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만들 때면 마음이 크게 흔들려서 ‘내가 좋아하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이 책을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 그렇다.
〈그의 옛 연인〉에서 트레버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뒤흔드는 사건과 남들보다 조금 더 선한 본성으로 인해 다른 이들과는 다른 무게의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을 그려낸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일이 그들에게는 다시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대한 사건으로 작용하고, 결국 그들은 나름의 속죄와 자기희생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 트레버의 소설은 언제나 짙은 슬픔의 여운을 남긴다.
어떤 원고든 처음 읽을 때면 가능한 한 감정을 배제하고 전체를 파악하자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그런데 트레버를 읽을 때면 그것이 조금 어려워진다. 어느새 소설에 빠져들고 만다. 독자가 된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잠시 숨을 고르고, 감정을 추스르고, 다음 문장을 읽는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사실 이런 때,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서 나는 정말 행복하다.
트레버의 소설(특히 단편)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모여 전체를 이루었을 때 감히 ‘완벽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다. 적절하게 쓰인 행간의 여백, 확고하게 결론을 향해 나아가는 문장의 힘. 읽고 나면, 다른 어느 누가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감탄하고 만다. 누구와도 닮지 않아 비교할 수조차 없다.
윌리엄 트레버는 명성에 비해 국내에는 조금 늦게 소개되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앞으로 소개될 책들이 기다려진다. 소설의 깊이를 느끼고 싶을 때,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을 읽고 싶을 때 트레버의 책을 읽어보시길.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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