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이 왜 영화제를 하는데?’ 요즘 지역축제만큼 흔한 게 영화제다. 〈시사IN〉에서 영화제를 하겠다고 했을 때 영화인들이 달갑지 않게 생각할까 걱정했다. 영화인들을 만나 영화제 취지를 설명하니 대부분 “그런 영화제는 〈시사IN〉이 하는 게 맞다”라며 응원해주었다. 존재할 이유가 있는 영화제라는 것이다.

9월14~16일 서울 사당동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에서 열리는 ‘〈시사IN〉 영화제-The power of Truth’는 기자와 필자들이 프로그래머가 되어 저널리즘의 지평을 넓힌 영화를 추천, 상영한다. 매체에 속한 기자들만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세상과 일상의 진실을 밝히는 영화인들 역시 저널리스트라는 문제의식을 담았다.

저널리즘 형식도 다양해졌다. 드라마 〈추노〉를 연출한 곽정환 PD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드라마도 저널리즘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시사IN〉 제130호 ‘드라마도 저널리즘이다’ 기사 참조). 허구인 드라마에 감독이 전달하려는 의미를 담아낸다면, ‘팩트’의 제약을 뛰어넘어 복잡한 사건에 대한 진실을 담을 수 있다고 곽 PD는 주장했다.

〈시사IN〉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 〈시사IN〉 기자와 필자들이 추천했다.

영화 또한 저널리즘의 한 축을 형성한다. 영상으로 문제의식을 전달할 수 있어서 탐사보도 전문 기자들도 선호한다. 주진우 〈시사IN〉 기자의 이명박 전 대통령 비자금 추적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저수지 게임〉이 대표적이다. 최승호 MBC 사장은 〈뉴스타파〉에 근무하던 시절 영화 〈자백〉을 통해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고발했다. 〈자백〉에 출연했던, 재일동포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 김승효씨에게 최근 검찰이 재심에서 이례적으로 무죄를 구형해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실제 사건을 파고든 다큐 영화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1960년대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다룬 다큐 영화 〈침묵의 시선〉은 알츠하이머병을 핑계로 재판에 불출석한 전두환씨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학살자들은 반성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심지어 희생자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며 우쭐거린다.

이번 영화제는 일종의 ‘영화를 통한 말 걸기’이다. 평소 기자들이 천착해온 주제와 관련한 영화를 선정해 상영한 뒤, 기자와 필자들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가 ‘발제문’이 되는 방식이다. 국내외 아동학대 문제와 대안을 탐사보도한 변진경·임지영 기자는 영화 〈4등〉을 통해 우리 사회 1등주의와 그로 인한 아동학대 문제를 관객들과 이야기한다. 변 기자는 〈4등〉이 부모를 자성하게 만든다며 “내가 정한 나만의 기준에서 아이의 행복과 성공을 판단한 적이 없었던가? 내가 배운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 타인에게, 특히 더 어리고 약한 사람에게 대물림되었을 때의 어긋남을 섬세하고 명징하게 보여주는 영화다”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유령의 도시〉는 ISIS에 유린당한 고향의 실상을 알리는 시민 저널리스트를 조명한 작품이다.

두 기자가 원래 상영하려고 했던 작품은 한나 스쾰드 감독의 〈에이니의 숲〉이었다. 변 기자가 ‘아이를 위한 나라’ 취재를 위해 스웨덴 스톡홀름에 갔을 때 감독을 직접 만나 인터뷰도 했다(〈시사IN〉 제566호 ‘아이가 고립된 가정, 의심하고 살펴보라’ 기사 참조). 2016년 부천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자막 처리 문제 때문에 이번 영화제에서는 볼 수가 없다. 변 기자는 “아동인권 선진국이라는 스웨덴에서도 여전히 은밀하게 아동학대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보고 아끼기만 하면 그것이 최선의 사랑이라고 믿는 부모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남문희 선임기자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를 선택했다. 〈나는 부정한다〉는 주인공인 역사학자가 극우 역사학자와 법정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다. 극우 역사학자는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진실이 아니라 가공된 허구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주인공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이 철저히 파괴되고 히틀러가 직접 개입했다는 문서가 없어서 증명하는 데 애를 먹는다.

남 기자는 〈나는 부정한다〉를 추천한 이유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일제의 ‘위안부’ 강제동원이나 난징 학살 등을 증명해야 하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의 의도적 왜곡을 통한 역사 비틀기는 일본 우익들에게서 익히 보던 모습이다.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영화다”라고 말했다. 영화와 별개로 9월15일 오후 2시 남 기자는 ‘남북 정상회담 독해법’이라는 주제로 아트나인 야외 테라스에서 토크 콘서트를 연다.

〈시사IN〉 영화제의 폐막작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의 한 장면.

신선영 사진기자는 ‘여성의 몸과 생리에 관한 탐구 다큐’라는 설명이 붙은 〈피의 연대기〉를 추천했다. 본인이 가장 공감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머물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을 꼽자면 탐폰만 진열된 마트 가판대 앞에 섰을 때다. 생리대를 주로 쓰는 나라에서 태어났으니 막연히 탐폰을 쓰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여성의 몸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루는데, 대안 생리대와 무상 생리대 정책에 대한 의제까지 끌고 간다.”

기자·필자가 추천하고 독자와 나누는 시간

‘영화로 쓴 여성 노동운동사’라 할 수 있는 〈위로공단〉을 고른 전혜원 기자는 그동안 KTX 여승무원을 비롯해 ‘태움’에 시달리는 간호사, 오너의 ‘갑질’에 항의하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승무원 등 노동 관련 기사를 써왔다. “엄마가 구로공단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났고 취재한 여성 노동자들 생각도 많이 났다. 여성 노동자로 살면서 여성 노동자의 싸움을 기록하는 게 어떤 건지 고민하게 되는 영화였다.”

2016년 여름 경북 성주군을 오가며 사드 배치 문제를 취재한 김연희 기자는 〈파란나비효과〉를 선택했다. 성주 군민들의 사드 기지 반대 투쟁을 담은 영화를 통해 성주 군민들이 명예회복을 했으면 좋겠다고 김 기자는 말했다.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성주군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성주는 전국에서 조롱거리가 됐다. 그해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파란나비효과〉도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사드 배치 반대운동이 일어난 뒤 평생 찍던 보수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들의 힘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약하지만 성주에 균열을 내고 있다.”


김동인 기자는 저널리즘 자체를 다룬 영화를 추천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2001년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추적한 〈보스턴 글로브〉 탐사보도팀을 다뤘다. 김 기자가 이 영화를 ‘저널리즘의 교과서’로 삼은 것은 기자를 영웅으로 그리지 않고 사실을 밝히는 지난한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보여주는 탐사보도 취재 과정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실패의 연속이다. 피해자 집을 일일이 방문하는 장면, 실수로 놓친 제보자를 다시 찾아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 모두 실제 저널리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영화제 개막작은 〈유령의 도시〉. ISIS(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 IS의 전신)에 유린당한 고향 락까의 실상을 알리는 시민 저널리스트를 조명한 작품이다. 시리아에 남은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쫓기고 추방당하면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진실을 알리는 모습이 담겼다. 실제 상황을 찍은 휴대전화 화면이 당시 급박함을 보여준다.

폐막작은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시드니에서 대규모 탄층 가스 채굴을 하려는 거대 기업을 막기 위해 단편영화를 만들기로 한 안나는 자신이 본 가장 강력한 선전 영화를 제작하는 북한으로 영화 제작법을 배우러 간다. 평양에서 감독·배우·촬영가·작곡가 등을 만나, 영화 제작법을 배운다. 자신의 작품에 ‘주체의 영화 기법’을 응용하는데 풍자적이면서도 북한 영화인들의 순박함을 부정적으로 그리지만은 않았다. 북한의 실생활을 부담 없이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영화제에서는 표완수 〈시사IN〉 대표를 비롯해 기자들이 추천한 〈더 헌트〉 〈공작〉 〈러스트 앤 본〉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공동정범〉 〈주피터스 문〉 등이 상영된다.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의 필자 김형민 PD와 굽시니스트 등이 추천한 〈미션〉 〈키사라기 미키짱〉 〈러덜리스〉 〈플로리다 프로젝트〉 〈브링 홈〉 등도 독자를 기다린다. 영화제 기간에는 다양한 부대 행사도 열려서 기자·필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영화제의 또 다른 취지는 ‘독자와 더불어’다. 11년 전 삼성 기사 삭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창간한 〈시사IN〉을 키운 건 독자들이었다. 파업과 창간 당시 도움을 준 이들이 이번에도 힘을 보탰다. 이번 영화제 트레일러를 제작한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김진혁 교수는 EBS PD 시절 원 〈시사저널〉 기자들의 파업을 다룬 〈지식채널e〉 ‘기자’ 편을 만들기도 했다. 진실을 향해 덤덤하게 걸어가는 이번 영화제 트레일러에는 〈시사IN〉 기자들의 발걸음과 저널리즘의 지평을 넓힌 영화 화면이 교차 편집되어 있다. 영화제 티켓 예매 및 부대 행사 참가 신청은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sif.sisain.co.kr)에서 할 수 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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