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청와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끊임없이 의식했다. 2008년 10월 이명박 정부 첫 국정감사 최대 이슈는 ‘쌀 직불금 파동’이었다. 쌀 재배자의 소득을 보전하려고 지급하는 쌀 직불금을, 농사도 짓지 않는 이봉화 당시 보건복지부 차관이 신청한 사건이었다.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이 위기를 돌파하려 택한 게 이른바 ‘봉하마을 아방궁’ 프레임 공격이었다.

〈시사IN〉이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 중 2008년 10월15일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10.14(화) 국정감사 동향’ 문건을 보면, 한나라당이 봉하마을 공세를 펼 예정이라며 이렇게 적는다. “자칫 ‘죽은 노무현을 정치권으로 살려내는 길’이 될 수 있으므로 한나라당과 盧 前 대통령의 전면적 대결은 신중 필요/ 특히, 청와대 입장에서는 盧 前 대통령 철저 무시 전략 견지(아래).”

 

당시는 노 전 대통령 생전이었다. 이명박 청와대가 ‘정치인 노무현’의 재부상을 경계하는 장면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세청·검찰 등 사정기관을 전방위로 동원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문건 생산일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건에 나오듯 한나라당은 ‘노무현 프레임’을 즐겨 썼다. 2008년 10월14일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아방궁 지어서 살고 있는 사람 없다”라고 말한다. 이계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야당은 이봉화 차관 조사하라고 하고, 여당은 노봉하 조사해 ‘봉화 대 봉하’로 하자”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철저히 무시하겠다’던 이명박 청와대는, 그러나 쌀 직불금 파동에 참여정부 끌어들이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08년 11월3일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10월 정국분석 및 11월 전망’은 쌀 직불금 사태를 두고 “참여정부의 잘못된 정책 집행을 현 정부가 유능한 일처리를 통해 바로잡았다는 점을 부각시켜 ‘유능함’을 보여주는 계기로 활용해야 함”이라고 적는다. 다만 “노 前 대통령은 증인 채택하지 않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논란이 커지면 “현재의 경제위기 국면 해소보다 정쟁에 몰두한다는 인상을 주면서 현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사진공동취재단2008년 2월25일 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이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의 흔적은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 곳곳에 남았다. 2009년 7월14일 대변인실이 작성한 ‘대통령 유럽 순방 관련 신문 보도 분석’은 “교황 예방, 1면 컬러사진(조선/중앙 등)으로 돋보이게 편집 등 높은 관심 속, 교황 訪韓 요청과 한반도 공동 관심사 논의 상세 전달”을 기록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2007년 노무현 前 대통령 교황 예방 때 〈조선〉이 사진만 보도한 것과 대비.” 영포빌딩에서 압수된 문건에는 노 전 대통령의 연설문 ‘대북정책,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전문도 포함됐다.

 

 

기자명 김은지·김동인·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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