계상 국가부채로 인정하는 나라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오건호 위원장은 “연금 지급은 재정이 안정돼야 보장되지 법제화한다고 보장되는 게 아니다. 워낙 불신이 크다 보니 생긴 허구적 쟁점이다. 다만 연금 불신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연금개혁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면 명문화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반면 윤석명 연구위원은 ‘양날의 칼’이라고 표현했다. 윤 연구위원은 “지급 보장 조항이 생기면, 현 세대로서는 (정부가 책임진다고 했으니) 고통을 (후세대와) 분담할 필요가 사라지는 셈이다. 자칫 사회적 대화를 5년, 10년씩 끌면서 적립기금만 소진해 젊은 세대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시사IN 신선영‘국민연금은 세대 간 형평성이 훼손돼 있다’는 여론이 높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아래).


Q 왜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먼저 개혁하지 않나?

A 국민연금은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 공무원연금은 지금까지 4차례(1995년, 2000년, 2009년, 2015년) 개혁되었다.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군인연금은 설계도가 같아 매번 같이 개혁되었는데, 가장 최근의 2015년 개혁은 군인연금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았다. 오건호 위원장은 “민간 노동시장과 공무원 노동시장의 격차가 크다 보니 정서는 이해가 되지만, 국민연금을 개혁하면 그에 맞춰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는 게 관례처럼 되어왔다. (공무원·사학· 군인 등) 특수직역연금은 2015년의 개혁을 일단 완성하는 것으로 하고, 이번에는 국민연금을 개혁한 뒤 이를 토대로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는 게 합리적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김연명 교수는 “공무원연금은 이미 낮출 만큼 낮춰 더 낮추기 힘들다. 공무원들은 퇴직금도 없고, 보험료율이 국민연금보다 2배 높다는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형평성이 안 맞는 이유는 공무원연금이 높아서가 아니라 국민연금이 너무 낮아서다. 상향평준화가 옳은 방향이라 본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군인연금에 대해서도 “남북 분단 상황에서 군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군인의 직업적 특수성을 양해해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웬만하면 그냥 두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했다.


Q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은 기금 관리도 못하면서 고연봉에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데?

A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 올해 잠정치(6월 말 기준)가 0.90%로 지난해(7.26%)에 비해 크게 떨어지면서 기금 운용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기금운용본부장(CIO) 공석이 1년째 이어지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금 운용 자체에는 큰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1988년에서 2018년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연평균 누적 수익률은 5.45%다. 윤석명 연구위원은 “태생적으로 공격적 투자를 못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지만, 안정적이란 것이 장점이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기금처럼 공격적 투자를 하는 경우 국민연금보다 수익률이 높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등 경제 상황이 안 좋을 때 리스크가 크다. 시장수익률 정도로 평균적으로 운용하면 되지 과도한 수익률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연봉이나 성과급 논란에 대해서도 “거대 기금을 운용하는 사람들이라는 특수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최근 전북 전주 이전으로 인력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오건호 위원장은 “기금 운용에 대한 불신은 경청해야 한다. 삼성물산 합병에서 허수아비 역할을 한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스튜어드십 코드(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지침)를 도입하는 대책이 이에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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