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 ‘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 고전 선’이라는 전집을 산 적이 있다. 공부는 하기 싫고 놀기엔 죄책감이 들면 그 책을 집었다. 괜찮은 판단이었다. 도무지 10분 이상 잡고 있기 힘들었다. “우리가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하는 소설에 경탄하기에는 내가 너무 까졌었나 보다.

그러다 책 끝머리에 실린 김용준의 ‘추사 글씨’를 접했다. “어느 날 밤에 대산이 ‘깨끗한 그림이나 한 폭 걸었으면’ 하기에 내 말이 ‘여보게 그림보다 좋은 추사 글씨를 한 폭 구해 걸게’ 했더니 대산은 눈에 불을 번쩍 켜더니 ‘추사 글씨는 싫여. 어느 사랑에 안 걸린 데 있나’ 한다.” 이 글은 순식간에 다 읽혔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별다른 교훈은 없었다. 요즘 말로 ‘짝퉁 추사 글씨에 대한 썰’ 정도랄까. 한참 뒤에 생각했다. ‘어? 이거 어제 친구들하고 했던 운동화 이야기하고 비슷한데?’

며칠 뒤 근원 김용준의 〈근원수필〉을 사서 수필 30여 편을 읽으며 느낀 바가 있었다. 첫째, 오래된 한국 문학이 다 재미없지는 않다. 둘째, 짧은 문장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대부분 1930~1940년대에 쓰인 글들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최근 작가들의 수필보다도 어깨에 힘이 덜 들어간 느낌이었다. 가령 “사십 남짓한 나이에 수세기 이상의 세월을 겪었다면 듣는 사람은 그놈 미친놈이라 할 것이다”
(‘김 니콜라이’) 같은 문장이 그렇다. 독자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도록 문장 길이를 조절하는 능력도 감탄스럽다. 자연스레 읽어 내리고 나서야 꽤 긴 문장이었고, 그래서 읽는 맛이 있었다고 깨닫는다. 수필이 예술에 속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알게 됐다.

한 해에 6만 권 정도 신간이 나온다고 한다. 수십 년간 얼마나 많은 책이 잊혔을지 짐작할 수 없다. 그 가운데 살아남은 책이 고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원수필〉은 앞으로도 고전으로 분류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수십, 수백 년 뒤 누가 어떤 기이한 이유로 이 책을 집어 들고, 공감할지 상상하게 되는 책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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