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도대체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은 음악이 있을까. 뉴욕의 도심 한복판부터 몽골의 어느 초원에 이르기까지 매일 세계 곳곳에서는 수많은 음악이 녹음되어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다. 그렇게 지구상에 존재하는 음악은 3억 곡이 넘는다고 한다. 그중에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음악을 접하게 될까. 디제이(DJ)는 평생 다다를 수 없는 음악의 망망대해에 기꺼이 뛰어들어 구석구석까지 살피는 음악계의 탐험가들이다. 그들은 방대한 음악을 고집스럽게 파고들어 수집한 노래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전달자이기도 하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대한민국 최고의 디제이 겸 프로듀서이다. 그가 약관의 나이에 만든 데뷔 앨범 〈180g Beats〉는 지금까지 한국 힙합 음악에서 손꼽히는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프로듀서들은 종종 표절 시비에 휘말리거나 윤리적인 비난에 시달린다. 그는 작업 방식이나 그 결과물에서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듀서로서 그는 여러 곡에서 음악 샘플을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변조하고 조합해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탄생시키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는 1960~1980년대 국내의 록, 재즈, 솔, 펑크 음악을 믹스해 발표한 〈The Sounds Of Seoul〉 이후, 국내 희귀 음반들의 정식 재발매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를 만나 근래 관심사 중 하나인 1960~1980년대 국내 음악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사IN 이명익디제이 소울스케이프(위)가 약관의 나이에 만든 데뷔 앨범 〈180g Beats〉는 지금까지 한국 힙합 음악에서 손꼽히는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이기용:디제이로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방대한 분야의 음악을 다루고 있다. 본인의 음악적 여정이 궁금하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처음에는 힙합 디제이로 시작했다. 그래서 힙합과 가장 가까운 음악들, 힙합을 구성하는 브레이크나 솔, 펑크, 재즈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그게 조금 더 깊어지며 다른 나라에서 생겨난 음악들, 또 시대별로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계속 바뀌는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됐다. 전에는 영미권에서 시작해서 재즈나 록 음악 위주였다면 요즘에는 북유럽이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지역 음악이 조금 더 호기심을 자극하고 주목받는 시대인 거 같다.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음반을 그 시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기용:〈사운드 오브 서울〉을 미국인 친구를 통해 처음 접했다. 한국에서 음악하는 나 역시 그 음반을 들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새롭게 발견한 당시 뮤지션들을 소개해달라.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너무 많다. 예를 들면 당시 KBS 관현악단장이던 정성조 선생은 상당히 수준 높은 영화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는데 마치 이탈리아 영화음악 같았다. 그리고 히식스 같은 전설적인 사이키델릭 록밴드도 있고. 또 오아시스 경음악단 같은 당시 굴지의 음반사들 소속 악단의 연주도 정말 탁월하다.

이기용:한국을 대표하는 디제이로 해외에서 국내의 1960~1980년대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그중 외국인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음악은 무엇인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산울림이다. 지금도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재발견이 이루어질 만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단지 한국적인 포크록이나 개러지록(차고처럼 허름한 곳에서 만들어지곤 했던 밴드 음악. 독특한 아마추어리즘의 미학을 특징으로 함) 차원이 아니라,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의 음악이 뉴웨이브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음악 장르. 빠른 템포가 기분을 흥분시키고 들썩거리는 느낌이 나는 음악) 같은 사운드로 변화하는 등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가 많았다. 한국적인 포스트펑크 같은 곡도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산울림 음악은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기용:소장 중인 LP 레코드만도 1만 장이 넘고 곡 작업할 때에도 주로 LP로 한다. LP는 어떤 면에서 그 가치가 있나?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사실 LP 레코드가 가장 우월하고 좋은 매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운드 시스템이나 프레싱 상태에 따라 음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즉 음악을 담는 그릇으로서는 아쉬움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다만 인류 역사에서 황금시대의 음악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매체가 LP 레코드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음악적으로 또 기술적으로 가장 큰 발전과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가 1960~1980년대이고, 그 당시의 음악들이 모두 LP 레코드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기용:그렇다면 2000년대 이후의 음악들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지금은 1960~1970년대 일어나지 못했던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고 있다. 음악을 만들고 소비하는 패러다임이 모두 바뀌는 디지털 시대이다. 즉 음악보다는 음악을 둘러싼 시스템이나 소비 측면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음악에선 그런 외적인 변화들이 음악 자체를 변모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국내 음악인들이 영미권의 대중음악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음악적 뿌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전 세계 음악을 듣다 보면 우리 음악은 무엇인가 하는 일종의 정체성 고민이 생길 법도 한데.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맞다. 그 고민이 계속 있었다. 1960년대 한국에 이런 특별한 음악이 있었고 그래서 ‘이게 내 정체성이야’ 하기에는 100% 납득하기가 어려운 거 같다. 나는 다른 나라의 음악적인 역사와 한국 사이에는 태생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현대사에 단절된 부분이 많이 있다. 그 끊어진 사회와 역사를 연결해서 하나의 완전한 그릇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게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냥 ‘내 음악의 정체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긴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제는 음악적으로 나를 좀 더 여유롭게 관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기용:언젠가 인터뷰에서 앞으로 뭘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레코드 가게에서 좋은 음악을 골라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런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지난 3~4년 동안 가장 공들이며 한 작업 중 하나가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의 큐레이션 작업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다양한 음반 중에서 소개해줄 가치가 있는 음악을 선정하는 것과 실제 그 음반들을 구해오는 것까지 포함된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앨범일지라도 장르별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음악이 많다. 디제이로서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음반을 찾아 소개해준다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하고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마치 음악으로 채워진 도서관의 도서관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이 그러하듯 방대한 음악 자료에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발견해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청자로서 또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공들여 만들고 소개하는 음악은 충분히 귀 기울여 들을 만하고, 게다가 새로운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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