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 법관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몫일 것이다. 사법농단의 최종 책임자로서, 법률 그 자체로 통했던 대법원장이 범죄자로서 검찰청의 포토라인에 서는 장면이 머지않아 보인다.

사건은 검찰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사가 끝나면 재판이 시작된다. 바로 직전까지 대법원장, 대법관, 고등부장 등으로 근무했던 선배 법관을 후배 법관들이 재판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대통령을 무려 4명이나 재판했지만, 이번 사태는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다.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분노와 통쾌함을 안겼다면 이번 사법농단 사태는 분노와 함께 당혹감과 민망함을 준다. 이를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은 법관들이리라.

그렇지만 냉정한 이성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판사 블랙리스트와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진상조사를 한 것은 대법원이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법원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제3차 진상조사 이후 법원의 처지는 나쁜 쪽으로 계속 바뀌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제3차 진상조사 후 고발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 이후 대법원장은 고발은 하지 않고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해버렸다. 영장 기각은 수사 협조가 아니라 수사 방해다. 영장 기각에 이어 급기야 증거를 인멸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변호사가 된 전직 고위직 법관이 증거를 인멸했지만 법원을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도 법원 개혁 결실 내지 못해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법원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대법원장은 진상조사 후, 첫째 모든 내용을 공개하고, 둘째 수사보다도 더 가혹하게 연루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며, 셋째 재발 방지 대책을 명확히 제시하고 추진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최소한 법원의 문제 해결 의지를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스스로 기회를 거부해버렸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법원이 아예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법원은 법원 개혁, 사법 개혁 문제에 대해 특히 무능력하다. 사법농단 사태의 해결에 무능력할 뿐 아니라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시작된 법원 개혁에도 결실을 내지 못했다. 2008년 신영철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촛불시위 재판에 개입한 사태의 해결 과정도 법원의 무능력을 잘 보여준다. 당시 대법원은 신영철의 사건배당과 전화, 이메일 송신이 재판 개입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하지만 신영철은 이 사태 이후 대법관이 되었다. 법원 개혁, 나아가 사법 개혁에 대해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는 법원이 지금 개혁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괴하고 모순된 현실이다. 법원은 자신의 무능력을 반성하면서 외부의 도움을 청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는다. 국회도 비슷하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벌써 1기 활동이 끝났다. 1기는 문자 그대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2기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구성도 되지 않았다.

 

 

ⓒ연합뉴스제70주년 대한민국 법원의 날인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기자회견 뒤로 법원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2018.9.13

 


이런 와중에 사법농단 사태는 사법 개혁의 동력이 아니라 수사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법원의 버티기, 법원과 검찰의 힘겨루기로 나라의 걱정거리,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었다. 사법 개혁이 절실한 순간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상한 현실이 벌어졌다. 이 현실의 배후에는 사법부 독립 원리가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도그마가 된 사법부 독립 원리가 있다. 사법부 독립은 사법부 공화국을 만들어 법원 중심주의, 법원 폐쇄주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법원도, 청와대와 행정부도, 국회도 도그마로 여겨 사법부의 완전 고립으로 이해한다. 사법 개혁도 법원이 해야 하고 외부에서는 간섭하면 안 되는 것으로 본다.

사법 개혁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므로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 모두 이해관계가 있다. 이들 기관이 책임을 지고 시민, 전문가와 함께 사법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

 

 

기자명 김인회 (변호사·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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