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자아 성찰이야.” 답변 끝에 이런 중얼거림이 따라붙었다. ‘동북아인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뮤지션이기도 한 오지은 작가는 ‘회사원의 딸’로서, ‘오전 9시까지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지 않는 삶’에 대한 죄책감을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다. ‘음악을 만들고 부르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그랬다. 그런 부담은 글을 쓸 때도, 여행을 할 때도 따라다녔다. 하루 한 시간밖에 글을 쓰지 못했을 때, 나머지를 허송세월한 데 대해 죄책감이 드는 식이다. 나머지 시간이 그 한 시간을 위한 예열의 단계였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즐거운 게 제일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가면 가사를 써야 할 것 같았고, 자아 성찰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성장 집약적 동북아 국가’에서 나고 자란 덕분이다. 그렇게 ‘생산성 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스타일이라고 자기를 객관화한 뒤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생산성을 얘기하는 것도 동북아 스타일이잖아요.”


ⓒ시사IN 이명익‘유럽, 베스트, 기차, 경치’ 따위 단어를 넣어 인터넷 검색을 했다. 딱 맞는 기사가 나왔다. 오지은씨(위)의 유럽 기차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지은 작가가 3년 만에 세 번째 에세이집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를 냈다. 부제는 ‘오지은의 유럽 기차 여행기’다. 지난해 1월이었다. ‘대체 뭘 해야 재미있을까?’ 너무 막막했다. 뭘 먹어도, 뭘 해도 재밌는 시절이 지난 건 진작에 알았다. 3년 전 펴낸 〈익숙한 새벽 세시〉는 그걸 감지하고 놀라서 쓴 책이었다. 청춘이 떠나고 있었다. 자신의 세계가 회색이 되어가는 걸 지켜봤다. 결혼한 지 한 달 되었을 때다. 혼자 교토로 떠났다. 이제 회색인 건 알겠는데, 청춘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계속됐다. 뭔가 더 있을 텐데 그게 뭘까 궁금했다. 좋아하는 기차를 떠올렸다. ‘유럽, 베스트, 기차, 경치’ 따위 단어를 넣어 인터넷 검색을 했다. 딱 맞는 기사가 나왔다.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 시칠리아까지 기차를 타고 남하하는 루트를 구상했다. ‘나중에 가야지’ 했다가 ‘아니, 지금 가야지’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냥 잘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났다.

오지은 작가는 ‘돈만 생기면 여행을 가는 종류의 인간’이다. 여행지에서도 구석을 찾고, 천장만 보고 싶어 할 때도 있지만 또 짐을 싼다. 예전엔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지냈다. 현지인이 가는 바에서 타파스를 먹고 런던 뒷골목의 아무 클럽에나 들어가 춤을 추고 공연을 보았다. 관광객이 들르는 건축가 가우디의 ‘구엘 공원’은 시큰둥했다. 이탈리아에서 피자 먹기, 스위스에서 알프스 가기. 이런 건 60~70대에 하는 거라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지금은 바뀌었다. ‘오히려 놓치고 살았을지 몰라. 제일 즐거운 거니까 사람들이 많이 하는 걸 텐데. 나도 여행의 ‘슈퍼 베이직’ 같은 것들을 체험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30대 후반의 자신과 친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매 시기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 있을 텐데 지금 시기의 방법을 좀 더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봄출판사 제공이번 에세이집에 수록된 일러스트는 오지은씨가 직접 그렸다.
책에는 인도 여행을 다녀온 친구 사례가 나온다. 인도에 대한 영적인 글로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읽고 난 뒤 여행을 다녀온 친구는 ‘작가를 고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여행을 좀 더 가볍게 받아들였으면 했다. 자아 성찰을 할 필요 없이 재밌게 지내면 되는 게 아닐까. 우린 똑같고, 여행 전이나 후에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다. “스스로를 알고 떠나는 여행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어요. 결국 저도 가서 자아 성찰을 엄청 하고 왔지만 자아 성찰이 목적인 거랑 여정에서 하는 거랑은 다른 일인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들 때와 책을 쓸 때의 공통점

이번 책을 읽고 ‘웃기다’는 반응이 많아 기뻤다. 전작 〈익숙한 새벽 세시〉는 ‘내장까지 꺼낸 책’이었다. 침잠하는 오지은이 곳곳에 드러나, 유머와는 거리가 있었다. “너무너무 푹 들어간 책이었어요. 음악 만들 때와 책 쓸 때의 공통점은 거의 없지만 하나 있다면, ‘지금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지금 읽고 싶은 책을 쓴다’는 거예요. 이번엔 큰 깨달음을 주지 않고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지 않고 그냥 즐거운 책을 쓰고 싶었어요.” 그의 말대로다. 클림트의 그림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전의 오래된 석상에서 게임 ‘포켓몬 고’를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기차에서 취객이 말을 걸어오는 장면을 묘사하며 ‘똥소리, 똥소리, 똥소리’라고 쓴 대목에선 웃음이 삐져나온다.

원래 유머러스한 글을 좋아했다. 주로 남성 작가들이 쓴 웃긴 글이 많았다. 중년 남자의 유머와 38세의 그는 스타일이 또 다를 것 같았다. 그걸 개발하고 싶었다. 그들의 유머를 좋아하면서도 나르시시즘이 느껴질 때는 아쉬웠다. 그런 함정을 피해 웃기고 싶은, 큰 야망이 있었다. 그렇다고 재밌거나 좋은 순간만 담은 건 아니다. 결국 마음을 열지 못하고 떠난 밀라노, 응급실에서 네 시간 반을 기다린 라스페치아, 문을 열다 열쇠가 뚝 부러진 피렌체의 어느 숙소 등 각 도시에서 한 경험이 덤덤하게 이어진다.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스위스의 체어마트였다. 알프스에 올라가는 기차 ‘글래시어 익스프레스’를 타고 마터호른 봉우리가 보이는 마을에 묵었다. 슈퍼마켓에 갔다가 숙소로 돌아와 책을 읽고 잤다. ‘별것 없는 평화’가 기억에 남았다. 창가에 오렌지 주스를 올려두고 이게 얼까, 얼지 않을까 생각하는 순간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걸 경험하러 갔나 싶을 정도로 온전한 평화의 순간이었다. 이번엔 책에 들어갈 일러스트도 직접 그렸다. 서툴러도 가장 생생한 그림이다.

지난 1년 반 동안은 철저히 작가로 지냈다. “지금은 노래해보라고 하면 ‘나 노래 못해’ 하면서 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에요. 너무 멀어져 있었어요. 음악이 하고 싶어졌지만 분명히 멀어져 있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인 것 같아요.” 글의 톤을 잡는 데만 1년이 걸렸다. 퇴고에 공을 들이는 편이다. 이번에도 많이 들어냈다. 글쓰기의 대부분은 천장을 보고 괴로워하는 시간이다. “나는 안 될 거야 못 할 거야, 이런 마음에 휘둘리는 시간이 커서 관련 메모를 여는 데도 시간이 걸려요. 글감을 뽑는 데도, 뽑은 후에 글을 덜어내는 데에도 그렇죠. 그 와중에도 살아남는 글의 생명력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또 바쁘고요.”

노래할 때, 목소리는 꾸미거나 악기에 숨을 수 있다. 글은 맨몸으로 저잣거리에 나가는 느낌이다. 많이 고치는 수밖에 없다. “음악을 먼저 시작해서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음악 하는 여자가 쓰는 글’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생각하는 게 있을 거고 그게 좋은 것은 아닐 거라는, 밖에서 오는 자기 검열도 있거든요. 그래서 퇴고에 집착하는 인간이 되었나 봐요. 그런 거치고는 평이한 글입니다만.”

그가 보기에 지금은 지구가 팽창하듯 성장하던 시기를 지나 서서히 저무는 때인 것 같다. 그런 시대의 창작은 1980년대 댄스음악처럼 즐거울 수 없다. 그렇다고 세기말처럼 무작정 어두울 수도 없다. 이 ‘황혼 같은 시대’에 어떤 종류의 창작을 해서 바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끌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있다. 여행을 재미있게 다녀왔다고 끝내는 책은 누구도 읽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딘가를 긁어주고 싶었다. 대책 없는 위로가 아니라, 어떻게 즐거움을 찾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지난 몇 년, 그는 페미니즘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 추모 집회에도 무대에 올랐고 〈페미니즘, 공부하는 중입니다〉 같은 팟캐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책임감과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여성분들에게 사랑을 받아서였을까요. 음악도 글도 저보다 조금 나이 어린 여성들이 언니라고 부르며 반응하고 편지를 주기도 했어요. 그렇다고 받은 걸 갚는다는 그런 느낌은 아니고요. 저 또한 ‘명예 남성’ 같았던 시절도 있었고 분명히 제 안에 여혐도 있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제가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려면, 세상을 똑바로 보려면 페미니즘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어요.” 페미니스트라는 선언을 하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그가 목소리를 냄으로써 누군가의 마음이 편해지길 기대한 것도 있었다.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은 자신의 음악을 듣는 이들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발언을 할수록 뮤지션으로서는 안 좋을 거라는 동료들의 염려도 있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지만 나중에 이해되었다. ‘피곤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것도 비슷한 세대에게는 페미니즘인 것 같다. 버티고 있는 여자 뮤지션이 별로 없다. 윗세대 ‘언니들’을 보면 버텨달라는 말을 많이 한다.

더 자유로워져야 넓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뮤지션 오지은은 대학 재학 중이던 2006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선판매 방식의 펀딩을 통해 첫 앨범 〈지은〉을 손수 제작했고 이 음반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대 여성으로서, 사랑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거침없는 창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홍대 마녀’라는 별명도 얻었다. 3집 앨범 〈3〉을 냈을 때 ‘생각보다’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다. “곧 결혼할 여자는 우울한 음악을 할 수 없고 감성적 깊이가 떨어질 거라는 편견이 작용한 거죠. 실제로 면전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음악 하는 여성이 겪는 여혐은 정말 많아서, 내가 내 자리에서 날카로운 걸 하는 것도 소극적인 페미니즘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성 뮤지션의 고민은 활동 폭이 넓어지면서 확장되고 이어졌다. OtvN 〈비밀독서단 3〉에 출연했을 때다. 어색하면 웃는 스타일이라 방송 내내 계속 웃었다. 김숙, 송은이 등 좋아하는 여성 패널들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야기는 남성 진행자가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 말을 내가 해야 해, 이건 아닌데 내가 여기서 방긋거리는 여자로 끝나면 안 되는데 하는 유의 생각이 있었어요. 방송에 나가면 하나 더 생각하게 되는 거죠. 여성으로 내가 무슨 역할을 하고 오는가에 대해서.”

남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성진환씨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오지은 작가와 함께 키우는 강아지 흑당이에 대한 그림일기를 올리고 있다. 거기에 오지은 작가도 자주 등장한다. 그 역시 누군가 계속 떠들고 있는 놀이터를 바라보는 게 좋아서 트위터를 자주 하지만 거기에는 남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의 아내로 불리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었다. 만화에서 그는 거의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이다. 좀 부끄럽기도 하다. ‘나 홍대 마녀인데.’ 예전엔 동반 출연을 무조건 거절했는데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 더 자유로워져야 넓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책 제목의 의미는 책의 마지막에 담겨 있다. 오지은 작가가 ‘별것 아닌 평범한 우울증’을 앓은 지는 4년 정도 되었다. 그는 증상을 ‘기쁨을 느끼는 감각이 퇴화되는 느낌’에 비유했다. “저는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는 것에 대한 저항감과 편견이 없어요. 좋아하는, 음악 하는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기도 하고요. 가끔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건가 하는 막막함은 있어도 이 정도면 꽤 잘 다스리며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몸의 두드러기가 언제, 어디에서 올라올 줄 모르고, 올라오면 약을 써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었고, 즐거웠다고 그는 말한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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