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으로 폭로되는 행위는 권력형 성폭력이다. 피해가 발생해도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상당수 피해자는 신고 자체를 꺼린다. 가해자는 침묵이 조장되는 환경을 다시 악용해 가해를 일삼는다. 권력형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악순환의 첫 단계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위직 여성 할당제의 확산이 필요하다. 작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수상자의 수상소감이 ‘포용 부칙(inclusion rider)’이었다. 영화에 여성 또는 소수 인종을 최소 비율 이상 포함할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약속을 담은 계약 조항의 확산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미투 운동이 직장 내 권력형 성폭력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 이 운동은 필연적으로 성매매나 자유로운 성적 표현에 관한 논쟁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먼저 여성의 자발적 성적 표현을 남성이 폄훼할 가능성이 농후해,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성적 표현 자체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를 우려해 여성의 자발적 성적 표현과 행동을 규제하는 것은 여성이 성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협상에서 주도권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필자는 이 충돌을 시나리오 두 개 중 무엇이 우선이냐는 ‘견해차’로 해석한다. 여성과 남성 간에 존재하는 신체 차이를 포함한 성별성의 위계와 이와 연관된 차별적 관습과 조건이 여성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들어 적극적 활동을 저해한다는 시나리오와, 여성에 대한 성적 편견 즉 여성의 성적 표현과 성행위를 통제하는 법률과 관습이 여성에게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해 활동과 사회 진출을 위축시킨다는 시나리오다.

앞의 시나리오, 즉 ‘젠더폭력론’은 원시적 폭력 즉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강한 힘을 지녀 이를 바탕으로 여성을 모든 자원 경쟁에서 도태시키고 여성을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젠더 이데올로기를 확립한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지금의 성차별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성차별관에 따르면 여성은 신체적 약자로서 보호 대상이며 여성을 성폭력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젠더 이데올로기를 철폐하기 위한 특별한 법제가 요구된다.

뒤의 시나리오, 즉 ‘섹슈얼리티 통제론’에서는 성차별을 유지하는 더욱 강력한 기제는 여성 섹슈얼리티의 통제라고 여긴다. 성과 출산을 위해 여성이 필요한 남성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여성에게 강요하기 위해 여성의 성 주체성에 사회적 낙인을 찍는 법과 관습으로 여성의 성 관련 표현과 활동을 제약한다. 동성혼 금지, 간통죄 등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성 표현과 성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여성을 전통적 가족, 즉 이성애적 가부장제에 가둔다.

 

 

ⓒ시사IN 이명익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미투 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행진’에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위 두 성차별관은 세계 여성운동 내에서 심각한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낙태·성폭력 같은 이슈에는 목소리를 같이 내지만, 성매매·자발적 성적 표현 등에서는 맹렬히 충돌한다. ‘여성의 자유의사를 무시하고 성을 공공재로 삼는 성 엄숙주의와의 결탁’이라는 비난, ‘현실에서의 여성이 겪는 질곡을 무시하고 약자 보호 의무를 포기한 자유주의’라는 비난이 교차한다.

미투 운동의 확산 막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해야

그러나 한국은 국제적 논쟁에 참여조차 못하고 있다. 국제 여성계의 광범위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에서 성매매의 성 제공자까지 지역적·맥락적 제한 없이 예외 없이 처벌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심지어 미투 고발의 확산을 저해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하지도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성폭력 고발에 대해서만 폐지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입법례가 없는 주장은 유엔인권협약의 해석을 통해 힘을 얻어야 할 폐지운동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또 미투 운동은 지금까지는 ‘공익’적 고발의 면책을 이용해 유명인 고발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사회 전체로 확산되기 위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기자명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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