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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자본주의를 잘못 배운 걸까

2018년 11월 23일(금) 제583호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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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원 그림
북한을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은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난다. 고인이 된 북한 지도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동상, 초상화의 융단폭격부터 받는다. 운전기사는 이 죽은 신들의 앞을 통과할 때면 공손하게 속도를 줄인다. 외곽에서 신들의 골짜기인 평양으로 들어가려는 차들은 경건하게 세차를 해야 한다.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다. 시내에서는 노란색 작업복을 걸친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화초를 손질하거나 잡초를 뽑는다.

피라미드를 숭배하는 고대의 전제 왕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액자와 같은 풍경을 찢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마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만큼이나 놀라게 될 것이다. 겉모습만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별천지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자랑하던 사회주의 낙원은 폐허가 되었다. 그 볼품없는 벽돌 더미 위에 주민들이 개미처럼 열심히 자본주의를, 그 모순까지 쌓아 올리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놀랄 것이다.

1960년대 북한이 일본의 자이니치(在日:일본에 사는 조선인)에게 조국으로 오라고 선전하면서 내세웠던 조건은 의식주, 의료,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혜택의 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그렇지 당시만 해도 그 선전이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북한에서 그 모든 것은 유료다. 결코 돈으로 환산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하나하나가 모두 상거래 목록에 올랐다.

주택 사정부터 살펴보자. 평양은 지금 서울 못지않은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싸여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 1가구 1주택 배분 원칙은 붕괴하고 말았다. 굶어 죽느니 집을 팔겠다는 사람이 속출했고 당국은 속수무책이었다. 지금도 소유권이 아니라 입주권만 갖는다고 선을 그어놓았지만 상속권까지 인정할 정도여서 의미가 없다. 주택 배정 담당에게 뇌물을 쓰면 입주권 명의 변경은 일도 아니다. 그러니 전세, 월세까지 횡행한다. 부동산 중개인도 성업 중이다. 한국이나 다를 바 없다.

평양에 최근 짓는 아파트는 거의 다 200㎡(약 60평) 이상인데 위치에 따라 거래가가 30만 달러를 넘기도 한다. 기본 10만 달러 이상이다. 보통 노동자 월급이 장마당 환율로 0.5달러도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감하기 힘들 만큼 높은 액수이다.

평양의 목 좋은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과정은 한국과 다름없다. 북한에서는 무슨 일을 할 때면 ‘상무’라는 조직을 만드는데 집 지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재건축을 할 때면 일단 건설 상무가 꾸려진다. 한국의 주택조합 격이다. 뒤에 중앙당 실력자가 도사린다. 부지를 확정하고 건설 계획을 세우고 투자자를 모집한다. 철거 과정에서 잡음이 이는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건설에는 자재비만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에서 가장 숙달된 건설 인력인 군인이 있기 때문이다. 청년이란 이름이 붙은 아파트는 전부 이 깡마른 젊은이들인 ‘속도전 청년돌격대’ 작품이다. 부대 지휘관은 어느새 노른자위 중의 노른자위 보직이 되었다.

아파트는 투자 액수에 비례해 배분한다. 투자자는 장마당 돈주 아니면 중앙당 간부이다. 중앙당 간부는 아내나 친척의 이름으로 비자금을 아파트에 투자한다. 이제 부자들은 택시처럼 너덜너덜한 잔돈푼이나 챙기는 사업은 시시하다는 걸 안다. 20년간 평양에서 국가가 지은 아파트는 4만 채 남짓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최근 투자자들이 기관을 끼고 지은 아파트가 7만~8만 채이다. 투자자에게 배분하고 남은 아파트는 건설 상무 차지이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7개의 도장이 필요한데, 도장 찍어준 이들 모두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입을 벌린 곳이 많아 공사는 부실해지기 쉽다. 2014년 평천에서는 아파트 붕괴 사고가 일어나 300명이 넘게 사망했다.

깜짝 놀랄 만한 북한의 사교육

사회주의 흔적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김일성대, 김책공대 교원과 연구사는 여명거리와 미래거리의 신축 아파트를 무료로 배정받았다. 은하수악단, 공훈합창단, 국립교향악단 성원도 몇만 달러짜리 아파트를 받았다. 아파트를 배당받은 이들 가운데 미혼 남녀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 또 다른 분야가 교육이다. 북한은 의무교육 11년(유치원 교육 1년 포함) 체제를 유지하는데 학부모는 무상교육이란 말이 무색하게 교육비 부담에 짓눌려 숨도 못 쉴 지경이다. 명문대 진학이 보장된 특권층이 아닌 한 자녀를 ‘인(in) 평양’ 대학에 보내려면 사교육은 필수다. 북한에 비하면 한국 유치원의 갑질은 애교 수준이다. 입학 전 벽지, 비닐 장판 구입 등 수십 가지 명목으로 족히 12달러는 뜯어간다. 쌀 20㎏이나 옥수수 100㎏을 사고도 남을 돈이다. 매달 쌀 3㎏과 식비 5000~1만원(이하 북한 돈)을 또 내야 한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의 가방에는 다음 날 가져와야 할 품목뿐 아니라 교양원(교사)의 배우자 생일, 대소사 일정이 깨알같이 적혀 있을 때도 있다. ‘도덕이 없는 부모(돈을 잘 안 내는)’를 둔 아이는 상을 받기 힘들다. 요즘에는 피아노를 배우는 게 대세인데 그러려면 10달러를 따로 내야 한다. 평양 정상회담 때 이설주 여사가 김정숙 여사를 안내한 창광유치원 정도 되는 곳에서는 부모들이 교양원에게 졸업 선물로 냉장고, 컴퓨터, 세탁기 같은 고가의 전자제품을 주는 게 예의이다.

소학교 때 과외가 시작된다. 피아노·바이올린·성악·무용·서예·영어· 바둑·컴퓨터·탁구·배구·수영 등 종목도 다양하다. 그중에서 피아노·영어·탁구가 대세다. 과목당 적게는 10달러, 일반적으로는 20달러 남짓 든다. 초급중학교 3년을 마치고 고급중학교에 진학하거나 고급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할 단계에 사교육은 절정을 이룬다. 대학 정원이 고급중학교 정원의 15~20%에 그쳐 대학 가기가 한국보다 훨씬 어렵다. 과외 핵심 과목은 수학이다(혁명 역사는 배점은 높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요즘에는 외국어, 그중에서도 영어 바람이 거세다. 전·현직 교사들이 과외를 하는데 과목당 한 달에 50달러 정도가 공정가격이다.

군 제대자는 대학에 들어갈 자격을 부여받는데 보통 있는 집 자식들은 제대하기 2~3년 전 집에서 몇 달씩 평양 대학을 가기 위한 과외를 받는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대학 입학시험을 주관식으로 치러왔지만 부패가 판을 치는 바람에 2015년부터 전면 객관식, 자동 채점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상대적으로 대학 진학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김일성대를 비롯한 중앙대학의 교원들은 초중등학교 교양원에 비해 인기가 낮다.

북한은 인구 400명당 의사가 한 명꼴이다. 500명당 한 명꼴인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보다 의사 비율은 손색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병원에 약이 없다. 처방전을 받아 장마당에서 스스로 비싼 값에 약을 사야만 한다. 예방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치료 기술이 뒤처지고 말았다. 의사들이 인도적인 명목으로 해외에서 지원받은 약품을 장마당으로 빼돌리는 행위도 드물지 않다. 병원에서 뒷돈 받는 게 일상화되다 보니 북한에서도 의사직의 인기가 수직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예전에 북한에서 의사는 ‘중인 계급’ 취급을 받았다. 가짜 약이 시중에 너무 많이 유통되는 것도 문제다. 빙초산으로 만든 아스피린, 구두약을 섞은 장티푸스 치료제, 사카린을 섞은 해열제 등 기상천외한 의료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북한에는 세금이 없지만 뇌물이 세금을 대신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얼마 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수입의 20% 정도를 뇌물로 바치고 살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가 가운데는 50% 이상을 상납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삶 자체가 비법이라는 자조가 있을 만큼 일상이 뇌물로 오염돼 있다. 담배 한 갑은 기본, 수십만 달러면 정치범이 아닌 한 사형수도 살릴 수 있다고들 말한다. 최고 부자는 전국의 인사(일자리)를 주무르는 중앙당 간부와 군, 법 관련 종사자들이다. 내각 성 부원(지도원) 정도가 1만 달러, 그보다 높으면 몇만 달러, 일반 병사를 좋은 보직으로 빼려면 500달러, 장성급은 10만 달러 이상… 모두가 김일성대 선후배 사이인 전국의 판검사들은 무리하지 않아도 몇 년만 일하면 아이들에게 물려줄 아파트 한 채는 장만할 수 있다. 그 외 해외 파견 노동자와 유학생 담당, 주택 배분 담당 등도 1년이면 너끈히 10억원은 번다고 알려진 자리다. 당에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기나 하는 국영 매체 기자는 과거에 인기가 없었지만 요즘에는 위상이 달라졌다. 북한에서 기업 활동과 생산이 다양화하면서 기사를 빙자한 광고의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합법적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장마당에서 미용실을 하더라도 어느 기관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모두 공공기관에 적을 두고 돈을 벌어 일정액을 기관에 상납하고 살아간다. 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은 크든 적든 가진 권한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돈을 뜯는다. 하다못해 아침 출근 시간에 무궤도나 궤도 트램 정류소의 혼잡을 정리하는 질서유지대도 뇌물을 받는 데 익숙하다. 아무리 붐벼도 이들에게 담배 한 갑만 찔러주면 유유히 긴 줄을 우회할 수 있다. 운전기사들은 웃돈만 주면 택시처럼 정류장이 아닌 아무 데서나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준다. 돈을 받고 화물을 운송해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북한이 개방을 하면 자본주의 룰을 빨리 배울 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기우다. 오히려 자본주의를 처음부터 잘못 배우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할 지경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해도 사회가 투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불행하다. 누구보다도 우리가 바로 반면교사 아니던가.

참고한 활자:<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북돋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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