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 의외의 급소다. 카카오가 카풀 산업에 진출하면서 촉발된 논란은 얼핏 보면 택시라는 작은 산업의 주도권 다툼으로만 보인다. 카풀은 하루 두 번까지만 가능한가? 출퇴근길이 달라져도 괜찮은가? 이런 소소해 보이는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여당은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고,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로도 모자라 기획재정부까지 논란에 휩싸였다. 왜 그럴까. 택시 문제라는 좁은 전장에, 앞으로 한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거대한 질문들이 줄줄이 숨어 있어서다.

첫째, 택시는 공유경제 시대의 가장 첨예한 전선이다. 공유경제라는 아이디어의 핵심은 단순하면서도 위력적이다. 사람들은 비싼 물건을 소유하지만 그걸 최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가장 비싼 물건은 대체로 집과 자동차다. 자동차는 사용 가능 시간 중에 약 4~5%만 실제로 이용한다. 95%는 놀고 있는 셈이다. 집은 그보다는 활용성이 높다. 하지만 집은 자동차보다 훨씬 비싸서, 조금만 공유하더라도 큰 이익이 발생한다.

이 노는 자원을 가진 사람과 이게 필요한 사람을 제대로 이어줄 수만 있다면, 효율은 극적으로 올라간다. 이런 아이디어는 낯설지 않다. 마을 공동체끼리는 노는 물건을 빌려 쓰는 상부상조가 잘 작동한다. 누가 뭘 갖고 있는지 누가 무엇이 필요한지 서로 알고, 그걸 빌려가는 사람이 정직하게 돌려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와 신뢰가 갖춰져야만 공유가 성립한다. 그리고 마을 수준을 넘어가면 정보와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기술혁신이 정보와 신뢰의 문제를 크게 개선했다. 서울에 사는 여행자는 런던에서 노는 방이 어딘지 알 수 있고, 그 집주인이 친절한지 바가지를 씌우는지를 누적된 평점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공유경제는 지구 차원에서 작동하는 강력한 힘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 힘이 가장 먼저 충돌하는 전장이 택시다. 공유경제의 아이콘 중 하나인 우버는 일반 승용차 소유자가 승객과 연결되도록 해주는 플랫폼이다. 이 사업모델은 택시 면허의 가치를 사실상 사라지게 만든다.

둘째, 미래 기술의 충격이 예정되어 있다. 차량공유 플랫폼은 장기적으로 자율주행차 시대를 장악하기 위한 예비 전장이다. 자율주행 시대가 열리면 우버와 같은 플랫폼은 거래의 한쪽 당사자인 운전자를 삭제하고, 자율주행 차량과 소비자를 이어줄 수 있다. 운전자를 제거한 자율주행 차량은 지치지도 않고 도시를 누빌 것이다. 이 ‘이동혁명’이 언제 도래할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기술만 놓고 보면 그리 먼 미래는 아니라는 관측이 많다. 그리고 이 기술혁명은 우리가 어딘가로 이동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잠재력을 갖고 있다.

셋째, 공유경제 시대는 모든 가치 있는 자원을 쪼개서 거래하게 될 것이다. 집과 자동차의 공유는 이미 작동하는 현실이다. 노동력은 어떨까? 노동력 역시 쪼개 팔기가 지금보다 훨씬 쉬워질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집과 차를 쪼개 파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노동은 사람 그 자체가 달린 문제다.

20세기의 사회계약은 자본·노동 관계에서 노동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 일방적으로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 등이 대체로 보장되어왔다. 노동보호는 하루를 통으로 일하는 전일제 일자리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공유경제라는 힘은 노동을 쪼개 팔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쪼개진 노동을 어떤 식으로 보호할지는, 아직 제대로 된 사회계약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적 재계약이 필요한가? 이런 문제를 조정할 책임은 정치의 몫이다. 여기에서 네 번째 질문이 등장한다. 정치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택시 논란은 사립 유치원 논란과 비슷하다. 개혁을 통해 얻어지는 사회 전체의 이익은 골고루 묽게 퍼진다. 하지만 기득권을 박탈당하는 집단은 손실이 치명적이다. 작은 득을 본 다수 유권자들은 곧 잊어버리지만, 큰 손해를 본 이익집단은 똘똘 뭉쳐서 표와 돈으로 응징한다. 이럴 때 정치가들은 다수보다 소수의 손을 들어준다. 고전적인 ‘이익집단 포획’은 이렇게 일어난다. 이에 대한 고전적 해답은 논란을 전국 단위로 키워서, 보는 눈을 늘리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때는 정치가들도 이익집단의 손을 들어주기를 망설인다. 사립 유치원 사태가 이 경로를 가고 있고, 택시 문제는 아직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택시 문제와 사립 유치원 문제는 다르다. 공유경제가 혁신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택시 업계는 혁신에 맞서 기득권을 주장하는 세력이다. 그런데 택시 면허로부터 일정 정도 안정성을 보장받는 택시 노동자 처지에서 보면, 공유경제란 곧 노동보호의 해체를 뜻한다. 이 둘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이 혁신이 노동에 대한 사회계약의 조정을 뜻한다면, 정치는 재계약의 초안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 정부는 21세기 산업의 구조 변동에 대응하는 〈노동 4.0〉 백서를 펴낸 바 있다.

택시라는 좁은 전장은 새 혁신 패러다임, 새 기술, 새 사회문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풀어내야 할 정치가 충돌하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그래서 택시는 우리 시대를 보여주는 급소다.

 

 

 

ⓒ시사IN 이명익이재웅 쏘카 대표는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민간 공동본부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묘한 기업가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로 벤처기업 1세대를 대표했던 그는 2007년 다음 경영자에서 물러난 후 사회 혁신 기업 투자자로 지내왔다. 그가 올해부터 본격 활동을 재개했다. 4월에는 차량 공유 스타트업 ‘쏘카’의 대표가 됐다. 7월에는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민간 공동본부장을 맡았다. 10월에는 쏘카의 자회사 VCNC가 모빌리티(이동) 플랫폼 ‘타다’를 출시했다. 타다는 한국 진출이 막혀 있는 우버와 유사한 사용자 경험을 국내법에 맞춰 제공하는 길을 찾아냈다.

맥락이 있다. 돌아온 이재웅 대표는 일관되게 혁신과 공유경제를 정조준한다. 이 흐름에 한국이 올라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스스로를 기업가라고 되풀이해 강조하지만, 사업 아이템은 하나같이 ‘사회’와 맞닿아 있다. 그가 말하는 혁신이 성공하려면 기업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끔찍이 싫어하는 사진 촬영마저 견뎌가며 언론 인터뷰에 응한다.

ⓒ시사IN 조남진10월에 쏘카의 자회사 VCNC가 모빌리티(이동) 플랫폼 ‘타다’를 출시했다.

 

그는 왜 절박한가. 공유경제의 흐름을 왜 타야 한다고 믿는가. 이 혁신의 어두운 그림자는 무엇인가. 그 그림자는 어떻게 걷어낼 셈인가. 새로운 사회계약이란 게 뭔가. 이 거대하고 복잡한 이슈가 왜 하필 택시라는 좁은 전장에서 터져 나왔나. 10월26일 서울 성수동 쏘카 본사에서 100분 동안 만나 물었다.


택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이슈가 단순히 택시만의 문제일까? 그러기엔 너무 뜨겁다. 어마어마한 사회 변화의 흐름이 여기 집약되어 있다. 우선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깔려 있다. 다음으로 기술혁명이 있다. 이건 결국 자율주행차까지 간다. 피할 수 없다. 더해서, 이런 큰 변화에 기존 사회체제나 제도가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걸려 있다. 택시 기사들의 노동은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새 패러다임, 새 기술, 새 사회문제가 동시에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곳이 바로 모빌리티 시장이다.

타다 이야기부터 하자. 사용자 경험을 보면 우버를 떠올리게 된다. 자동으로 결제 되고, 기사와 대화할 필요가 없는 점 등이 비슷하다.

그렇다. 택시와 우버의 사용자 경험도 사실 별 차이는 없다. 아주 작은 개선들이 모여서 사용자 경험을 더 색다르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도 놀랐는데, 그 정도의 개선만으로도 이용자들은 아주 큰 혁신을 경험했다고 느낀다.

그런데 기업으로는 상당히 다르다. 우버는 차량도 소유하지 않고 기사도 고용하지 않는다. 타다는 둘 다 한다. 비용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맞다. 우버보다 20%만큼 효율성을 더 유지하면 우버만큼 수익이 난다고 본다. 우리 알고리즘을 비롯한 기술 개발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버가 비효율적인 회사도 아니고, 우버보다 20% 더 효율화한다는 게 사업모델일 수 있나? 오히려 공유경제를 사람들이 맛보도록 하는 게 목표 아닌가? 타다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기보다는 ‘프로파간다(선전) 모델’처럼 보인다.

그게 프로파간다인지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공유경제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싶다. 한국은 이런저런 규제로 그게 막혀 있었다. 우리가 직접 예시를 보여주면서 시장을 형성해보자는 것이 차량 공유 회사 쏘카의 취지였고, 거기에서 좀 더 나간 것이 타다다. 사회에 이런 수요가 존재하는지, 그게 잠재력이 있는지, 또 이런 서비스에서 기사가 되려는 분은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예시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차량 공유 기업이 풀 사회문제란 뭔가?

자동차를 소유하는 데서 생기는 문제가 매우 크다. 한국에 승용차가 1800만 대쯤 있다. 환경 문제, 교통체증 문제, 주차장 문제 등등 자원 낭비가 매우 크다. 그런데 사람들은 편하게 이동하려는 욕구가 있다. 공유경제는 이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차량 소유를 줄여준다. 공유는 자산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개념이다.

택시는 면허 시장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공유경제 혁신이 좋은 일이라고 해도, 면허 소유자들이 결집해서 반대하면 이뤄내기 어렵다.

맞다. 정치인도 택시 면허 소유자들 말을 듣는 게 편하다. 그래서 정치인을 불편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들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따라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 전체가 이 문제로 논쟁을 하고 시끄러워져야 한다.

그런 목표를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중인가?

물론이다. 택시 면허는 일종의 기득권이고 지대(제한된 재화를 가진 덕에 얻게 되는 이익)다. 어떻게 버티더라도 이 지대는 10년이면 사라진다. 자율주행차가 다니기 시작하면 사람 운전사를 쓸 이유가 없다. 택시 회사 비용의 70%가 인건비인데 이걸 떼어낼 수 있다. 2023년이면 사람 운전자가 완전히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가 판매 차량의 12%에 이를 거라는 예측도 있다. 이건 10년도 아니고 5년 뒤다. 기술만 보면 거의 가까이 와 있다. 예를 들어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서 특정 도시를 지정해 여기는 자율주행차만 들어올 수 있다, 이렇게 실험한다고 치자. 그러면 몇 년 안에도 완전 자율주행 도시가 구현될 수 있다. 세계의 주요 도시들이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피츠버그나 피닉스에서는 벌써 자율주행 택시가 다니고 있다. 서울은 출발도 못했다. 데이터도 뒤처져 있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사회제도의 준비다. 전혀 대비가 안 되어 있다. 얘기를 하다 보니, 프로파간다가 맞는 표현 같기도 하다(웃음).

ⓒ평양 사진공동취재단이재웅 쏘카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해 9월20일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초조한 것 같다.

걱정된다. 우리 회사가 돈 벌 걱정은 별로 안 한다. 언제고 변화는 올 수밖에 없고, 돈은 그때 벌면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전국 택시 면허의 가치가 법인과 개인 면허 합쳐서 16조원 정도 된다. 어느 날 16조원이 갑자기 증발할 텐데, 그 혼란과 반발과 충격을 견딜 수 있을까. 이런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행 과정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정부 일(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민간 공동본부장)을 맡은 것도 그런 취지인가?

그게 하나 있고,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 사회에 혁신의 바퀴가 잘 안 굴러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새로 상장한 혁신 기업을 보면, 게임 회사를 빼면 한 손에 꼽기도 어렵다. 대통령이 혁신성장을 계속 얘기하지만, 남북관계와 비교해보면 이쪽은 성과가 없다. 혁신성장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는 게 더 큰 동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31일 연설에서 데이터 혁신 성공 사례로 우버를 꼽았다. 우버는 현행법상 한국 진출이 막혀 있는데도 연설문에 넣었다.

공유경제나 혁신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용감한 것 같다. 남북관계만 잘하고 혁신 쪽은 안 챙긴다는 평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기술이 사회에 적용될 때의 ‘이행 비용’ 문제를 계속 고민한다. 보통 기업가와 다른데?

이행 과정을 잘 관리해서 이행 비용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신기술이 사회에 부드럽게 안착한다.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보다도 기술을 사회에 적용시키는 데 성공한 기업이 더 가치를 인정받는다. 기술이 사회를 더 효율적이고 더 좋게 만드는 일에 훨씬 더 큰 사업 기회가 있다.

공유경제에서는 공유를 매개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독점기업이 되기 쉽다.

고민해야 할 문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협동조합 형태가 원리상 맞다고 본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용자가 콘텐츠를 생산하니 그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게 맞다. 아무리 착한 독점기업이라도 회사는 회사다. 독점은 사회가 규제해야 하는 영역이다.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규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독점에 대비해서 선제적으로 규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 다음이나 카카오나 네이버가 커진 후에는 당연히 비난도 받고 제한을 논의할 수도 있고 그런 건데, 사전에 규제로 막아놓는다? 그랬다면 애초에 그런 기업이 클 수가 없다.

택시는 안전과 직결된 산업이다. 면허는 안전관리 때문에 필요한 제도라는 주장도 있는데?

지금 면허제도로 안전이 관리되고 있나? 기사들이 손님한테 말을 안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게 현실인데? 우리 같은 기업은 한 건의 기사 폭행 사고에도 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서 이 문제를 더 절박하게 해결하려 한다. 서울시는? 그 한 명 면허 박탈하면 끝이다. 기업이 무조건 더 잘할 거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동기만 놓고 보면 안전 문제를 해결할 이유는 기업이 더 절박하다.

공유경제는 집이나 차와 같은 비싼 자원을 쪼개서 팔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이 원리에는 노동력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공유경제는 노동력을 쪼개 파는 세상을 만들까?

타다 기사 중에 연극배우가 있다. 연극 공연이 없을 때 운전을 한다. 탑승자들이 기사의 노동을 쪼개서 사는 셈이다. 공유경제의 궁극적인 형태는 사람의 시간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다.

ⓒ시사IN 이명익카카오가 카풀 산업에 진출해 택시 업계와 갈등을 빚자 여당,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까지 ‘택시’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변화일까? 노동을 보호하는 사회계약들이 무력화될 것이다. 고용 보호, 노조를 만들 권리 등이 위협받는다.

맞다. 그분들이 모두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면, 이 변화는 손해다. 하지만 그런 일자리가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 공무원 늘리는 걸로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공유경제 플랫폼에서 2시간 일해서 생계는 도저히 유지가 안 되겠지. 그런데 이건 공유경제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변화의 기본 방향이 그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타다 기사들이 노조를 만든다면 어떨 것 같나?

그분들 권리니까 결성하면 하는 거다(웃음). 얼마 전에 카카오에도 노조가 생겼다. 창립선언문 읽어봤는데 되게 잘 썼더라. 노조는 어디든 생길 수 있고 생기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걱정은 있다. 노동의 조건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개별 노조가 안정된 일자리라는 기득권을 지키는 조직이 되지는 않을까. 차라리 노조가,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국민노조 같은 게 생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드는데 실업자 노조는 생길 수가 없으니까, 국민노조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기존 사회계약들이 갈수록 취약해질 것이다.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어떤 사회계약을 생각하나?

정부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과 기본소득을 보장할 필요가 커질 것이다. 플랫폼에서 2시간씩만 일해도 기본 생계는 유지할 수 있게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적어도 기본적인 생활은 국가가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사회가 지속 가능할 것 같다. 이게 안 되면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 혁신을 일으켜서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의 세금도 더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혁신 기업가들은 그런 아이디어를 ‘혁신에 벌칙을 준다’라며 싫어하는데?

마크 저커버그의 재산이 수십조원인데 거기에 세금 좀 더 걷자는 게 무슨 벌칙인가. 98%씩 걷어가겠다는 것도 아닌데.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택시 회사들이 노동자 다 없애고 자본만 투입해서 돈을 벌게 된다. 그러면 그 수익에 대해 세금을 걷어야 한다. 로봇세가 되었든 뭐가 됐든, 그렇게 걷은 세금으로 사회보장을 강화하면, 일자리를 잃는 분들도 혁신에 덜 저항하게 된다. 시간 공유로 단기적인 일을 하면서도 남는 시간을 자기 삶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또 사회보장이 있어야 사람들이 뭔가 모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다. 한번 실패하면 당장 나락에 떨어지는 사회에서 누가 새로운 시도를 할까. 다 공무원 시험 보지. 결국 새 사회계약이 있어야 혁신성장도 가능하다.

프로파간다를 하고, 새 사회계약을 고민하고… 이런 걸 왜 기업가가 하는 건가? 돈 버는 일보다 범위가 훨씬 큰데?

돈 벌려고 하는 거다. 그게 제일 쉬운 설명이다. 지금까지 시장이나 정부가 실패한 문제를 혁신 기업이 풀어서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인다고 해보자. 그러면 큰 이윤을 가져갈 수 있다고 믿으니까 하는 거다.

사회문제를 푼다는 건 일종의 공공재 공급인데, 공공재 공급에 자기 자원을 투자하다니, 기업가라면 절대 안 할 일 아닌가?

물론 고생해서 풀어놓았더니 대기업이 들어와서 다 차지해버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우리가 깔아둔 투자와 확보한 사용자를 보면, 이 문제가 풀렸을 때 가장 앞서 있는 회사가 될 수 있고, 이 큰 시장에서 그 정도 가능성이라면 투자해볼 만하다. 돈 버는 문제만 놓고 생각해도 할 만한 도전이다.

일의 동기가 공적인 사명감으로 해석되는 걸 참 싫어하는 것 같다.

기자들이 꼭 그렇게 쓰고 싶어 하더라(웃음).

ⓒAP Photo1월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도요타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자율주행차 플랫폼이 공개되었다.

사회 혁신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

중국에 한 분유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가 일으킨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몇 만명씩 입원을 하고 그랬다. 이 기업은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운다는 목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 회사의 주요 주주가 뉴질랜드 농부 협동조합이었다. 유기농과 먹을거리 안전을 가치로 삼는 조직인데도, 중국에 가서 이윤 추구에 매몰하니까 멜라민 파동의 공범이 되더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 이렇게 이윤만 추구하다가는 과연 우리 경제가,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할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소셜 임팩트, 그러니까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지속 가능해야 장기적으로 돈도 벌 수 있다는 뜻인가?

바로 그거다. 인간은 지속 가능하지 않지만 사회는 가능해야지. 그걸 목표로 하는 게 맞다. 기업가들이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시장에서는 그게 안 될 때가 많다. 상장기업들도 분기마다 실적 보고하다 보면 지속 가능성은 뒷전이 된다. 내가 다음을 그만둔 것도, 분기마다 경마하듯이 실적이 떨어졌네 올랐네 그러고 있으니까, 이게 대체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기업이 충분히 가능하리라 봤고, 그러다 공유경제에 주목하게 되고, 그 관점에서 보니 차량 문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 기업가가 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던 2008년이 임팩트 투자, 그러니까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투자의 원년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는 그 전부터 있던 개념이지만 금융위기 이후 이런 시도가 확 늘었다. 국내에도 이런 흐름이 생겼다. 정부도 이쪽을 지원하는 벤처펀드 만들어서 투자하기 시작했고. 과거에는 전혀 없던 흐름이다. 올해가 처음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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