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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m 굴뚝 위에서 두 번째 맞는 겨울

2018년 10월 25일(목) 제579호
김혜인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직사업부장·전 하이디스 노동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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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윤현지

혹독한 더위가 어제 일 같은데 어느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겨울은 길 위의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도착한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는 아직 ‘괜찮은’ 날씨라 해도 하루 종일, 날마다 밖에 있으면 결코 괜찮지 않다. 겨울은 투쟁하는 사람들이 특히 더 고달픈 계절이다. 길 위에서 한뎃잠 자며 싸워본 나는, 그게 뭔지 안다.

전 직장 하이디스에서 나는 수차례 농성을 해야 했다. 네 번째 농성은 2017년 11월2일, 청와대 앞에서 시작되었다. 가을은 절정이었다. 낮에는 덥지 않아서 좋았지만 아침저녁 큰 폭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11월 말에는 평년보다 훨씬 추운 날씨가 계속됐다. 청와대 앞은 천막은커녕 비닐 한 장조차 칠 수 없었다. 11월27일 서울 종로구청 공무원들은 경찰을 대동하고 기습적으로 농성장에 들이닥쳤다. 그나마 바람을 막아주던 비닐뿐만 아니라 피켓, 현수막 따위 물품까지 죄다 빼앗겼다. 그날 밤 청와대 사랑채 앞으로 이동해 비닐 한 장 없이 맨몸으로 버티며 항의 농성을 했다.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날씨에 비닐 한 장 두른 농성장에서 잠들 때면 내일 아침에 눈뜰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우려는 소름 돋듯 솟았다. 그럴 때는 일부러 옆에 동지들과 “우리 내일 꼭 살아서 만나자”라고 장난스럽게 밤 인사를 나누곤 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한다는 마음의 온기로 긴 겨울밤을 버텼다. 밤새 추위와 전쟁을 치른 몸을 이끌고 아침 선전전을 나갈 때면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추위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람은 매정했다. 핫팩도 소용없이 손끝과 발끝이 아려왔다. 뺨은 갈라지고 눈가엔 얼음이 맺혔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저 일상의 배경 같은 존재였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한파 특보가 내린 날에도 길 위에 서 있지 않으면 우리는 눈길조차 받을 수 없었다. 때로는 그 사실이 가혹한 추위보다 더 차가웠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해 겨울을 시퍼런 칼바람 속에서 보낸 사람들은 우리 말고 더 있다. 75m 굴뚝 위에서 두 번째 겨울을 앞둔, 335일째(10월12일 현재) 싸우고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 파인텍 투쟁 이야기는 한국합섬부터 시작된다. 2006년 한국합섬이 파산 위기에 놓이자 노동자들은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며 싸웠다. 2010년 한국합섬을 인수하겠다는 회사가 나타났다. 당시 시가로 700억원이 넘는 공장을 399억원에 인수했다. 회사 이름은 스타케미칼이 됐다. 노동자들에게 고용 승계와 공장 정상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공장 재가동 19개월 만에 돌연 가동을 중단하고 시무식에서 폐업 청산을 발표했다.



‘408일 더하기 335일째’의 고공 농성

2014년 5월27일 차광호씨가 경북 칠곡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 위로 올라갔다. 차씨는 그 위에서 408일간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이라는 슬픈 기록을 세웠다. 그 고공 농성을 통해 노사는 파인텍이라는 새로운 법인 설립과 고용, 노동조합, 단체협약 ‘3승계’를 합의했다. 차씨는 2016년 1월4일 경기 아산에 있는 파인텍 공장으로 출근해서 일했다. 공장이 집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창문조차 없는 방이었다. 회사는 단체협약과 임금 및 생활 보장에 대한 추후 협의사항을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남아 있던 노동자 다섯 명이 2016년 10월28월부터 파업에 돌입했고, 회사 측은 공장 기계를 반출했다. 2017년 11월12일 박준호·홍기탁 두 노동자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 위로 올라갔다. 그래서 이 고공 농성은 다시 새로운 기록을 써나가고 있다. 408일 더하기 335일째라고 해야 옳다.

75m 굴뚝 위에는 이미 겨울이 성큼 도착해 있을 테다. 가혹한 겨울이 오기 전, 따뜻한 관심 속에 박준호·홍기탁 두 사람이 무사히 내려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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