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68년 당나라의 숙적 고구려도 나당 연합군에 멸망했다. 원래 당 태종과 김춘추의 약속대로라면 대동강 이남은 신라가 차지하고 그 이북은 당나라가 차지해 평화롭게 지냈겠지. 언제나 제국(帝國)은 배가 고픈 법이다.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욕심을 냈고 이에 맞서 신라는 거국적인 항전을 결심하게 돼. 한반도 곳곳에서 신라와 당나라의 혈투가 벌어졌어.
672년 석문 벌판, 황해도 서흥으로 추정되는 너른 벌판에서 두 군대가 맞부딪쳐. 당나라 장수는 고간. 1년 전인 671년 끝까지 저항하던 고구려의 안시성을 함락시킨 사람이야. 신라 군은 처음에는 잘 싸워서 고간의 당나라 군을 곤경에 빠뜨렸어. 그러나 승리에 취한 나머지 무질서한 추격에 나서다가 역습에 휘말리고 말아. 신라 고위 지휘관 일곱 명이 단번에 전사하고 신라 군은 순식간에 전멸 위기에 놓여.
이때 한 젊은 신라 장수가 말에 올라 절망적인 돌격을 감행하려 하지만 그 부하가 악을 쓰고 막는 풍경이 펼쳐졌어. “놔! 놓으란 말이다.” “안 됩니다.” 말고삐를 잡고 상관을 만류하는 사람의 이름은 담릉. 그는 상관에게 안타깝게 부르짖었어. “장부가 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대로 죽을 자리를 찾는 게 어려운 겁니다.” 몇 번이나 담릉을 뿌리치려 했지만 끝내 그와 함께 말머리를 돌린 사람은 원술,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었지. 이후의 얘기는 대충 기억나리라 믿는다. 원술의 아버지 김유신은 화랑의 철칙인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규범을 어겼다고 해서 문무왕에게 그 목을 쳐달라고 요청해. 문무왕은 이를 거절하지만 김유신은 원술을 용서하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만나주지도 않았어.
그런데 김유신은 왜 그랬을까? 전투에서 진 모든 장수들을 죽여버린다면 신라에 군인의 씨가 말랐을 것이고, 석문 싸움의 패전은 한낱 부장이던 원술의 책임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자신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분노일 수도 있고, 자신의 아들부터 책임을 지우려는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을 테지만 아빠는 거기에 하나를 덧대보고 싶구나. 바로 가야 콤플렉스.
그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의 증손자였어. 진골에 편입되긴 했지만 신라의 긍지 높은 성골·진골 등 원조 ‘뼈다귀’들이 가야계 진골을 어떻게 봤을지는 김유신의 가계(家系)가 입증하고 있어. 진흥왕 때 김무력이라는 장군은 한강 유역을 두고 싸우던 백제의 성왕을 전사시키고 백제의 기를 완전히 꺾는 큰 공을 세웠어. 이 김무력의 아들이 김서현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신라의 성골 출신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어. 마침내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고서야 겨우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지. 김유신은 그 힘겨운 부부 사이의 아들이었어.
아빠는 김유신의 가야 콤플렉스가 일생 곳곳에서 묻어난다고 생각해. 망한 집안에서 부잣집 양자로 간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몸에 두르게 되는 철두철미함이랄까? 김유신이 김춘추의 아이를 가진 여동생 문희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여왕이 볼 만한 장소에서 장작 위에 올려두고 쇼를 했던 일화를 기억하겠지? 김춘추와 여왕이 보라고 장작 쌓고 불을 지른 건 맞지만 김춘추가 끝내 외면했다면 여동생 문희는 타 죽었을지도 몰라. 김유신은 애초에 김춘추와 여동생을 엮고자 했고 그 인연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튼튼히 하고자 했으니까. “내 아들을 죽여주시옵소서”라고 머리를 수그리는 김유신 앞에서 문무왕은 모골이 송연했을지도 몰라. ‘외삼촌이 우리 어머니 불태워 죽인다고 했을 때도 아마 저 얼굴이었겠지.’ 그때 김유신의 여동생의 뱃속에 들어 있던 생명이 바로 문무왕 자신이었거든.
통곡하며 가슴을 치고 펄쩍펄쩍 뛰어도…
김유신은 정말로 아들을 죽이고 싶었는지도 몰라. 황산벌 싸움에서 아들 반굴을 잃은 동생 흠순에게나 관창의 아버지 품일에게서 “어이구 형님 아들은 살아와서 기쁘시지요?” 소리를 듣는 건 죽기보다 싫지 않았겠니. 아들을 용서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유신은 죽는단다. 김유신의 조카이자 아내인(이상하지만 당시 혼인 형태다) 지소 부인 역시 아들 원술을 용서하지 않았어. 원술은 “통곡하며 가슴을 치고 펄쩍펄쩍 뛰었지만” 끝내 어머니를 보지 못했지.
675년 신라 북방에는 또다시 전운이 감돌아. 이근행이라는 장수가 20만 군대를 이끌고 남하해서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 지역으로 추정되는 매소성에 주둔해. 그런데 이 20만 대군의 보급부대가 신라 군에게 탈탈 털리고 말았어. 당나라 군은 조급해졌지. 신라 군이 매소성으로 육박해오자 당나라 군은 볼 것도 없이 성문을 박차고 신라 군에게 덤벼들었어. 야전(野戰)이라면 기병대가 주력인 자신들이 손해 볼 것이 없었으니까.
675년 9월29일 매소성 근처 들판에서는 향후 한반도의 역사를 가름하는 결전이 벌어진단다.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 군은 고슴도치처럼 똘똘 뭉쳐 당나라 기병대의 무서운 돌격을 막아냈어. 당 고종이 무지하게 탐을 냈고 기술자 구진천까지 당나라로 데려왔지만 끝내 그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 신라의 노(弩). 1000보 되는 거리에 화살을 날렸다는 이 비밀무기도 일제히 포문을 열었겠지. 죄수들까지 사면령을 내려 군대에 편입시켜야 했던 신라 군에는 고구려, 백제 유민들도 끼어 있었어. 어떻게든 이 전쟁을 끝내야 평화가 온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그들도 당나라 군에 치열하게 맞섰단다. 거기에 미친 듯이 당나라 군 진영에 돌입해 수풀처럼 당나라 군을 베어 넘기는 사람이 있었어. 바로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원술.
신라는 매소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빼앗은 말만 3만380필. 대충 몇만 마리가 아니라 정확한 수치를 기록해놓은 건 그만큼 명확한 승리였다는 방증이 아닐까. 당나라의 잔존 세력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지. 매소성 전투 이후 당나라 군은 전면 공격을 감행하지 못했고 676년 기벌포 해전에서 신라는 당의 야욕을 최종적으로 꺾게 된단다.
그래도 원술의 어머니는 아들을 용서하지 않았어. 그녀는 모정보다 남편의 뜻을 따랐던 거지. 원술은 벼슬도 마다하고 평생을 숨어 살았다고 해. 화랑 관창처럼 아버지 대신 창을 들고 죽음 앞으로 돌진하고, 백제의 계백처럼 결사대로 나가기 전 가족들을 죽여버리고, 김유신처럼 기껏 살아온 자식을 죽여달라 청하던, 전란의 삼국시대는 그렇게 끝났지.
신라 사회의 ‘주류’가 되고자 노력했고 신라 최대 공신이 됐던 김유신은 저승에서나마 아들을 용서했을까? 유감스럽게도 김유신의 후손들은 더욱 폐쇄적으로 흐른 신라의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6두품으로 전락하거나 숙청당했단다. 〈삼국유사〉에는 이런 전설이 실려 있지. 김유신의 혼백이 신라의 미추왕 무덤에 들어가 이렇게 호소했다고 해. “삼국을 통일한 공이 있고, 죽어 혼백이 되었어도 나라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없었는데 내 자손이 아무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나라의 왕과 신하, 그 누구도 더 이상 나의 공적을 생각해주지 않으니, 나는 더 이상 이 나라를 위해 애쓰지 않으렵니다.” 그때쯤 김유신은 원술과 화해했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라가 무엇이고 명예가 무엇이기에 나는 너를 죽이려 했을까. 인생뿐 아니라 역사도 덧없구나” 한숨을 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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