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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권과 몰래카메라

2018년 10월 11일(목) 제576호
이상엽 (사진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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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사회를 흔드는 이슈 중 하나가 ‘몰래카메라(몰카)’이다. 매번 수만명의 여성들이 모이는 집회의 피켓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호도 몰카 얘기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몰카는 단지 몰래 사진을 찍는 것을 넘어 개인 인권과 사생활을 파괴하는 ‘포르노’로 둔갑되어 매매된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데 집회 사진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몰래카메라 찍지 말라는데 넌 또 찍네.’ 사진기자를 겨냥한 이 문구는 불법적인 몰래 촬영과 공공장소의 집회 촬영이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항의하는 의미인가?

ⓒErich Salomon
영국 총리와 환담하는 아인슈타인(오른쪽 세 번째). 에리히 잘로몬이 1931년에 촬영했다.

아마도 최초의 몰카 사진가라면 저 유명한 독일인 에리히 잘로몬(1886~ 1944)일 것이다. 변호사이자 프티부르주아 출신인 이 사내는 라이카와 같은 소형 카메라를 이용해 법정이나 국제연맹에 잠입해 대상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사진을 찍어 유명해졌다. 그래서 외교가에는 “국제 회담은 세 가지만 있으면 완료된다. 외교관, 테이블, 잘로몬!”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사진 역사는 그런 잘로몬의 사진에 ‘캔디드 포토(자연스러운 사진)’라 이름 붙였다.

인생 내내 초상권 소송에 시달린 유명 사진가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초상권이 인권법의 일부로 확고부동하지만 사실 매우 역사적인 산물이다. 특히 회화의 시대에 초상권 분쟁이 있을 수 없지만 사진이 발명된 후 상황이 달라졌다. 20세기에 소형 카메라와 캔디드 포토가 등장하고 원치 않는 자신의 모습이 대중에 공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파리의 키스’ 사진으로 유명한 프랑스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는 인생 내내 이런 초상권과 관련한 소송에 시달렸다. 기록을 중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반발했다. ‘그럼 뭘 찍어서 역사에 남기나?’

여전히 카메라를 든 자들이 갑이었다. 시선의 권력이었다. 윤리적인 문제로 해결될 게 아니었다. 당연히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현재 21세기에는 거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불편해졌다. 찍히지 않을 권리는 사적·공적 장소를 막론하고 늘 적용되는 인권처럼 인식되었다. 언론은 광화문 집회처럼 공적 장소의 참석자까지 얼굴을 ‘블러(흐리게)’ 처리했다. 사진 전문가의 생각은 좀 다르다. “초상권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함이므로 얼굴 찍는 일 자체를 금지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를 인격권 침해로 여긴다면 우리는 공적 장소에 가는 행위 자체를 삼가야 한다(박평종,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

우리 판례에도 공공장소의 사진 기록에 관한 것이 있다. 2009년 한 언론사를 대상으로 제기한 초상권 침해 소송에 대해 재판부는 “공공장소에서 집회는 참가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알리고자 하는 행동이므로, 언론이 이를 찍어 보도해도 원칙적으로 초상권 침해가 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 초상권 침해 기준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를 작성하면서 내용과 무관한 인물의 사진을 사용한 경우, 사진 또는 영상의 인물이 관련 기사와 함께 부정적인 인상을 줘 해당 인물을 모욕하거나 비방할 목적으로 촬영된 경우는 초상권 침해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판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초상권과 공적 기록은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차츰 초상권이 강화되어가는 추세이고 기록도 사진을 넘어 CCTV와 안면 인식 기술로 국가 통제 방식으로 진화 중이다. 공적인 기록에서조차 무엇이 개인의 권리이고 무엇이 가치 있는 역사적 기록인지가 흔들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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