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행정소송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져서는 안 된다. 제대로 대응해서 이기도록 해달라(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우리도 무리하지만 좋은 (법무)법인을 쓰고 있다(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10월1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과방위) 국정감사에서 오간 발언이다. ‘행정소송’의 당사자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페이스북이다. 방통위는 법무법인 광장을, 페이스북은 법무법인 김앤장을 선임했다. 한국 정부와 세계적 ICT 기업이 국내 수위권 로펌을 동원해 맞붙었다. 배후에는 이동통신 3사가 있고, 네이버·카카오 등 IT 공룡들이 주시한다. ‘상징적 의미’도 있다. 한 기업 문제를 넘어,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속성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사건의 시작은 인터넷 이용자들이었다. 2016년 12월, SK브로드밴드(SKB)에 “페이스북 속도가 너무 느리다”라고 문의하는 가입자 수가 평소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LGU+도 비슷했다. 하루 0.2건 들어오던 불만 건수가 34.4건으로 폭증했다. 두 회사가 조사해보니 일부 이용자들의 페이스북 접속 경로가 바뀌어 있었다. 한국의 KT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서 오던 트래픽 출발 지점이 홍콩·미국 등 해외로 바뀐 것이다. 양사의 문의에 페이스북은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귀 회사의 망에 페이스북의 캐시서버(cache server)를 구축하면 해결된다.” 두 회사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비용을 들여 국제전용회선 용량을 늘리고, 방통위에 페이스북의 행위가 전기통신사업법을 위반했다며 조사를 요청했다. 방통위는 ‘이용자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했다’라며 지난 3월21일 페이스북에 과징금 3억9600만원을 부과했다. 페이스북이 여기에 불복해 두 달 뒤 제기한 것이 문제의 행정소송이다.

ⓒ연합뉴스1월10일 페이스북 글로벌 통신 정책 담당자인 케빈 마틴 수석부사장(가운데)이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논쟁의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페이스북 본사는 미국에 있다. 미국·캐나다 밖 나라는 아일랜드 지사가 담당한다. 아일랜드의 페이스북 서버에 접근하는 ‘길’이 망이라면, 망을 타는 정보의 ‘흐름’이 트래픽이다. 물리적 거리와 트래픽양 탓에, 한국에서 바로 해외 서버에 접속하면 속도가 느려진다. 그래서 구글·페이스북 등 해외 기업은 본서버의 복사 서버를 각 지역에 설치해, 이용자들이 자주 접근하는 정보에 빠르게 접속하도록 만든다. 이게 바로 캐시서버다. 캐시서버를 임대해주는 시설이 IDC다. 캐시서버 외에도 안정적인 접속이 필요한 여러 국내 업체들이 망 사업자의 IDC를 이용한다.

IDC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임차료’가 든다. 그런데 유튜브는 몇 년 전부터 망 사업 3사 IDC에 캐시서버를 두면서도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KT IDC에만 캐시서버를 두는데 이 비용 역시 무료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SKB와 LGU+도 캐시서버를 설치하라’는 페이스북의 답변에는 ‘헐값에’가 생략되어 있는 셈이다.

자연히 역차별 논란이 나온다. 국내 기업들은 규모에 따라 매해 수백억원까지 IDC 사용료로 지불하고 있다. 트래픽 규모가 큰 기업은 직접 IDC를 만들기도 한다. 이미 IDC를 운영 중인 네이버는 4800억원을 들여 두 번째 IDC를 건립할 예정이다. 관점에 따라 이 행정소송에는 과징금 3억9600만원이 아니라 5000억원 이상이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연합뉴스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망 사업자가 콘텐츠 사업자에게 협상력을 잃은 풍경은 상전벽해다. 2000년대 중반 ‘2세대 이동통신(2G) 시대’까지만 해도 이용자는 통신사가 자체 운영하는 서비스를 통해서만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 서비스 이용자나 콘텐츠 사업자는 이 한정된 서비스에 값비싼 비용을 치렀다.

콘텐츠 사업자, 특히 해외 업체가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것은 모바일 기술이 발전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사용자 수가 늘어나면서부터다. SNS 특성상 선두 주자가 시장을 독과점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페이스북 접속이 특정 통신사 가입자들에게만 지연될 때, 이용자는 SNS를 바꾸기보다 통신사를 바꿀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주도권 싸움의 뇌관이 터진 시점 역시 기술발전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 ‘5세대 이동통신(5G)’ 모뎀이 발표된 뒤 사물인터넷 등 여러 분야에서 네트워크 수요가 폭증할 전망이 나온다. 페이스북이 캐시서버를 늘리려는 것은 미래 수요를 위한 일종의 ‘부동산 투자’인 셈인데, 페이스북은 그 투자를 남의 돈으로 하려 한다.

의문은 남는다. 행정소송의 결과와 공익의 연관성이다. ‘업자’들 간의 갈등에 행정부가 개입하고 국회가 ‘응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방통위가 심의·의결서에 밝힌 제재 사유는 ‘이용자 불편 초래’와 ‘시장 왜곡’이다. 망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협상력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거대 콘텐츠 기업은 향후에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이용자들을 볼모로 실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가 개입해 이를 바로잡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연합뉴스데미안 여관 야오 페이스북코리아 대표.

매출 정보 숨기고 세금 회피하는 페이스북

뜯어보면 더 중요한 문제도 있다. 페이스북·구글이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계약에서 나오는 세금이 함께 증발한다. 여타 기업들의 IDC 이용료를 감안한다면, 그 세액 또한 천문학적일 가능성이 높다. 망 사용료 문제 외에 페이스북과 구글이 매출 정보를 숨겨 세금을 회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월10일 과방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데미안 여관 야오 페이스북코리아 대표는 “(과세 당국에 신고한 매출과 순이익은) 죄송하지만 나는 모른다. 영업 기밀이라 자료 제출은 어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함께 참석한 존 리 구글코리아 사장도 “알려드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일부 사설 조사기관들은 지난해 페이스북의 국내 광고 매출을 1500억원쯤으로 추측한다. 여기에 법인세율 22%를 단순 적용하면 300억원 정도를 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페이스북이 이 정도 규모 세금을 내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선 매출을 전액 신고했는지 알 수 없다. 구글코리아나 페이스북코리아 등 외국계 기업은 대부분 유한회사다. 국내 매출 등 경영 정보를 공시할 의무가 없고, 외부 감사도 받지 않는다. 2016년 구글코리아는 국세청에 매출을 2671억원으로 신고했는데, 광고 게재 빈도·모바일 판매 수익 등으로 추정한 매출은 그 10배 이상이다.

맹점을 없애기 위해 입법이 진행됐다. 유한회사도 외부 감사 대상에 포함하는 외부감사법(외감법) 개정안이 내년 11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는다. 법인세법상 세금 징수 대상은 ‘국내 사업장’에서 벌어들인 매출뿐이다. 페이스북 매출 일부는 페이스북코리아에서 나오지만, 많은 부분은 본서버가 있는 페이스북 아일랜드로 집계된다. 외감법 개정안이 시행된 후에도 ‘본서버가 있는 아일랜드 매출’이라는 이유를 대면 ‘합법적 세금 포탈’이 가능하다. 국내 사업장의 범위를 넓히는 것도 대책 중 하나였다. 지난 8월31일 기재부는 외국 법인의 국내 사업장 예외조항 넷 중 셋이 삭제된 법인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문제는 살아남은 예외조항이 ‘광고 등 예비적, 보조적 성격을 가진 사업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장소’라는 점이다. 여타 기업과 달리 페이스북 같은 ICT 기업은 광고 수입이 매출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실상 실효성이 거의 없다.

 

 

 


서버를 국내에 두도록 하면 어떨까. 변재일 의원이 내놓은 대책이다. 변 의원은 9월3일 일정 규모 이상의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가 국내에 서버를 설치하는 등 이용자의 안정적 서비스 이용을 위한 기술적 조치를 하고, 이를 위반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변재일 의원 측은 “페이스북이 IDC를 만드는 대신 캐시서버를 늘리는 의도는 세금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국에 IDC를 만들면 국내 사업장이 된다. 납부해야 하는 세금도 늘어난다”라고 말했다. 이용자 불편의 가능성을 줄이고 세금을 투명하게 징수하려면 국내 서버 설치 의무화가 답이라는 설명이다.

반론도 있다. ‘인터넷의 본질’을 왜곡할 때 생기는 가장 치명적 부작용은 검열 가능성이다. 지난 9월18일 시민단체 오픈넷은 해당 법안에 대해 논평을 냈다. “국경을 초월한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인터넷의 본질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온라인에 디지털 장벽을 세워 자유와 개방의 인터넷을 조각내고 파편화한다.” 오픈넷의 김가연 변호사는 2014년의 ‘카카오톡 망명’ 사건을 언급했다. “서버를 국내에 둔다는 것은 가입자의 개인정보에 공권력이 접근하기 쉬워진다는 뜻이다. 2014년 드러났듯 국내 서버에 저장된 개인정보는 어떤 방식으로든 수사기관에서 접근할 수 있다. 외국 SNS까지 한국에 서버를 둬서 ‘망명’할 곳조차 사라진다면 표현의 자유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이런 식의 ‘데이터 현지화’를 제도화한 나라는 중국, 러시아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콘텐츠 사업자가 망 사업자에게 무임승차한다는 현상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의견도 있다. ‘안정적 망 유지’는 콘텐츠 사업자가 아닌 망 사업자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방통위 심의와 행정소송 과정에서 페이스북이 제시한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은 콘텐츠 사업자가 인터넷 접속 품질 문제에 책임지는 것은 부당하며, ‘방해·지연·결함 없이 기능할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약관에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이용자 이익을 침해하였다면 콘텐츠 사업자라도 면책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으나, 페이스북의 항변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 망 사업자가 가입자에게 받는 통신비가 다름 아닌 망 사용료라고 볼 수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문제는 콘텐츠 사업자의 무임승차가 아니라 망 사업자의 ‘이중 과금’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인터넷의 가치에 누가 더 기여했는지 묻게 된다. 최민오 시민단체보안 컨설턴트는 망 사업자의 설비보다 콘텐츠 사업자의 정보 쪽에 무게를 싣는다. 그는 지난 5월 오픈넷 기고에서 이 상황을 인터넷 쇼핑에 빗댔다. “애초에 매력적인 서비스 모델과 상품을 판매하는 쇼핑몰(콘텐츠 사업자)이 없다면 이용자들의 수많은 배송 요청과 그로 인한 배송료 수익은 물류센터(망 사업자)에 향하지 않는다. (중략) (망 사업자 요구는) 물류센터가 혼잡하니 이용자들의 배송료뿐만 아니라 상품을 많이 판매하는 쇼핑몰에도 신규 물류센터 설립을 위해 요금을 받겠다는 논리와 다름없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이번 행정소송의 3차 공판을 10월25일 열기로 했다. 1차적 승패는 사법부가 가리게 되지만, 소송 결과가 갈등을 매듭지으리라고 보는 이는 드물다. 소송 중에도 망 사업자들은 페이스북과 물밑 협상을 벌이고, LGU+는 넷플릭스와의 독점 제휴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방통위 제재가 그랬듯 법원 선고 역시 협상과 갈등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이 경우 승패와 무관하게 소송은 상징적 의미만 갖게 될 것이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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