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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위한 타이완 <보도자>의 분투기

2018년 11월 06일(화) 제582호
타이완/글 장일호 기자·사진 신선영 기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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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도자>는 탐사보도 전문 미디어다. 전통적인 뉴스룸에 구애받지 않고 이슈에 따라 팀을 구성한다. 광고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보도의 질’로 승부를 건다.

보도자(保導者:The Reporter)
설립:2015년 9월1일
규모:편집국 26명(취재기자 10명·편집기자 4명· 사진기자 3명·엔지니어 5명·디자이너 4명) 및 프리랜서 기자 100여 명과 협업
출판 방식:웹사이트(www.twreporter.org) 및 취재 결과물 책으로 발간. <혈루어장(血淚漁場) 2017>, <폐허소년(廢墟少年) 2018>
운영 방식:비영리로 운영되는 ‘보도자 문화재단 (The Reporter Cultural Foundation)’에서 운영. 정기 월 후원자 약 1500명. 100원도 가명으로 기부할 수 없고 100만 NTD(약 3500만원) 이상 대규모 기부금을 받을 시 재단이사회 심사를 거침.
수상:2017 아시아출판인협회(SOPA:The Society of Publishers in Asia) ‘혈루어장’ 시리즈 기사로 인권보도·인포그래픽·탐사보도 분야 수상, 2017 제21회 인권언론상(Human Rights Press Awards) 등



국경없는 기자회는 2017년 7월18일 최초의 아시아 사무소를 타이완에 세웠다. 정권에 따라 언론 자유도가 부침을 겪는 한국과 달리, 타이완은 2000년 이후 언론자유지수를 집계하면 늘 30~50위권 안에 머물며 ‘아시아 1위’를 지켜왔다. 타이완이야말로 ‘탐사보도와 아시아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현지 취재에 앞서 타이완 내 한국 유학생, 교수, 언론인 등에게 자문했다. “한마디로 ‘핵엉망’입니다”로 요약 가능한 대답들은 표현 방법이 달랐을 뿐, 긍정적인 평가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현지에서 통역을 도와준 타이완 인터넷 매체 <ET today>의 나익성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도 한국의 ‘기레기’와 비슷한 말이 있어요. ‘어릴 때 공부 안 하면 커서 기자 된다(小時不讀書, 長大當記者)’라고 해요.”

ⓒ시사IN 신선영
<보도자> 편집국에 모인 기자와 직원들. 공간 구분 없이 하나로 크게 트여 있다.
타이완은 1987년 7월15일 이전까지 40년 가까이 계엄 상태였다. 전 세계 통틀어 최장 기간의 계엄령이 해제된 후 정당 설립 금지와 신문 발행 규제가 풀렸고, 현재까지도 중장년층으로부터 신뢰받는 주간지들(<천하잡지(天下雜誌)> <금주간(今周刊)> <상업주간(商業週刊)>) 역시 이 시기에 창간됐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됐다고 해서 편집권 독립이나 정치로부터의 자율성이 저절로 따라오는 건 아니었다. 타이완 언론들은 공정성 대신 ‘상업성’을 선택했다(44~45쪽 기사 참조). 양첸하오 BBC 중국어판 객원기자는 “타이완 언론사들은 언론의 자유를 언론사의 자유로 오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선거 기간에 정당이나 정부 관계자가 신문 지면이나 방송편성 시간을 ‘구입’하는 일종의 PPL은 관행이고, 사건·사고 보도에 최소한의 모자이크도 없는 선정적 보도에 사활을 걸기도 합니다. 사회적·공적 책임에 소홀해요”라고 말했다. 높은 언론자유지수가 ‘언론의 질’까지는 담보하지 못했다.

통제받지 않는 ‘언론 자유’에 제동을 건 집단은 학생들이었다. 2013년 7월 타이완 내 대학 동아리 30여 개는 ‘반 언론괴수 청년연맹’을 결성했고, 이는 이듬해 3월18일 이른바 ‘해바라기 학생운동’이 일어난 발판이 됐다. 당시 학생들은 입법원을 한 달여간 점거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2016년 국민당에서 민정당으로 8년 만의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언론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2015년 9월1일 타이완 ‘기자의 날’에 창간된 <보도자(保導者:The Reporter)>는 타이완에 만연한 언론 불신의 자장 안에서 ‘탈출’하려는 매체다. 리셰리(李雪莉) <보도자> 편집국장은 타이완 언론이 처한 상황을 비관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저는 아직 ‘제일 나쁜 상황’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특정 보도를 이유로 잡혀가거나 죽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타이완 언론은 정치적으로, 상업적으로 많은 간섭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언론이 처한 상황을 죽 늘어놓고 봤을 때 타이완이 특별히 엉망이라거나 나쁘다고는 할 수 없어요.”

기자 경력 20년차인 리셰리 편집국장은 주간지 <천하잡지>에 몸담고 있던 2010~2012년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했다. “베이징에 머무르는 동안 타이완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바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입니다.” 언론이 저평가받는 시대에 언론에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거듭했다. 2~3년차의 젊은 ‘동료’ 기자들이 떠나고 있었다. 나름 타이완 최고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었다. 붙잡아도 봤다. 그러나 보람 대신 ‘기레기’라는 모멸과 체념을 학습한 이들에게 머물기를 요구할 수는 없었다.

“원래 개혁이 더 어렵습니다(웃음). 저 역시 이른바 ‘주류 매체’에서 오래 일했습니다만, 그 안에서 개혁을 하려고 하면 어려움을 겪습니다. 광고에 의존하는 매체에서는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 탐사보도를 하기 힘드니까요. 주류 매체에 좋은 기자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조건에서는 언론 가치에 대한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어요.”

편집권 보호하기 위한 세 가지 원칙


새로운 매체에 대한 생각을 키워가던 중 선배 언론인 허룽신(何榮幸)으로부터 ‘광고 없는’ 탐사보도 전문 미디어를 만들어보자고 제안받았다. 비영리 재단을 설립하는 방식이었다. 재단 설립 계획을 듣고 ‘큰손’들도 합류했다. 대표적으로 타이완 최대 컴퓨터 하드웨어 제조업체인 아수스 창립자 중 한 명인 퉁쯔셴(童子賢)이 힘을 보탰다.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 서점 운영 등 문화예술계에 후원을 아끼지 않는 기업인 중 한 명이다.

ⓒ시사IN 신선영
<보도자> 편집국은 기자와 엔지니어, 디자이너 구분 없이 앉는다. 기자 개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를 중심으로 팀을 나누어 취재한다.

“<보도자>를 초기에 세팅한 사람들은 모두 주류 매체 출신이고, 우리는 주류 매체의 광고 비즈니스가 저널리즘을 어떻게 망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만든 ‘보도자 문화재단’은 타이완 최초로 언론사를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으로 등록됐다.

보도자 문화재단에는 편집권을 보호하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기부자는 후원을 철회할 수 없으며 기사와 편집에 간섭할 수 없다. 기자는 특정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인의 후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 100만 NTD(신 타이완 달러, 약 3500만원) 이상의 후원금을 받을 경우 이사회는 별도의 심의위원회를 꾸려 심사해야 한다. “3NTD(100원)도 가명으로 기부할 수 없습니다. 특히 기업 후원은 <보도자>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지를 가장 면밀히 따지며, 실제 기부를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내역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요.”

저널리즘의 가치를 복원하려는 분투에 독자도 움직였다. <보도자>는 2017년부터 독자 후원을 받고 있다. 후원 독자는 월 1000NTD(약 3만5000원) 이상을 약정할 수 있고 <보도자>로부터 매년 실적 보고서와 <보도자>가 만드는 책 등을 제공받는다. 2017년 400명이던 독자 후원은 2018년 현재 1500명으로 늘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우리가 보여준 탐사보도 가능성 덕분에 다음 3년을 계획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독자 후원에 전적으로 기댈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시민들 역시 언론사에 후원한다는 개념을 여전히 낯설어한다. 온라인 콘텐츠가 ‘무료’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는 타이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보도자>는 ‘저널리즘의 질’로 승부를 걸려 한다. 대학과 연계해 저널리즘 강의를 열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카페 살롱’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독자와 만나 접촉면을 늘린다. 행사가 열리는 카페는 <보도자>의 가치에 공감해 강연장을 무료로 대관해주고 있다. “최근 어느 때보다 ‘공공 정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중의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런 문화를 조성하는 데 <보도자>가 역할을 하고 싶고요. 기자들은 강연장에서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우리 매체가 후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우리의 보도는 공유와 개방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돈을 받는 강연이나 활동, 이벤트는 이미 너무 많아요. <보도자>가 모든 행사를 무료로 진행하는 건 ‘우리의 가치를 지지한다면’ 후원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는 거죠.”

10월11일 방문한 <보도자> 편집국은 공간 구분 없이 하나로 크게 트여 있었다. 길쭉한 테이블 서너 개가 공간 중심에 자리해 언제든 회의가 가능한 구조로 배치되었고, 기자와 엔지니어, 디자이너 구분 없이 앉아 있었다. 창가를 따라 붙여둔 책상에도 파티션은 따로 없었다. 리셰리 편집국장의 자리도 그중 하나다. 복층 구조로 된 사무실은 층고가 높아 시원해 보였다. 복층에 별도의 회의실과 편집국장실이 마련돼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섞여서’ 일할 때 시너지가 나기 때문이다. <보도자>는 전통적인 뉴스룸에 의존하지 않는다. 사회·문화·정치 등으로 팀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자 개인이 어떤 이슈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이슈별로 팀을 나눕니다. 인권팀·환경팀·빈곤팀·성평등팀… 이름은 붙이기 나름이죠. 여기에 그때그때 프로젝트 매니저(PM:Project Manager)를 세우고, PM은 기자-엔지니어-디자이너를 조율하는 역할을 합니다.”

“현안 취재에 매몰되지 않으려 한다”

10월21일 타이완 동부 이란 현에서 발생한 열차 탈선 사고 등 ‘속보’를 전할 때도 속도보다는 정확성을 염두에 뒀다. 현안을 주시하고 있지만, ‘다른 매체도 하는’ 현안 취재에 매몰되지 않으려 한다. 프리랜서 기자(취재·사진 포함) 100여 명의 풀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 특히 10여 명과 긴밀하게 협력한다. 내·외부를 넘나드는 팀이 구성되면 취재 시간은 최소 50일 이상 보장하며, 기자들은 PM의 조율 아래 3~4꼭지의 기사를 생산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어떤 방식으로 선보일지 함께 논의한다.

ⓒ시사IN 신선영
리셰리 <보도자> 편집국장(왼쪽)은 “저널리즘의 본질을 구현해내는 매체가 되려 한다”라고 말했다.

<보도자>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기사는 ‘양’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업데이트가 잦지 않다. 취재팀 3~4개가 돌아가면서 ‘깊이’를 보여줄 뿐이다. 기사 발행 후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가 얼마나 읽혔는지(조회 수) 알 수 없다. 기자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 <보도자> 창간 때부터 정한 원칙이다. 보도 후 큰 반향이 있었던 기사들은 책으로 묶는다. 책이 나오면 취재기자들은 카페 살롱을 열어 후원 독자를 초대하고, 후원 독자는 책을 통해 ‘손에 쥐는’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보도자>의 기자들은 젊습니다. 이곳에서 기자를 시작한 친구들에 대한 우려도 있었죠. 흔히 탐사보도는 경험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저 역시 그런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2~3년간 우리의 경험에서 얻은 건 경험이나 효율보다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보도자>는 창간 8개월 만에 ‘혈루어장(血淚漁場)’ 시리즈 기사로 아시아출판인협회(SOPA:The Society of Publishers in Asia)가 수여하는 상 중 3개 분야(인권보도·인포그래픽·탐사보도)를 석권했다. 바다 위 선박은 식민지와 다름없었다. ‘혈루어장’ 시리즈는 인도네시아 언론사 <템포(Tempo)>와 협업한 결과물로, 타이완 선박회사가 다국적 기업과 연계해 행하고 있는 어업 노동자에 대한 비윤리적·반인권적 실태를 폭로했다. 보도 이후 타이완 정부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보도자>는 이 보도를 통해 중화권 매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GIJN(글로벌 탐사저널리즘 네트워크)에 가입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보도된 ‘폐허소년(廢墟少年)’ 시리즈 기사 역시 타이완 내 탐사보도상을 휩쓸고 있다. ‘폐허소년’ 시리즈는 사회 관계망에 잡히지 않는 빈곤 가정 청소년을 다각도로 드러냄으로써 정부의 정책 변화를 요구한다. 기사는 지난 9월 책으로 묶여 나왔고, <보도자>는 여섯 차례 북콘서트를 기획해 ‘폐허소년’의 현실을 다시 한번 알리고 있다.

“다소 단순화해서 말하는 게 용인된다면, 과거에는 언론이 독자를 ‘바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쉽게’ 쓸 것을 훈련받았고요. 하지만 대중매체라는 개념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식인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도 뉴스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매체’를 선택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보도자>는 이 시대에 적합한 미디어란 무엇인지, 저널리즘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이를 어떻게 구현해내는지를 보여주는 매체가 되려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보가 지속 가능한지 도전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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