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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로비’ 하면 대한민국이죠

2018년 10월 12일(금) 제576호
유혜영 (뉴욕 대학 교수·정치학)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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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로비를 합법화하고 해당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정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외국 정부는 비용을 얼마나 지불할까? 한국은 적극적으로 로비를 하는 대표 국가다.

매년 9월 전 세계 이목이 뉴욕의 유엔본부로 쏠린다. 유엔총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여러 국가 정상의 연설이 중계되고 정상 간 릴레이 회담도 열린다. 미국을 방문한 외국 지도자는 미국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만나 교류 확대, 투자 유치 등을 논의하고 당부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영상으로 보는 국가 간 외교의 모습이다.

정상회담이나 유엔총회 같은 이벤트는 외교의 하이라이트가 될 수는 있어도 외교의 전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밑 외교’를 이해해야 정확한 맥락을 짚을 수 있을 때가 많다. 외국 정부나 기업은 국방·금융·무역·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또 미국 정부의 결정을 더 잘 이해하고 대비하기 위해 애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외교다. 그 물밑 외교의 정수가 바로 로비 활동이다.

한국에서 로비라고 하면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정치학에서 로비는 넓은 의미에서 이익집단의 정치적 활동과 관련된다. 이익집단은 로비스트를 고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을 만들려고 한다. 또는 이익단체 관계자가 정책 결정자와 정치인을 만나거나 이메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 및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로비는 선거 자금을 지원하거나 청탁을 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AP Photo
미국 이익집단은 로비스트를 고용해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유타 주 의회의사당에 모여 있는 로비스트들.


미국은 로비를 합법화했다. 대신 로비스트가 누구를 만났는지 반드시 보고하도록 했다. 이 기록은 공공정보로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래서 로비 활동과 관련한 기록을 토대로 한 연구가 가능하다. 미국 정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이익집단이 얼마나 돈을 쓰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익집단이라고 하면 전미총기협회(NRA) 등 이념적 성향이 강한 단체나 제약회사 등 다국적기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로비 활동을 하는 이익집단은 광범위하다. 시민단체나 기업 등 민간부문뿐 아니라 외국 정부와 공적 기관 등 이른바 공공부문에서도 활발하게 로비를 해왔다. 최근까지 이들을 이익집단으로 여기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대사관과 같은 공식 외교 채널을 둔 외국 정부가 로비스트를 고용한다는 사실 자체를 믿는 이들이 드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나라는 러시아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러시아가 개입한 의혹에 대해서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이다. 특검 수사와 별개로 미국인들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 가운데 하나인 선거에 다른 나라가 개입했다는 정황만으로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외국이 미국의 여론이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30년대 나치 정권은 미국에서 나치즘을 퍼트리고 히틀러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려고 조직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위협을 감지한 미국 의회는 1938년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통과시켰다. 개인이나 단체, 로비 회사나 로펌이 외국 정부·외국 기업·외국 단체의 이익을 대변해 로비했을 때, 얼마를 받았고, 어떻게 돈을 썼으며, 어떤 활동을 했는지 미국 법무부에 6개월에 한 번씩 보고하게 했다. 이 법안이 나치즘의 확산을 막는 게 목적이었다면, 1942년 통과된 개정안은 외국 이익집단의 로비로부터 미국 의회와 대통령의 활동을 보호하려 했다. 1966년 한 차례 더 개정안이 통과돼 더 많은 대리인에 대해 로비 활동 보고를 의무화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큰 변화가 없다가 1995년 미국 의회가 로비 활동 전반에 관한 법률을 새로 제정하면서 외국대리인등록법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의회는 미국 내 이익집단의 로비 활동을 규제하는 로비공개법(LDA)을 새로이 통과시켰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외국 기업은 FARA 대신 LDA에 의거해 로비 활동을 보고했다. 기업들은 FARA 규정이 엄격해서 기밀 유출을 우려해왔다. 이후 FARA에 따라 보고된 로비는 대부분 외국 정부나 정당과 같은 정치기관의 활동이었다.

미국 내 로비 회사와 계약한 나라 100여 개국

그렇다면 외국 정부와 기업은 미국 정부에 로비하는 데 돈을 얼마나 썼을까? 2007년 미국 법무부는 1942년부터 제출된 모든 로비 활동 보고서를 디지털화해 FARA 사이트(www.fara.gov)에 공개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1942~2014년 총 2만8852건 로비 활동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법무부는 6개월에 한 번씩 로비 활동을 정리한 반기 보고서를 미국 의회에 제출했다. 필자는 1942~2014년 의회에 제출된 반기 보고서를 바탕으로 미국에 로비를 한 외국 정부나 기업 등 해외 이익집단이 총 몇 개국에 속해 있고, 나라별로 얼마나 많은 로비 액수를 사용했는지 분석했다. <표 1>은 그 패턴을 보여준다. 해외 이익집단의 로비 기록이 존재하는 첫 번째 해인 1942년만 하더라도 FARA에 등록된 데이터는 매우 적었다. 당시 주권국가의 수가 적은 것도 그 이유가 될 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권국가 수가 늘어나고 미국 정부에 로비하는 해외 정부와 기업의 수도 급격히 늘었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 자체 로비 단체를 두거나 미국 내 로비 회사와 계약을 맺어 로비 활동에 가담한 나라가 100개국을 넘어섰다. 이는 냉전이 종식된 1990년 초반에 정점을 이룬다. 1990년대 이후 그 숫자가 줄어든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1995년 미국 의회가 로비공개법을 통과시켜 많은 해외 기업들이 FARA에서 LDA로 보고 경로를 바꾼 것과 관련이 있다.


<표 2>를 보면 이러한 패턴이 더 확실하다. 그래프는 1978~2014년 미국에서 로비 활동에 관여한 해외 고객들이 얼마나 썼는지 보여준다. 외국 정부·기업·정치인·정당·언론 등 다양하다. 파란색 선은 해외 고객들이 쓴 비용의 총합이고, 빨간색 선은 외국 정부가 쓴 비용만 따로 떼어낸 것이다. 1990년대 중반 로비에 많은 돈을 쓰던 외국 기업들이 LDA로 옮아갔기에 그 이후 FARA에 등록된 비용은 거의 외국 정부가 쓴 비용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 비용에는 외국 정부가 로펌이나 로비스트를 고용해 지불한 비용도 있지만, 한국무역협회 미주 법인이나 일본무역진흥기구 미국 사무소 등 공적 기관이 쓰는 비용까지 포함한다. 1990년대 초반 FARA에 등록된 모든 해외 고객들이 신고한 비용은 매년 20억 달러에 육박했다. 1995년 이후에도 외국 정부는 연간 5억 달러 가까이를 (넓은 의미에서) 로비에 쓰고 있다. 2010년 기준, 1만 개가 넘는 미국 국내 이익집단이 로비에 쓰는 비용이 총 30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200개가 채 안 되는 외국 정부가 미국 내 이익집단이 쓰는 로비 비용의 6분의 1이나 되는 돈을 쓴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가 미국 로비에 가장 많은 돈을 쓸까? 선거 자금과 로비에 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책임정치센터(CRP)는 지난 8월 FARA 로비 활동 보고서를 분석해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 1월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 정부와 공적 기관이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일본, 아랍에미리트, 중국이 차지했다. 1년6개월 동안 한국 정부와 공적 기관이 FARA에 신고한 비용은 총 7050만 달러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뉴욕 무역관 등 미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총 8개 무역관의 운영과 활동에 쓴 돈이 4500만 달러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외에도 주미 한국 대사관이 니클스그룹(The Nickles Group)이라는 로비 회사를 고용해 한·미 공조, 사드 문제,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 의회를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였다. 주미 한국 대사관은 또 록솔루션스(Rokk Solutions)라는 회사를 고용해 2016년 미국 선거와 관련된 브리핑을 듣고 미국 의회, 미디어, 오피니언 리더들과 한국 정부 관계자 간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미국에 가장 적극적으로 로비를 하는 대표 국가였다. 1978년부터 2014년까지 FARA에 제출된 보고서를 분석해보면 일본·캐나다·홍콩·영국과 더불어 한국은 로비에 가장 많은 비용을 썼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외교 관계가 단절된 국가가 아니라 영국이나 일본·캐나다처럼 미국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국가들이 가장 많은 돈을 썼다는 사실이다.

교역량 늘리고 무역 장벽 낮추려고

실제로 어떤 정책에 영향을 끼치려고 돈을 썼는지 살펴보면 한국을 비롯해 일본·독일·캐나다·멕시코 등은 미국과 교역량을 늘리고 관세와 같은 무역 장벽을 낮추려고 로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우디아라비아나 타이완 등은 무기 구입과 관련된 로비가 많았다. 케이맨제도나 버뮤다처럼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은 미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로비를 했다. 로비 대상을 살펴보면 의회뿐만 아니라 국무부·국방부·미국 무역대표부 같은 행정부는 물론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요 언론사, 그리고 하버드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이나 브루킹스 연구소 등 싱크탱크까지 광범위하다.

외국 정부나 기업의 로비 활동은 미국이나 시민에게 반드시 손해가 된다고만 할 수 없다. 경제학자 키쇼어 가완디 교수와 공저자들은 외국 정부나 기업이 무역정책 관련한 로비를 많이 할수록 실제로 미국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낮아졌다는 논문을 발표했다(키쇼어 가완디 외, <Foreign Lobbies and U.S. Trade Policy>, 2006). 이 논문에 따르면, 무역 장벽이 낮아지면 전반적으로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 소비자가 누리게 되는 효용도 커진다는 점에서 외국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와 미국 소비자, 무역 장벽을 낮추고 싶어 하는 미국 기업과 생산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도 있다는 것이다. 즉, 외국 정부나 기업이 미국의 무역 장벽을 낮추기 위해 로비 활동을 하면 결과적으로 미국 기업이나 소비자들이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는 셈이다. 가완디 교수는 다른 공저자들과 함께 2009년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이 로비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국의 기후와 위생 상태 등을 미국에 알려 미국 관광객 방문을 증가시켰다는 논문도 발표했다(키쇼어 가완디 외, <Foreign Infor-mation Lobbying Can Enhance Tourism: Evidence from the Caribbean>, 2009). 카리브해 연안 국가는 관광객을 늘려 수입을 높였고, 미국 관광객들은 휴가 선택지가 늘어나 효용이 높아졌으니 서로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은 것이다.

물론 외국 정부와 기업의 모든 로비가 미국 정부와 로비를 하는 양쪽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슈에 대해서는 로비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고, 외국 정부가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자들을 움직이게 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처럼 이익집단의 역할이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에서 합법적인 로비 채널을 제대로 이용하면 공식적인 외교 채널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실리를 챙길 수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은 효과적인 로비를 통해 정책 결정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준비를 해야 할 필요성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북핵 문제, 한·미 FTA 재협상 등 중요한 대미 외교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한국 정부는 어떤 로비 전략이 가장 효율적인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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