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일 청와대 앞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개신교 목사들은 손가락 혈서로 “NAP 절대 반대”라고 쓴 문구를 각기 한 글자씩 들고 있었다. 비장한 표정의 목사들 뒤에는 동원된 신도들이 포진했다. 국무회의에서 ‘제3차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안(NAP)’이 통과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시위였다. 이들은 스스로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는 단체들의 목사이다. 정부가 NAP를 실행하면 순교할 각오까지 했다고 한다. 8월7일 국무회의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자, 성평등 지향이 “동성애를 옹호”하기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뿐인가. 개신교 정신으로 설립되었다는 한 대학에서,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강연자를 초청한 학생들이 징계를 받았다. 한 신학대학은 학생들이 성소수자 포용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들었다는 이유로 징계했다. 그 신학대학은 동성애 옹호의 흔적이 있으면 입학이나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충남의 개신교 단체들은 9월12일 ‘인권조례를 제정하면 동성애자·난민이 몰려올 것’이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충남도의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퀴어문화축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폭력적 방해자들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예수 따르는 이들’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표명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혐오 정치에 가담하는 행위 자체가 예수 정신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것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사유 없음의 종교’는 이렇게 왜곡되고 폭력적일 수 있다. 혐오 정치를 예수 믿음이라고 확신하는 이들에게서, 예수는 단지 종교적 상품일 뿐이다. 교회들은 예수 상품을 만들고 구원을 파는 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예수 상품은 교회라는 기업의 유지를 위해서 오용되며 예수는 혐오주의자로 소비된다.

혐오 정치는 예수의 이름으로 종교 기업가들에 의해 구성되고 확산되고 신성화되고 있다. 교회 세습, 성소수자 혐오, 타 종교 혐오, 여성 혐오, 난민 혐오들로 이어지는 한국 교회의 파괴적 사회 개입은 예수의 이름으로, 그 예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혐오 정치를 전염병처럼 확산시키고 있다. 개신교에 대한 냉소적 표현으로 등장한 ‘개독교’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이다. 개는 적어도 노골적인 혐오를 조직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


ⓒ연합뉴스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입구에서 동성애 동성혼 개헌 반대 국민연합 주최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국가인권정책(NAP) 기본계획' 규탄 및 폐지를 주장하며 혈서를 쓴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작 예수는 성서 그 어느 곳에서도 종교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화된 종교나 교리들이 인간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면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수의 주요 행적과 가르침은 종교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에 관한 것이다. 개별 인간들이 이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는 육체적·정신적 배고픔, 의미에의 목마름, 다층적 아픔, 헐벗음, 소외된 주변인 등에 대한 책임과 환대가 바로 예수를 따른다는 의미이다. 예수는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사랑이 바로 신에 대한 사랑과 같음을 가르친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 확장 위해 순교를 호명한다면

예수의 모든 가르침은 종교가 아닌 타자에 대한 사랑·환대·책임성에 관한 것뿐이다. 그래서 존 카푸토는 “종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Religion is for lovers)”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은 그 예수가 정작 무엇을 하라고 했는지는 관심 없다.  

타자에 대한 절대적 포용과 사랑을 가르쳤던 예수가 현장에 있었다면 통탄했을 일이다. 혈서를 쓰며 순교까지 각오하는 그 비장한 결의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 확장을 위한 열정으로 돌리면서 순교를 호명한다면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이제 신과 예수를 호명하며 혐오 정치를 신성화하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

차라리 예수의 이름을 떼어버리고, 노골적 혐오 집단으로 등장하는 것이 정직하다. 예수는 모든 종류의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는 절대적 포용과 환대를 상징하는 이름이며, 혐오 정치는 인류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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