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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간 자리, 농성장만 남았다

2018년 09월 21일(금) 제574호
김혜인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직사업부장·전 하이디스 노동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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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솔릭의 경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은 296일째, 조명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전주 택시 노동자는 꼬박 1년, 35m 높이 다리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한 서울경기강원지역버스지부 노동자는 약 한 달째(모두 9월4일 기준)…. ‘간만에’ 이들을 걱정하는 목소리로 하루 종일 SNS가 들썩였다.

올여름 폭염은 평균기온·열대야 일수 등 모든 면에서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역대급이었다. 실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다가 밖으로 나오면 숨이 턱 막히곤 했다. 밖에 나온 지 5분도 되지 않아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목은 타들어갔다.

ⓒ그림 윤현지

나는 이 더위를 안다. 2015년 6월 타이완(대만) 쑹산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공항 밖으로 나섰을 때가 떠올랐다. 하이디스 노조의 ‘타이완 원정투쟁’ 당시 느꼈던 더위였다. 뜨거운 도로 위에 농성장을 차리고, 선전전을 하고 플래시몹을 하러 낯선 땅을 다녔다. 타이완 중화통신 노조에서 사무실과 샤워실을 지원해줘 매일 아침저녁으로 씻을 수 있었다. 아무리 냉수 샤워를 해도 소용없었다. 입맛도 없고 몸은 계속 늘어졌다. 타이완 원정투쟁 일정 중에 큰 태풍이 왔다. 태풍 덕택에 농성장을 접고 하루 종일 실내에 머물렀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일정 속 꿀 같은 휴식이 될 줄 알았건만 나는 그날, 몸살로 몸져누웠다.

타이완에서 만났던 태풍과 몸살을 떠올리며 ‘솔릭이 지나갈 때까지 노동자들이 잠시 내려와 있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러다 ‘폭염에는?’ ‘한파는?’…. 투쟁하는 사람들은 자본뿐 아니라 자연과도 싸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치열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태풍 경로가 바뀌면서 가장 위험했던 곳은 전주 택시 농성장이었다. 농성장 자체가 조명탑 옆 파이프를 연결해 만든 불안정한 구조물이다. 큰 현수막을 떼고, 농성장을 밧줄로 꽁꽁 덧묶었다. 위험하니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던 날에도 투쟁하는 사람들은 길 위에서 태풍 맞을 채비로 분주했다. 조명탑 위에 ‘까치집’을 짓고 살고 있는 김재주씨는 택시운전사다. 김재주씨와 동료들은 2016년 2월 전주시로부터 “2017년 1월부터 사납금제 폐지, 전액관리제를 시행하고 위반 사업장을 처벌하겠다”라는 약속을 받았다. 사납금제는 기사가 매일 회사에 일정 금액을 내고, 나머지 수입을 갖는 방식이다. 사납금제는 택시 노동자가 16시간 장시간 노동에, 위험한 곡예운전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죽음의 제도다.

혹한과 폭염을 버티며 보낸 1년


1997년부터 사납금 제도는 불법이다. 개정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는 사납금제 대신 전액관리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느슨한 단속 탓에 택시 회사는 여전히 사납금제를 고집한다. 회사의 명백한 불법행위를 처벌하라는 요구인데도, 조명탑 위에서 살을 찢는 추위와 숨 막히는 더위를 버티며 싸우고 있다. 무려 1년 동안. 1년은 365일이고, 8760시간이고, 52만5600분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찬물 샤워를 해도 가시지 않는 무더위를 저 위에서는 어떻게 버틸까? 화장실 자주 간다고 물도 잘 못 마시는데…, 너무 더워서 몸에 열이 차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던데…, 나는 동료들이 주물러주고 얼음찜질을 해줘서 나았는데…. 김재주씨는 홀로 어떻게 버틸까. 더운 날 하루 종일 농성장에서 혼자 무슨 생각을 할까.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바람에 할퀴어진 농성장만 남았다. 사람들의 관심도 태풍처럼 지나가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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