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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수당의 빛나는 성적표

2018년 10월 19일(금) 제579호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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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가 2017년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에 참여한 이들을 추적 조사했다. 수당을 받은 청년들은 1년이 지난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마약성 진통제를 놓는 것.” “청년의 정신을 파괴하는 아편.”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2016년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이 시작될 때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등 정치권에서 나온 말들이다.

그 비판이 맞았는지를 따져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청년수당 1기’ 서울시 청년 5000여 명이 6개월 동안(2017년 7~12월) 월 50만원씩을 지원받고 난 뒤 1년여가 지났다(2016년 8월 첫 사업이 시행됐지만 보건복지부의 직권 취소 처분으로 한 달 만에 지원이 끊겼다). 청년수당이 ‘마약’이고 ‘아편’이라면 이들의 현재는 매우 참담할 것이다. 청년수당 정책의 효과를 검증하려면 청년수당 1기의 현재 삶을 추적 조사할 필요가 있다. 청년수당 그 후 1년, 수당을 받던 청년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의 ‘2017년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참여자에 대한 2018년 추적 조사 분석(응답자 2002명)’ 결과, 1년 전 청년수당 참여자들은 지금 활력 있게 잘 살아가고 있다. 조사 결과 마지막 청년수당을 받은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인데도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참여자의 97.2%가 ‘청년수당이 나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청년수당 참여를 권하겠다’고 답한 비율도 93.9%였다. ‘니트(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무직)’ 상태에 있던 참여자 가운데 38.7%가 취업했고 2.1%가 창업했으며 6.4%가 창작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구직 중’인 37.5%와 시험 준비, 창업 준비, 진학 등 ‘준비 중’인 5.3%도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오른쪽 <표 1> 참조).
ⓒ김흥구
청년수당을 받은 참여자들은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참여자의 97.2%가 ‘청년수당이 나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청년수당 정책의 성공 지표는 취·창업률 수치만이 아니다. 청년수당 참여자 다수가 이전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고 굳센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도 이번 조사로 확인되었다. ‘나는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해나갈 수 있다’ ‘나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다’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청년이 예전보다 늘었다. 자신에 대한 긍정은 사회와 국가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더 많은 청년들이 정부와 지방정부(서울시), 주변 이웃을 신뢰하게 되었다(30쪽 <표 2> 참조).

청년수당은 ‘어떻게’ 청년들의 삶과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통계 수치가 미처 전하지 못한 청년수당 ‘에필로그’를 들어보기 위해 2017년 서울시 청년수당 사업 참여자 5명을 만났다. 공무원, 심리상담가, 청년 지원 활동가, 마을공동체 활동가, 음악가 등 각자의 꿈과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정확히 알고 최선을 다해 그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청년들이다.

■오후 3시가 점심시간이었던 까닭


공무원 시험 준비생 채수용씨(27)는 공부하는 내내 배가 고팠다. 졸업 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싶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았다. 홀로 계신 어머니가 버는 수입에 기대야 했다. 시험 준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녹초가 되어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채씨는 ‘초절약 공부’ 전략을 택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학원 수강비와 교통비를 쓰는 대신 다른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첫 번째가 밥값이다. 새벽 일찍 노량진 학원가로 나와 저녁 늦게 집에 돌아갈 때까지 채씨는 한 끼를 먹었다. 점심시간은 오후 3시로 조정했다. 남들처럼 낮 12시에 먹으면 너무 일찍 배가 꺼져 오후 내내 힘이 들기 때문이었다. 매일 굶주린 배를 안고 오후 3시를 기다리면서 공부했다.

공부 장소에 들이는 돈도 아꼈다. 500원, 1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에서 주로 공부했다. 그곳에 자리가 없으면 주변 카페에 몰래 들어갔다. 커피는 주문하지 못했다. 직원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앉아 ‘도둑 공부’를 했다. 배는 늘 고프고, 자리는 가시방석이고, 집중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수험 기간에 살도 많이 빠지고 늘 속이 쓰렸다.

지난해 하반기 청년수당을 받기 시작하면서 채씨는 식비를 가장 많이 늘렸다. 하루 두 끼를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남들처럼 낮 12시에 점심을, 저녁 6시에 저녁을 먹었다. 늘 그 맛이 궁금하던, 연예인이 광고하는 9000원짜리 수제 햄버거도 먹어보았다. 제대로 된 유료 독서실 이용권도 끊었다. 그런데도 어머니께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했다. 공부가 잘됐다.

청년수당이 끊긴 올해 1월부터는 다시 두 끼에서 한 끼로 돌아갔다. 배고픈 걸 참고 공부하면서도 마음이 덜 볶였다. “풍족했던 지난 6개월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너무 궁금하던 9000원짜리 햄버거 맛이 먹어보니 막상 별거 없었던 것처럼, 잠깐이나마 한번 배불러본 경험이 오히려 다시 배고픈 시절을 버텨주는 힘이 되었다. 채씨는 지난 6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서울시 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경쟁률이 매우 낮은 면접시험만 남겨놓은 상태다.

채씨가 곧 일하게 될 직군은 사회복지 공무원이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이쪽 진로를 택하기도 했지만 청년수당 참여자로 지내면서 보편적 복지정책의 의미를 더 절실히 깨달았다. “저소득층, 장애인, 노인 등 생각하기 쉬운 취약계층뿐 아니라 청년을 포함한 누구나가 사회복지의 대상자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세상과의 고리가 연결됐다”

송은주씨(30)는 노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을 깊이 묻어놓고 살았다. 실용음악을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 반대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다. 여러 가지 불운이 겹쳐 대학을 중도에 자퇴했다. 돈을 벌기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음반 매장에 취직해 5년 동안 일했다.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두 달만 쉬기로 했다. 하지만 수입을 이어가기 위해 곧 다시 일을 찾아야 했다. 내년이면 서른 살이었다. ‘시간을 드립니다’라는 청년수당 참여자 모집 공고를 본 건 그렇게 매일이 초조하고 쫓기던 20대의 끝자락이었다.

청년수당은 정말 ‘시간’을 주었다. 그동안 송씨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앞만 보고 뛰어가는 수직선과 같았다. 청년수당을 받는 6개월은 지난 30여 년을 돌아보고 지금 서 있는 곳과 나아갈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수평선의 시간’이었다. 주말에도 거의 일을 나가느라 지난 5년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청년수당 참여자에게는 매달 수당뿐 아니라 청년들이 모여 교류할 수 있는 행사나 커뮤니티 모임에 관한 정보가 문자메시지로 날아왔다. 용기를 내어 신청했다. 집단 상담에 참석하고 목공을 배웠다. ‘자기 정리 시간’을 통해 유아기부터의 삶과 꿈을 돌아봤다. 내가 원래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찬찬히 되짚었다(왼쪽 <표 3> 참조).

그렇게 ‘수평선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송씨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한 번 사는 인생, 무얼 해야 가장 행복할까 수백 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노래를 해야겠다.’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두려워서 외면하고 있었던 대답이었다. 결론을 내린 뒤 머릿속이 맑아졌다. 송씨는 내년 초 실용음악과 대학 편입을 목표로 다시 악보를 손에 쥐었다. 노래와 작곡 연습을 하며 머릿속에 그리는 미래는 ‘방탄소년단’처럼 외신 뉴스에 나오는 한류 가수다. MTV 무대에만 올라도, 아니 그저 누군가 내 노래에 추억을 담을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꿈을 되찾은 뒤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도 적극 나섰다. 친구들 입장에서 수년간 ‘잠수 타고 있던’ 송씨는 하나둘씩 지인들에게 연락을 재개했다. 청년수당 참여자들과도 꾸준히 교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송씨는 “청년수당을 계기로 그간 끊어져 있던 세상과의 고리가 연결됐다”라고 말했다.

이지윤씨(가명·26)도 청년수당을 받으면서 마음속 깊이 묻어놓았던 꿈을 꺼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던 이씨는 영양사로 돈을 벌면서 짬짬이 공부를 해 심리상담가가 되겠다는 계획을 짜놓았다. 복수전공으로 심리학을 배우고 대학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나도 이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계획은 대학 졸업 전 사기업 급식실 영양사 인턴 경험을 하면서 헝클어졌다. 사회에 본격 진출하기도 전 그곳에서 너무 큰 내상을 입었다. 업무상 위계가 높은 남성 조리사가 기분이 나쁘면 어머니뻘인 여성 조리원들을 발로 차는 식의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일터에서 계속 일하고 싶지 않았다.

‘전쟁을 끝내고 온 병사 같은 마음’으로 학교로 돌아왔다. 갈 길을 잃은 채 곧 졸업을 맞았다.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대학원을 가려 해도, 자격증 공부를 하려 해도, 하다못해 토익 점수 하나를 따려 해도 돈이 필요했다. 그 돈 앞에서 멈칫멈칫 발걸음에 제동이 걸렸다. 일단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해 관심도 없는 회사에 지원서를 냈다. 연이어 퇴짜를 맞던 차에 청년수당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월 50만원이 생기는구나, 좋구나’ 정도의 감상에 그쳤던 청년수당은 의외로 이씨 삶에 작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다. 월 50만 지출에 대한 활동계획서와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진짜 꿈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응시료 앞에서부터 주춤거리던 상담사 자격증 시험을 과감하게 신청했다. 심리학과 대학원 진학을 위해 모집 요강을 꼼꼼히 살펴보고 목표를 정했다. 영어 점수를 갖추기 위해 학원에 등록했다. ‘이 돈이면 차라리 저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리저리 기회비용을 따지다 아무 일에도 나서지 못했던 예전과 달리 실행의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는 청년수당 참여자 교류 모임을 연다. 위는 ‘어슬렁반상회’ 모습.

마음도 제법 넉넉해졌다. 어머니가 청소기 돌리는 소리에도 위축되던 그였다. 용기를 내어 ‘어슬렁반상회’ ‘마음톡톡’ 등 여러 청년수당 참여자 교류 모임을 기웃거렸다. 이야기를 나누고, 필름 카메라 출사를 나가고, 노동 강의를 듣고, 옥상에서 함께 가만히 누워 하늘의 별을 헤아렸다. 쓸데없는 듯 쓸모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시야가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도 소중한 사람인가 봐.’ 위로를 받고 다시 사회로 나갈 마음의 힘을 얻었다.

힐링을 마친 이씨는 ‘힐러 리(Healer Lee)’를 꿈꾼다. 심리학 전공 대학원에 합격해 지난 9월부터 다니고 있다. 학과 조교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주경야독’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던 예전보다 오히려 마음은 더 여유롭다. 이씨는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사실상 삶에서 자기 주도권을 행사하기 힘든 20대를 잘 도와주는 게 어쩌면 평생 자기 주도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청년수당으로 찾은 ‘다른 길’


정민경씨(가명·31)는 오랜 기간 한 우물을 팠다. 6년 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공부에 ‘올인’했던 기간은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공부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찔끔찔끔 공부했다. 노량진에서 하루 종일 사는 ‘공시족’이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공부하면 붙을 수 있을 텐데….’ 미련이 남아서 포기도 못하고, 공부에 몰입하지도 못한 채 20대가 흘러갔다.

2017년 하반기 청년수당을 받는 6개월 동안 정씨는 그간의 갈증을 해소했다. 돈 걱정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편도 한 시간이 걸리는 구립 도서관에 가는 대신 집 가까운 유료 독서실 이용권을 끊었다. 듣고 싶은 인강(인터넷 강의)도 마음껏 신청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운 다음 지난 3월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탈락. 정씨는 “오히려 시원했다”라고 말했다. “혼신의 노력을 다 해봤는데 안 된 거잖아요. 이전에는 내가 ‘올인하지 못해 못 붙는가 봐’ 핑계가 남았는데 이번에는 문턱이 확실히 높다는 걸 깨달았어요.”
ⓒ시사IN 조남진
정민경씨(가명·왼쪽)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끝내고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활동가로 취직했다.

미련을 훌훌 털어버린 정씨는 ‘우물 밖’으로 나와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던 중에 우연히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의 채용 공고를 봤다. 자신과 같은 청년수당 참여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청년사업 관리·지원 직책이었다. 합격하리라는 기대보다는 혹여 면접에 가게 되면 “청년수당 참여자로서 큰 도움을 받았다.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합격했다. 지난 5월부터 정씨는 정책 ‘수혜자’가 아닌 ‘지원 활동가’로 청년수당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대를 돌아보며, 또 2018년 청년수당 참여자들을 만나며 정씨는 확신했다. “많은 청년들이 시키는 대로 정규 교육과정을 끝내고 졸업했는데 이제 뭘 해야 하지? 어떻게 사회에 진입해야 하지? 이런 질문에 제대로 지원해줄 자원도 없고, 자기 모색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대세에 떠밀려간다. 이들이 자기 길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청년수당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마을공동체 기획자로 활동 중인 문승수씨(가명·27)도 지난해까지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었다.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금융권 취업을 위해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돈도 쓰지 않고 집과 구립 도서관만 왕복했다. 대학 시절에도 동아리 활동 같은 ‘딴짓’을 하지 않고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에만 충실하던 문씨였다.

지난해 7월부터 월 50만원의 수입이 생기자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책상 밖을 볼 여유가 생겼다. 비슷한 처지의 또래 친구들을 만나 교류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청년활동지원사업의 비금전적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취업 스터디에서는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독서 모임에서는 함께 영화를 보고 독립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다. 음악 모임에서는 같이 노래를 만들고 스튜디오에 가서 실제 녹음도 해보았다.

올해 4월부터는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청년 마을공동체 ‘강동팟’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게 되었다. 문씨는 현재 마을의 사회적 경제나 공동체 기초 자원을 조사하거나 청년 교류 모임 ‘어슬렁반상회’ 등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다. “어떻게든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뚫어보자는 생각만 하고 옆길로 샐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청년수당 참여 기간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들을 해보면서 세상엔 다양한 영역이 있고 거기서도 충분히 내가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회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국가나 지방정부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다가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쪽에서도 나를 믿어주는 것 같고 나도 기꺼이 믿어줄 수 있고. 청년을 산업의 역군으로만 보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봐주고 있구나 든든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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