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평양 공동선언’은 비핵화와 남북 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핵화 자체보다는 비핵화를 위한 북·미 대화 촉진의 중재자 구실을 명확히 했다. 남북 관계는 군사 문제 선행을 통해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시대라는 역사적 이정표를 그렸다. 항상 뒷전으로 밀려 있던 군사 문제를 앞세워 군사 위협과 전쟁 위험을 종식시켰다. 남북 정상은 남북한 주민의 삶에 평화의 일상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평화의 일상화야말로 평양 공동선언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공동선언에 서명한 직후 두 정상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군사합의서)’에 서명했다. 평양 공동선언 제1조에 따라 부속합의서로 채택됐다. 남북 관계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중심이 군사 문제이고 남북 모두 이행 의지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9월19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군사합의서는 6개조 22개 항으로 구성되었다. 행정적인 내용이 담긴 마지막 제6조 2개 항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군사 합의는 5개조 20개 항이다. 제1조 적대행위 전면 중지, 제2조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 제3조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조성, 제4조 남북 교류 협력을 위한 군사적 보장, 제5조 군사적 신뢰 구축과 합의 이행에 관한 내용이다.

군사합의서 제1조는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지상과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 중단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 완충 구역을 설정하고 11월1일부터 구역 내에서 군사훈련을 중지하기로 했다. 제2조에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비무장지대 상호 1㎞ 이내로 근접한 감시초소(GP) 철수와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공동 유해 발굴과 역사유적지 발굴 등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합의 사항이 담겼다. 이행 시기와 범위 내용을 이미 북측과 합의해 실제 이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제1조와 제2조가 바로 이행할 구체적인 합의 사항이라면 제3조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대한 문제는 일반적 수준에서 합의가 도출됐다.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제4조에서는 남북 교류 협력 차원에서 동·서해 남북관리구역에서의 통행·통신·통관(3통)과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안전한 군사적 보장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해주 직항로와 제주해협 통과 문제, 한강 하구 공동 이용에 대해서는 여건 조성 시 공동으로 노력해 해결 방안을 찾기로 했다. 남북은 제5조를 통해 군사적 신뢰 구축과 이번 군사합의서 이행을 위해 군사 당국자 간 직통전화를 설치하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서해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 설정, 해주 직항로와 제주해협 통과 문제 등 남북 간에 추가적인 협의가 필요한 사항을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대화로 해결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이번 합의서에서 마무리되지 못한 사항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군사 문제와 단계적인 군축 문제까지 의제를 확장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합의의 확실한 이행과 지속을 위해서라도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과 운영이 선결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번 군사합의서 이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체결된 합의 사항을 구체적이며 실행 가능한 합의로 이끌어내기 위해 남북이 넘어야 할 장애물도 많을 것이다. 이미 이행을 약속한 구체적인 합의도 우리 내부의 정치적 이해와 남남 갈등, 유엔사와의 협의 등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야 한다.

기존 군사 합의와 비교해 이번 합의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통해 남북 관계의 확대 발전을 도모하면서도 당면한 군사적 문제 전반을 포괄적으로 담았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사실 내용적으로는 남북 기본합의서 이후 남북 간 이미 합의한 내용뿐만 아니라 남북이 제안한 것들을 총망라했다.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북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현재 진행 중인 문제이다. 65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군사적 충돌과 전쟁의 위험에 시달린 남북 국민 모두의 삶에 평화의 일상화를 돌려주었다.

이번 군사합의서 체결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다. 먼저 군사 문제 해결을 앞세워 남북 관계와 비핵화, 북·미 관계가 상호 동행하고 긍정적으로 병행하여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에 따라 남북 관계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북·미 관계 개선으로 나아가는 데 촉진제가 될 수 있다. 남북 관계와 비핵 평화를 다루는 데 군사 문제를 앞세우는 선군(先軍)적 발상의 전환이기도 하다. 북·미 관계의 중재자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로 확약했습니다”

이번 평양 공동선언은 남북 간 불가침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종전선언이라고까지 평가할 수 있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과 북은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자고 약속했다. 이번 평양 공동선언문에 종전선언이라는 문구는 없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 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사실상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종전선언의 주체가 3자(남·북·미)냐 4자(남·북·미·중)냐 논란은 무의미하다. 이번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실질적인 종전 상태의 지속과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기틀이 될 것이다. 평양 공동선언의 핵심은 비핵화가 아니다. 바로 제1조에 나온 남북 군사 문제이며, 부속합의서로 채택된 군사합의서에 대해 평가해야 한다. 군사합의서 이행으로 우리는 진정으로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남북 관계의 새로운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기자명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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