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상으로 중국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여행지인데도 사실 그렇게 인기 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통계와 인기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이렇다. 중국 여행 대다수는 명승지 위주의 패키지여행이다. 부모를 위한 효도관광 또는 중고생들을 위한 수학여행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에는 젊은 개별 여행자들이 거의 없다. 여행이란 결국 ‘SNS 자랑’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중국 여행 사진을 SNS에 올리면 또래들이 별로 부러워하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앞장서서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를 막아놓았으니, 현장에서 ‘나 여기 있음’을 과시해야 하는 일부 여행자들의 기호에는 최악이라 할 만하다.

중국 베이징에서 젊은 여행자들이 열광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바로 맥주다. 양꼬치에 칭다오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에서 단연 ‘톱클래스’인 베이징 수제 맥주 이야기다. 알고 보면 중국 각 지역 맥주는 칭다오 맥주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마오타이주로 유명한 구이저우성에 가면, 그 동네 물로 만든다는 마오타이 맥주도 있다.

ⓒ전명윤 제공중국 베이징 후퉁 지역에 위치한 ‘대약(大躍)비어’.

7~8년 전 베이징에 맛이 끝내주는 수제 맥줏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소문해 어딘지 파악했는데, 그곳은 맥줏집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후퉁이라고 부르는 전통가옥 밀집지역이었다. 이곳은 서울 북촌을 100배 확대해놓은 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밤에만 영업한다는데,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가는 길이 무서웠다. 가로등은 빈약하고, 고택 불빛은 침침했다. 어둠 속에서 빨리 걷다 보니 내가 내 발을 걸어서 두어 번 넘어질 뻔했다. 목적지는 다 와가는데, 길은 여전히 암흑. 그 가운데 한 집이 눈에 띄었다. 담장 너머로 환한 빛이 나고 있었다.

저기인가? 이런 곳에 맥줏집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손때가 묻은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가자 별세계가 펼쳐졌다. 정원에는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리고 나무 아래 펼쳐놓은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가게 이름은 ‘대약(大躍·다웨)비어’. 악명 높았던 ‘대약진 운동’ 때 그 대약이다. 중국 맥주의 격을 대약진시키겠다는 의미라는데, 그래서인지 맥주잔 받침에는 문화혁명 당시에 썼을 법한 선동 포스터가 그려져 있었다. 한 잔만 먹는 ‘쫄보’들에게 더 마시라며 선동하는 것 같은 그림이었다. 아! 그 주먹을 굳게 쥐고 투쟁, 아니 맥주잔을 들이미는 그림이라니!

자기들만의 음식 재료로 맥주를 재해석하는 중국인 특유의 센스

철관음(중국 우롱차의 한 종류)을 가미한 골든에일이나, 쓰촨 화자오(훠궈 국물에 들어가는 향신료)를 넣은 꿀 맥주 같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맥주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유비·관우·장비가 어제 이곳에서 도원결의했다 해도 믿을 수 있는 고택에서 벌어지는 맥주 잔치라니! 나는 맥주잔을 더욱더 굳게 쥐었다.

나는 전통 화덕과 고품질의 유제품이 있는 인도에서 생애 최고의 화덕 피자를 먹었고, 베이징 대약비어에서 수제 맥주에 눈떴다. 첫 번째 성공은 언제나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를 덜 조심스럽게 만든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중국에 갈 때마다 맥주 투어에 나선다. 맥주에 맹덕·유비·자룡·동사·서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기들만의 음식 재료로 맥주를 재해석하는 중국인 특유의 센스는 맥주 투어를 더욱 즐겁게 만든다.

물론 이 멋지고 훌륭한, 게다가 한국인이 별로 없는 공간에서 홀로 맥주를 즐기는 사진을 그때그때 SNS에 올리지 못하는 건 한이다. SNS는 확실히 제때, 현장에서 올려야 제맛이다.

기자명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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