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린이를 사랑한 작가가 있다. 자신의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해 직접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브루노 무나리는 기존 어린이책의 상투성을 벗어난 책, 즉 시각적·촉각적 놀라움으로 가득한 책을 만들었다. 그의 책 〈동물원〉은 직접 가서 보는 ‘동물원’을 종이에 재현했다.
책을 펼치면 ‘ZOO’를 향한 여행이 시작된다. 동물들에게 먹을 걸 주지 말라는 입간판 안내문으로 시작된 동물원 여행은 길 표지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례를 지나면서 앵무새가 말을 건다. 동물에 관한 그 어떤 사전적 설명도 없는 이 책은, 단지 동물의 어떤 특징이나 개성만을 포착해 짧은 글과 함께 아름다운 그림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독자(어린이)에게 책을 완성해나가기를 유도한다. 작가의 독특한 유머도 곳곳에서 빛난다.
그림은 원경과 근경을 오가며 동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개성 넘치게 잡아냈다. 마치 우리가 여러 각도에서 동물을 보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커다란 코끼리를, 파자마를 입은 얼룩말을, 싸움쟁이 코뿔소를, 모피 장사꾼만 보면 숨는 여우를, 수영장이 비좁다 느끼는 하마를, 산만큼 나이가 많은 거북이를 만난 후 동물원 산책을 마친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동물은 21종밖에 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동물과 대화한 느낌이 든다.
한국에 미처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작품을 보면서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다. 텍스트 없이 눈과 손의 감각으로 책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는 마음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그는 책을 2차원에서 벗어나 3차원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피카소는 브루노 무나리를 ‘제2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렀고, 세계적 그림책 작가 에릭 칼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으로 〈동물원〉을 꼽았다.
그의 그림책은 대부분 어린이를 위한 것이지만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보면 더욱 좋을 듯하다. 아이와 어른,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숨겨진 상상력과 잠재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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