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를 법정에 반드시 세우고자 하는 이가 있다.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다. 조비오 신부는 ‘5월의 사제’다. 1980년 광주 계림동성당 주임신부였던 조 신부는 시민수습위원으로 앞장섰다. 1980년 5월26일 오전 9시 광주 지역 민주 인사들과 맨몸으로 계엄군의 탱크를 막아낸 ‘죽음의 행진’에 참여한 주인공이다. 그해 5월 이후 조비오 신부는 구속 기소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조비오 신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5·18의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2016년 9월 선종하기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한평생을 바쳤다.

전두환씨는 지난해 펴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1980년 5·18 당시 조비오 신부가 계엄군의 헬기 기총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는데, 이 증언에 대해 막말로 공격한 것이다.

ⓒ시사IN 윤무영광주 용봉동성당 주임신부 조영대 신부(사진)는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이다.

〈전두환 회고록〉을 읽은 조비오 신부 측 유족 조영대 신부는 전씨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지난 5월3일 광주지검은 전씨를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는 전두환씨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전씨는 서울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주소지 관할 법원에서 재판해야 한다는 취지의 재판부 이송 신청을 법원에 냈다. 광주지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분노 조절이 안 된 광주 시민이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라는 출석 거부 이유를 댔다. 법원이 이유 없다며 거듭 출석하라고 요구하자, 8월27일 첫 공판 하루 전 ‘2013년부터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병세가 악화되었다’며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법원은 “알츠하이머 증세만으로는 불출석 사유가 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광주지법은 8월28일 출석을 요구하는 네 번째 소환장을 보냈다.

〈시사IN〉은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주임신부를 맡고 있는 광주 용봉동성당을 찾았다. 조비오 신부는 어린 시절 고모의 영향으로 천주교에 입문했다. 1962년 가톨릭대학 1기생으로 입학해 1968년 12월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광주 살레시오여고 지도신부(1971년), 레지오마리애 광주 세나뚜스 지도신부(1977년) 등을 역임하며 사제의 길을 걸었다. 조비오 신부의 영향으로 조영대 신부 외에 또 다른 조카 조영승 신부(인천교구)도 사제의 삶을 살고 있다.

“다음 재판(10월1일)에는 강제 구인하겠다는 재판장의 의지를 기대했는데 소환장 발부만 하겠다고 해서 굉장히 씁쓸했다. 구인장을 발부해 강제 구인을 해서라도 전두환씨를 광주 법정에 세우는 일은 사법 정의만이 아니라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상징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전씨의 알츠하이머 투병 주장에 대해서도 조영대 신부는 꼼수라고 여긴다.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데 그 후로도 얼마나 왕성하게 활동했나. 여러 정치인과도 수시로 만나 조언하고 환담한 기록이 있다. 2016년에는 〈신동아〉와 장황한 인터뷰까지 했다. 롯데 신격호 회장의 경우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지만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했다. 재판부가 전두환씨를 끝까지 법정에 세우지 못한다면 그에게 굴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영대 신부는 전씨가 회고록에서 삼촌 조비오 신부를 비난한 것도 문제지만 헬기 기총 사격을 부인했다는 점을 더욱 큰 문제로 보았다. 헬기 기총 사격은, ‘자위권 발동이었다’는 신군부의 변명을 무너뜨린다. 광주 시민에 대해 신군부가 저지른 ‘계획적인’ 범죄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씨가 헬기 기총 사격을 부인하고 나왔기 때문에 광주 5·18 관련 단체 사이에선 그냥 덮고 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내가 조비오 신부 유족인 데다 천주교 광주교구 소속 사제여서 광주교구장님 허락을 얻어 전두환씨를 고소했다.”

ⓒ연합뉴스2016년 9월23일 광주 주교좌성당에서 고 조비오 신부 장례미사를 마친 성직자들이 운구하고 있다.

‘헬기 사격 있었다’는 특조위 조사 결과

조영대 신부는 삼촌(조비오 신부)이 들려준 헬기 기총 사격 목격 증언을 이렇게 전했다. “1980년 5월21일 삼촌(조비오 신부)을 포함해서 가톨릭 신부님 몇 분이 시내 호남동성당에 모이셨다. 계엄군 총칼에 광주 시민이 죽어나가는 엄혹한 상황에서 가톨릭교회 차원의 대응책을 논의했다. 회의가 끝나고 성당을 나오다가 헬기 기총 사격을 직접 목격한 거다.” 당시 목격자는 조비오 신부뿐만 아니라 성당 모임에 참석한 다른 신부들과 신도들도 있었다. 이들은 호남동성당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광주천 방향으로 헬기가 날면서 사격하는 장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조비오 신부가 1989년 5공 청문회장에 나가서 증언했고, 기회 있을 때마다 언론에도 증언했다. 조비오 신부 말고도 헬기 기총 사격에 대한 광주 시민 목격자와 피해자 증언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전두환씨는 회고록에 헬기 기총 사격을 “계엄군의 진압 활동을 고의로 왜곡하려는 악의적인 주장일 뿐이다”라고 썼다. 지난해 조영대 신부가 전두환씨를 고소하고,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 벽에서 헬기 기총 사격 자국으로 추정되는 탄흔이 발견되자 이 문제는 5·18 진실을 둘러싼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에 헬기 기총 사격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국방부는 5·18특별조사위(특조위)를 꾸려 5개월 동안 자체 조사를 벌였다. 지난 2월7일 특조위는 “5·18 당시 광주에 헬기 40여 대가 출동했고, 일부 헬기가 시민들에게 실탄을 쏘았다”라고 발표했다. 특조위는 1980년 5월21일과 5월27일 육군이 헬기를 이용해 광주 시민들에게 사격을 가했다는 근거로 ‘헬기작전계획 실시지침’을 제시했다. 이 문건은 그해 5월22일 오전 8시30분쯤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에 하달됐다. 문건에는 ‘무장 폭도들에 대하여는 핵심점을 사격 소탕하라’ ‘시위 사격은 20미리 발칸, 실사격은 7.62미리가 적합’ 등의 지침이 담겼다. 또 계엄사령부는 헬기 기총 사격 전 3~5회 경고방송을 하도록 지시했다. 특조위 조사 결과, 황영시 당시 계엄사령부 부사령관은 5월23일 ‘무장 헬기 UH-1H 10대, 500MD 5대, AH-1J 2대 등을 투입해 신속히 진압 작전을 수행하라’는 취지의 명령을 내리는 등 5월20일부터 26일까지 4차례에 걸쳐 지시했다.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 5명은 특조위 조사에서 무장한 상태로 광주 상공을 헬기로 비행했다고 진술했으나 기총 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특조위는 5월22일 AH-1J 코브라 헬기 2대에 발칸포 500발씩을 싣고 광주에 출동했으며, 5월23일 전교사에서 발칸포 1500발을 수령했다는 점을 들어 코브라 헬기에서 발칸포를 사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았다. 특조위는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시민 진술도 다수 확보했다.

광주지검은 국방부 특조위 조사 결과 외에도 주한 미국 대사관이 본국으로 보낸 비밀 전문도 확보했다. 미국 대사관은 1980년 5월23일 작성해 국무장관에게 보낸 비밀 전문에 “광주의 상황이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 항공기들이 광주에서 더 이상 발포하지 않고 있다”라고 적었다. 5월23일 이전에는 항공 사격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해 6월10일 작성된 미국 대사관 비밀 전문에는 5월21일 상황이 이렇게 적혀 있다. “시위 군중은 해산하지 않으면 헬기 공격을 받게 될 거라는 경고를 받았다. 실제로 헬기 기총이 발사됐을 때 엄청난 분노가 일었다.” 5월21일은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한 날인데, 미국 대사관은 헬기 사격도 있었다고 보고한 것이다.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봤다”라고 지목한 날이기도 하다.

8월27일 열린 재판에서 전씨의 변호인은 “5·18 당시 헬기 사격에 대한 증거는 목격자들의 증언인데, 한편 당시 헬기 조종사 등은 한결같이 (헬기) 기총 사격을 부인하고 있다. 서로 진술이 배치되고 있다”라며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전씨 측 태도에 조영대 신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작태로, 전씨를 엄중 처벌해야 할 이유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재판 과정에서 전두환씨 측은 ‘광주 시민의 조절되지 않는 분노 표출로 인한 불상사가 우려되어’ 법정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조 신부는 “비록 광주 시민들에게 아직도 가시지 않은 깊은 아픔이 있지만 전두환씨를 법정에 세우는 일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시위를 막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가 출석할 경우 돌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경호작전’까지 짰다. 광주 시민의 조절되지 않은 분노 표출이 두려워서 못 온다는 건 핑곗거리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5·18 진상규명 특별법, 국회를 통과했지만…

전씨의 재판 불출석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전씨 측근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새로운 주장을 폈다. 민 전 비서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13년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아 회고록을 직접 쓸 수 없었다. 조비오 신부에 대한 대목은 내가 썼다”라고 주장했다.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적용되면 ‘진범’은 전두환씨가 아니라 자기라는 것이다. 이에 조영대 신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물타기”라고 말했다. “민정기씨에 대해 추가 고소를 하자는 제안도 나왔는데 민정기씨 주장은 재판을 끌기 위한 물타기다. 그런 주장에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회고록은 어디까지나 전두환 이름으로 나간 것이다. 만일 그 대목을 민정기가 썼다 할지라도 책임은 전두환씨에게 있으니 어떻게든 그를 법정에 세운 뒤 공범자 민정기씨에 대한 고소도 검토하겠다.”

요즘 조영대 신부는 어깨가 무겁다. 이번 재판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 분노까지 다양한 감정을 수시로 접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마다 ‘제발 이 기회에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힘들겠지만 끝까지 싸워달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다.”

광주 시민들의 이런 열망과 응원에도 불구하고 조 신부의 가슴 한쪽에는 답답함이 크다. 9월14일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지만, 아직도 국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특별법에는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시민에 대한 군 최초 발포 책임자와 경위, 계엄군의 헬기 사격 경위와 사격 명령자, 집단학살지·암매장지의 소재 및 유해 발굴, 군 보안사·국방부의 5·18 조작 의혹 사건 등에 대한 진상규명이 담겼다. 국회가 추천한 법조계·학계 등 인사 9명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는데, 아직 위원 선정조차 마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5월 관련 단체에서 국회를 수시로 찾아가 의장단과 여야 정당 대표를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도 추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회가 아직까지 위원 구성도 제대로 못한 것은 말만 앞세웠지 진상규명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전두환씨 세력이 정치권을 포함해 한국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답답하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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