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1년 집권 이후 경제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 시기 경제정책을 큰 틀에서 유지했다. 그러나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산업정책 측면에서 변화가 적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은 먼저 시장을 용인했을 뿐 아니라 적극 활용했다. 경제 관리제도 개혁을 통해 국영기업의 시장경제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인민경제계획법’이나 ‘기업소법’ 등을 개정해 제도화했다. 이렇게 추진한 시장화가 2000년대 북한 경제 회복에 크게 기여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북한에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보급이 점차 늘고 있다.
사진은 ‘에너지절약형·녹색형 거리’를 표방한 평양의 여명거리.

둘째, 자원 배분 정책에서도 실용주의 방식을 택했다. 투자 능력이나 기술 수준을 고려해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속도를 조절했다. 대신 단기간에 성과를 거둘 수 있거나 이미 거두고 있는 부문에 자원을 집중했다. 에너지 부문에 자원을 우선 투입했고, 기존 설비의 안정화나 현대화 등을 통한 소재 공급 역량 확충을 위해 노력했다. 기술 개발이나 설비투자 등에서 성과가 확인되면 이를 확산시켰다. 소비재 부문에서는 중앙정부 재정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을 적극 활용하는 등 국가 역할의 재정립을 모색했다.

셋째, 2013년부터 국산화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연료, 자재와 설비, 그리고 제품의 국산화 형태로 추진되었다. 시장에 대한 정책과 결합된 국산화 정책으로 국산 설비 현대화가 확산되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북 경제제재가 강화된 이후 점차 국산화에서 자립성쪽으로 강조점이 이동했다.

넷째, 양적 성장 전략에서 과학기술 육성 및 인재 양성 등을 통한 질적 성장 전략으로 전환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원격교육 확산, 과학기술 및 과학기술자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에서도 과학기술이 강조되었다.

다섯째, 실용주의적 산업정책이나 과학기술 및 교육·훈련 중시 정책, 주민 생활과 밀접한 부문 투자 등 전반적인 경제정책 기조에 맞춘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

이렇게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및 시장경제를 합법화한 경제 관리체계의 개혁은 북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했다. 실용주의적 투자와 자원 배분 정책은 중앙정부에 의한 자원 낭비의 요소를 줄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과학기술 중시 정책과 국산화 정책도 제한적이지만 여러 산업의 기술 수준 제고와 설비 현대화, 그리고 새로운 제품의 개발 등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질적 성장 전략으로의 전환은 대외 경제 관계가 통제된 현재로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하지만 성장 잠재력을 확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회복 중인 북한 경제

ⓒ평양사진공동취재단9월19일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남북 정상 및 수행단 오찬에 앞서 최태원 SK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구광모 LG 회장(오른쪽부터)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북한 경제는 1990년대 말 이후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회복 중이다. 제조업 회복은 여타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디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기계공업과 경공업을 중심으로 생산 역량의 회복 및 시장 경쟁력의 제고 가능성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중국 등으로부터 꾸준히 기계 및 설비를 도입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기계 및 관련 산업의 생산능력이 회복되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던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나 금성뜨락또르연합기업소 등 핵심 기계공장이 새로운 트럭을 개발하고 양산하기 시작했다. 중소 규모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수의 어선도 건조된다. 또한 국산 설비에 의한 설비 현대화가 경공업 기업을 중심으로 폭 넓게 진행 중이다. 가공식품 등 일부 소비재 부문에서도 중국산 수입품과 경쟁하는 북한산 제품이 늘고 있다. 여전히 중국산 수입품의 비중이 크지만 종합시장이나 백화점 등에서 북한산 제품의 비중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정보화와 중간계층 이상의 구매력 증가 등으로 ICT(정보통신기술) 제품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부품 및 반제품을 수입해 북한에서 최종 조립한 제품도 늘었다. 이렇게 시장화와 국산화, 그리고 과학기술 중시 정책 등이 결합되어 기술 부문에서 창업과 유사한 형태의 연구개발 및 생산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수력발전소 건설 및 화력발전소 개보수 등을 통해 전력 공급을 늘리기 위한 투자도 지속되고 있다. 아직까지 성과는 제한적이다. 다만, 정부의 재생에너지 개발 및 보급 정책과 주민들 노력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보급이 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에너지난 이후 에너지 효율 제고를 위한 투자를 꾸준히 진행해왔는데,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도 석탄가스화 고온공기 연소기술 등 에너지 절약 및 전환을 위한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발전량 증가로 제한적이지만 북한의 에너지 사정은 조금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대규모 장치 사업인 금속 및 화학 산업은 북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급 역량이 크게 개선되지 않아 북한 산업의 회복 및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시장화의 진전 및 제도 개혁 등으로 남북한 경제협력의 제도적 기반은 개선되었다. 향후 남북한 산업 협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전망된다. 그럼에도 아직 북한 경제 전반에 새로운 제도가 착근되고 있지는 못한데, 이는 제도보다 북한 기업을 비롯한 북한 경제의 역량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향후 남북 경협이 재개되면 시장질서에 입각한 남북 경협 방식을 통해 제도 변화가 북한 경제 전반에 확산될 수도 있다. 남북 경협이 재개되면 경공업 분야의 위탁가공 교역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 이후 건설 및 건설 관련 산업, 산업용 기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협력할 가능성도 열리리라 기대된다.

 

기자명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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