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그림
김이경 (〈살아 있는 도서관〉 저자)

예전에는 명절이, 특히 추석이 좋았다. 달콤한 송편을 먹을 수 있어서다. 이제는 송편도 추석도 성가시다. 대체휴일로 명절 연휴를 늘려주는 정부의 호의도 마뜩잖다. 집이 일터인 주부는 식구가 놀면 일이 늘고 덩달아 화도 는다. 차례상 차리고 치우고 밥상 차리고 치우고 다과상 차리고 치우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울컥한다. 이럴 땐 한바탕 울거나 웃으면 마음이 풀린다. 그래서 준비한 두 권의 독서 처방.

첫 번째 책은 출판기획자이며 작가인 강창래가 쓴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이다. 말기암을 앓는 아내를 위해 3년간 밥상을 차리며 쓴 요리 일기인데,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만 가득할 것 같지만 아니다. 칭찬에 인색했던 편집자(아내)의 호평처럼 글이 “절제되어 있고 우아하다”. 그런 글로 꾹꾹 눌러쓴 담백한 요리책이다. 슬픔은 요리에 들어간 양파처럼 행간에 스며 있고 드러나는 건 갖은 음식의 조리법이다. 라면이나 끓이다가 오십 넘어 요리를 시작했다는데 된장찌개·잡채는 기본이요, 해삼탕에 돔베국수까지 못하는 게 없다. 아픈 아내에게 한 술이라도 더 먹이려는 간절함의 소산이다.

간절함이 없어서인지, 20년 넘게 밥을 했지만 이런 요리는 엄두도 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보고 싶다. 문장만큼 담백한 레시피 덕분이고, 누군가를 위해 밥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달은 까닭이다. 하여 책을 덮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했다. 그러나 책은 책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었다니. 다시 울화가 치민다. 새로운 처방이 필요하다. 좀 통쾌한 책, 답답한 현실을 잊고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책이 없을까? 있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다.

스웨덴의 독립 언론인 스티그 라르손이 쓴 이 추리소설은 전 세계에서 5000만 부가 넘게 팔린 초특급 베스트셀러 ‘밀레니엄’ 시리즈의 1부작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이런 책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한국의 독자, 특히 여성 독자들이 그 진가를 잘 모르는 듯해서다. 나도 작년에야 읽었다. 우울과 무기력증에 허우적댈 때 시간을 죽이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저 그랬다. 낯선 인명과 지명은 몰입을 방해했고 매 장(章) 첫머리에 적힌 여성 폭력에 관한 짧은 글은 뜬금없었다. 이게 소설 내용과 무슨 상관이지?

그러다 책에 빠져들었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밥하는 시간은 물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정의롭고 속 깊은 남자 주인공도 멋졌지만 무엇보다 반항적인 천재 해커 리스베트를 비롯해 탁월한 리더십의 에리카, 씩씩하고 정의로운 모니카와 수산나 등 어디서도 보지 못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에 반해버렸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징징대며 원망하는 대신 당당히 맞서 제 삶을 누리는 여성들을 보면 이제야말로 더도 덜도 없는 한가위 같은 매일을 살고 싶어질 것이다. 부디 그러기를! 시리즈를 다 읽고 싶다면 3부작까지만. 4부는 원저자와는 무관하다. 자세한 내막은 스티그의 옆지기 에바가 쓴 〈밀레니엄 스티그와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김현 (시인)

이번에도 말 조심하셨습니까. 누구나 명절에는 말의 범람으로 고생합니다. 대학은 어디니, 취직은 했니, 연봉은 얼마니, 애인은 있니, 결혼은 언제 할래, 아이는 가져야지, 부모에게 효도해라…. 끝없이 이어지는 명절 잔소리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부러 귀를 닫고, 입을 닫고, 눈을 닫았던 사람이 저만은 아닐 겁니다. 한 사람이 하고 한 사람이 듣는 말이면서도, 누구나 하는 말 같고 누구나 듣는 말 같은 이 ‘가부장의 언어’는 도대체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된 걸까요. 언제 누구에게까지 이어지게 될까요.

고향에 내려가 부모·형제, 친지들과 북적북적 어울리며 명절을 쇠고 ‘혼자 살던 곳’으로 돌아오면 ‘내 집이 최고’라는 말이 자연히 흘러나옵니다. 며칠, 말의 요란함을 견딘 후에 얻게 되는 그 혼잣말은 귀한 거지요. 욕이나 흉이나 칭찬을 들어도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귀가 순해지는 나이도 있다곤 하나 명절이 지나고 나면 누구나 서둘러 귀가 순해지고 싶고, 말이 없는 한가운데에서 나를 다독이게 됩니다. 듣기 싫었던 말, 하지 못했던 말, 듣고 싶던 말, 하고 싶던 말을 찬찬히 되돌아보게 되지요. 그때 책상이나 소반 위에 맥주 한 깡통과 크래커 한 봉지를 올려두고 읽거나 보는 행위는 그야말로 ‘어른의 말씀’에 주눅 들지 않고 나 자신과 대면하게 하지요. 무례한 이에게 웃으면서 대꾸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기엔 이미 늦었고,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배워야 할 말과 이미 배웠으나 버려야 할 말들에 관해 골몰해보는 건 명절 뒤풀이에서 보장되는 확실한 재미입니다. ‘명절증후군’이란 대체로 말은 많고 생각은 적었던 날들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그 순간 발견하는 “사람은 말을 할 때 타인의 목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얼굴을 본다. 얼굴은 듣는 행위의 일부다” 같은 문장들은 말없이 생각의 기둥을 솟구치게 하지요.

막스 피카르트는 〈인간과 말〉에서 ‘침묵이란 뜻밖의 사건의 가능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집단의 상태에서 벗어나 ‘혼자’라는 상태가 되고 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보이던 게 보이지 않지요. 스스로 힘써 혼자라는 ‘내부 공간’을 만들어보면 명절은 뜻밖에도 ‘인간과 말’을 탐구할 수 있는 좋은 학습의 현장이 됩니다. ‘홀로 걸어가는 고독한 인간의 침묵 속에서 말은 불현듯 집을 얻는다’라는 피카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혼자가 되어서 비로소 진리의 창문을 열게 되지요. 사람은 말할 때 목소리만이 아니라 얼굴도 본다는 것, 얼굴을 살펴 들으면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고심해야 한다는 것은 알 듯 말 듯한 깨달음입니다. 명절에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살펴 듣는 것에 참 야박하지 않나 싶습니다. 남의 얼굴을 살펴 듣는 행위를 포함하는 말하기만을 우리는 ‘대화’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요.

명절증후군을 극복하는 데에 책보다 더 효과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가성비를 따지면요. 그러나 ‘사색의 언어’로 가득 차 있는 책은, 책과의 대화는 우리의 얼굴을 산뜻하게 명절의 뒤끝에서 다른 차원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말로 가득 찬 세계가 아니라, 말로써 텅 빈 세계로요. 명절에는 누구나 가득한 듯 공허한 말들 속에서 헤맵니다. 이제, 공허한 듯 가득한 말들의 세계를 느릿느릿 거닐어보면 어떨까요. 설령, 그다음 페이지가 잠으로 연결된다고 해도요.

ⓒ이우일 그림


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매니저)

30대가 되고 나서 가장 놀란 건 나의 삶에 ‘결과’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20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일이 끝없이 이어진 가느다란 실처럼 느껴졌고, 이 지겹도록 길고 긴 실 위를 헤매는 일과 앞으로 내게 펼쳐질 미래 사이에는 그 어떤 연관성도 보이지 않았다. 착각이었다. 그때 행한 일은 아무것도 증발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발효했을 뿐이다. 나는 매 순간 그 시큼한 결과를 마주하고 있다. 요즘 나는 떨어지는 체력을 실감하며 어떻게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고, 혼자만의 논리에 취해 친구에게 모질게 굴었던 어느 늦은 밤을 후회하고 있다. 외면하거나 미뤄두었던 일들이 차례대로 방문 앞에 찾아와 노크한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결과가 매일 내 옆에 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서점을 운영 중이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홀로 서점을 운영해온 아버지는 좀처럼 흔들림이 없다. 점심때가 되면 점심을 드시러 가고, 날이 어두워질 때쯤 저녁을 드시러 간다. 대걸레를 들고 하루도 빠짐없이 마루 위에 찍힌 사람들의 발자국을 지운다. 변함없는 아버지의 모습이 든든하고 존경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작정한 것처럼 내 마음을 구겨놓는다. 세월은 변했고, 서점도 변했는데, 당신만이 무뚝뚝한 모습 그대로 옛날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서점을 운영한 지 4년째 되는 올해, 나는 유독 휑해진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보며 아버지가 없는 서점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다른 일도 많은데 청소하는 날만이라도 조금 줄이자는 나에게 아무 대답 없는 아버지. 손님들에게 계산해드리며 때로 인사도 건네고 미소도 지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는 내 앞에서 멋쩍어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더 이상 서점에 없는 날을 그려보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텅 빈 서점은 내겐 너무 크게만 느껴진다. 나는 그가 없는 서점에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렵다. “먼저 태어난 것이 먼저 죽는다는 이치(‘입춘’)”를 뼈저리게 깨닫기까지, 너무 오랫동안 애먼 곳만 바라보며 시간을 허비한 건 아닌지.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을 한 장씩 넘기며 나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늦도록 외롭지 않게 살아라(‘따뜻한 한 그릇의 말’)”라는 말을 읽으며, 오래도록 아버지와 서점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곁에 남아 있는 것들이 나의 결과가 될 테니까,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린다. 나의 가족에 대해, 그리고 오래된 친구에 대해 생각한다. 몰랐던 것들과 보이지 않는 일들에 손을 뻗으려고 하기보다, 시인의 말처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려 한다. 익숙하고 익숙해서, 어느새 내 몸에 스며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본다. 비록 어색한 미소와 어정쩡한 포즈라 하더라도, 너무 멀어지기 전에 그들의 손을 잡아본다.

“전하지 못한 말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너무 멀리 흘러와 버렸구나(‘밑줄을 긋지는 않았지만 그 문장들 아래’).” 심재휘 시인의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을 다 읽고 났을 땐, 제목 앞에 단어 3개를 덧붙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늦기 전에.’ 그리고 나 들으라고 한번 소리 내어 발음해본다. ‘너무 늦기 전에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이라고. 너무 늦기 전에 정말 그래야 한다고 말이다.



김소영 (〈어린이책 읽는 법〉 저자)

명절에는 어른들뿐 아니라 어린이도 한집에 모인다. 서로 어울려 놀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어린이라고 해서 일가친척이 다 반가운 건 아니다. 문제는 어른들의 말이다. “○○는 참 의젓하다” “○○는 운동을 잘한다며?” “○○는 공부 걱정 없지?” 하는 말은 ‘○○’ 옆에 있는 어린이도 듣는다. 옆으로 떨어지는 칭찬은 불똥을 튀기게 마련이다.

〈나는 천재가 아니야〉의 롤라는 음악가 집안의 딸이다. 아무도 롤라에게 음악에 재능이 없다고 말하지 않지만, 오빠 그라시안에게는 모두가 ‘피아노 천재’라고 한다. 주눅이 들 만도 한데 롤라는 끄떡없다. 자신은 음악보다 축구를 훨씬 좋아하는 데다, 학교 축구팀의 유일한 여자 선수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가기로 한 그라시안의 콩쿠르 일정이 롤라의 중요한 축구 경기와 겹치자 부모는 당연하다는 듯 롤라를 포기시키려 한다. 롤라는 가출까지 감행하며 경기에 참가하지만, 의지와 달리 결과는 참담하다. 게다가 압박감에 시달리던 그라시안이 콩쿠르 중간에 연주를 포기해버리면서 집안은 발칵 뒤집힌다.

누구나 천재는 아닐뿐더러, 누구나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어린이라고 해서 가능성이 무한하지도 않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나 무한히 가질 수 있다. 그 마음이 튼튼하면 자신의 한계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도 성장이다. 롤라가 보여준 것처럼. 롤라가 말문을 닫아버린 그라시안과 함께 존 케이지의 〈4분33초〉, 즉 침묵을 연주하는 장면은 어른들의 말에 지친 어린이에게 조용한 위로를 준다.

명절이라고 해서 모든 어린이가 친척들과 함께 보내는 것은 아니다. 명절을 적적하게 보내는 어린이에게는 조상께 감사하는 한가위를 보내자는 말이 남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예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할머니의 할머니 정도가 아니라 진짜 조상님 말이다.

〈이상희 선생님이 들려주는 인류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지적인 자극을 주는 책이다. 우선 고인류학이라는 낯선 학문을 어린이에게 소개하는 점이 반갑다. 작가는 진화에 대한 설명이 흔히 인류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백인 남자’가 그 최종 결과인 양 전시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이어서 인류의 진화는 큰 두뇌가 아니라 두 발로 걷는 일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그 때문에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조목조목 살핀다. 이러한 논리가 ‘서로를 돕는 두 팔’로 귀결되는 대목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일러스트에 여러 인종의 남녀노소가 등장하는 점도 좋다. 인류를 보는 눈이 탁 트이는 것만 같다.

독서교실 어린이들은 설날이 “떡국 먹고 한 살 먹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세뱃돈을 받아서” 더 좋지만, 추석은 “방학도 아닌데 길게 쉬어서” “날씨가 좋아서” 또 좋다고 한다. 연휴 끝에 성큼 다가올 가을에는 어린이와 함께 자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눠보자. 단, 어른이 궁금한 것 말고 어린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게 하자.

〈아빠, 나한테 물어봐〉가 대화의 힌트를 준다. 아빠와 딸의 가을 산책을 그린 이 그림책은 둘의 대화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빠는 귀를 활짝 열고 딸은 마음을 활짝 연다. 읽다 보면 이야기하고 싶고, 이야기하다 보면 걷고 싶어진다. 그럴 땐 책을 덮고 나가도 좋겠다. 이 책의 첫마디는 이렇다.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한번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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