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사회주의 학습 모임’에서 가장 먼저 공부한 분야는 무려 철학이었다. 그것도 말로만 들어본 ‘변증법적 유물론(변유)’과 ‘역사적 유물론(사유)’. 나는 ‘변유’를 일종의 물리학으로 이해했다. 모든 것(혹은 세계 자체)은 잠시도 쉬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자신의 대립물로 변화하는 중이다. 이런 물리학을 인간 사회와 역사에 적용한 것이 ‘사유’다.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인간 사회에서는 계급투쟁으로 나타난다. 끊임없이 자라나는 생산력이 몸에 맞지 않는 옷(생산관계)을 발기발기 찢어버리는 순간이 바로 혁명. 역사는 사회주의라는 종착역으로 달려간다.
대충 이런 이야기들을, 선배들은 ‘과학’이라고 불렀는데, 이후 내내 ‘그게 왜 과학이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살아왔다. 어떤 이론의 함의가 검증 불가능하면 그건 과학이 아니잖아! 구소련 학자들은 변유에 등장하는 물질의 원리를 유전학에 적용하려다 어처구니없는 연구 결과를 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퇴행했다.
이런 꼴을 보며 살아온 내 인생이, 테리 이글턴의 〈유물론〉을 진작에 읽었다면 좀 더 밝아질 수 있었을까? 적어도 이글턴은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도그마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입장에서 유물론을 옹호한다. 이 책의 내용을 나름 원용해보면, 변유와 사유는 유물론으로 불리기엔 좀 겸연쩍은 이론이다. 변유는, 모든 물질이 살아 있다고 보는 비합리주의적 생기론 혹은 ‘위장된 관념론’으로 봐야 할지 모른다. 사유는 유물론과 관계없는 이야기의 더미다.
물론 단지 변유와 사유를 비판하려고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유물론의 계보를 개진하는 능숙한 솜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문장 구석구석에 숨겨진 특유의 농담도 무척 재미있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이 책을 완독하긴 힘들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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