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장의 사진이 유령처럼 모바일 화면을 뜨겁게 배회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도 올랐다. 1907년 경기도 양평군 지평이라는 곳에서 대한제국 의병을 찍었다는 영국 기자 매켄지의 사진이다.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많은 사람들의 애국심을 자극했고, 수없이 많은 댓글과 기사들이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의병·친일파·나으리·애기씨에 관한 내용을 모든 매체가 다투어 실어 또 글을 쓴다는 게 민망할 정도다.
그런데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 사진을 처음 보았다면 우리가 이 사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물론 몇몇 사실은 확인 가능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로 보이는 동양인 남성 12명이 총과 칼을 들고 있는 일종의 기념사진이라는 것, 아마도 조선 시대 말기에 찍었으리라는 짐작 정도가 아닐까. 그들이 의병인지 아닌지를 사진만 보고 알아낼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 사진을 객관적으로 보기 이전에 이미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국사 교과서에 실렸고, 의병·독립과 관련된 모든 자료에 인용되어서 익숙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사진을 보았다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맥락 속에서 사진을 읽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사진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말이 없다
세상의 그 어떤 사진도 이야기를 하지는 못한다. 사진은 아주 단편적인 팩트, 그러니까 사실을 말하는 파편일 뿐이다. 모든 사진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진에는 서사적 기능이 없다고 말한다. 사진은 대개 노출이 이루어지는 아주 짧은 순간의 빛을 기록할 뿐이다. 그 기록 속에 시간과 공간이 극히 엷게 저며져 담긴다. 그뿐이다. 사진은 그 사진을 찍기 전과 후에 벌어진 일에 관해 말해주지 않는다. 아니 말을 못한다. 하려고 하면 연속 사진이나 말이나 글로 보충해줄 수밖에 없다. 사진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말이 없는 것이다.
이 사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진 속 의병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신분인지,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단지 111년 전 대한제국 한 귀퉁이에서 살아 있었고, 사진이 찍혔다는 것을 알 뿐이다. 물론 사진을 들여다보면 얼굴 생김새, 무장의 수준, 복장 등을 통해 그들의 신산한 삶을 짐작할 수 있다. 목숨을 내걸고 나선 이 ‘아무개 의병’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어쩌면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진에 관해 갖은 상상을 해볼 수가 있다.
한데 이 사진의 원본은 어디 있을까? 우리가 보는 사진은 아마도 매켄지의 책 〈조선의 비극〉에 인쇄된 복제품일 것이다. 대중매체에 실리는 사진이 원래 모두 그런 것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는 무수히 복제된 사진을 통해 불안한 대리 체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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