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㉒ 일레인

 

 

 

 

음악이 시작되고 노랫소리가 들리면, 모든 악기들은 목소리에 길을 내어준다. 그리고 노랫소리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악기는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목소리는 음악이라는 무대에서 주연배우이다. 그렇다면 어떤 보컬이 좋은 보컬일까. 오늘의 주인공 ‘일레인’이 알려주는 훌륭한 보컬의 확실한 두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좋은 보컬은 매우 매력적인 자신만의 ‘음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 하나, 바로 그 목소리로 듣는 이를 ‘현실 바깥의 세계’로 즉시 데려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1994년생의 뮤지션 일레인은 지적이고, 섬세하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담아 노래한다. 이런 목소리를 한국에서 들어본 적이 있나 자문하게 될 정도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라고 느낀다면 그건 아마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가 부른 ‘슬픈 행진(Sad March)’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버클리 음대에 장학생으로 합격했지만 입학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음악 생활을 시작한 그는 얼마 전 몽환적인 풍경이 빼곡히 담긴 데뷔 앨범 〈1〉을 발표했다. 일레인은 이 앨범에서 매력적인 음색에 더해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하고 기타 녹음까지 했다.

 

ⓒ일레인 제공1994년생의 뮤지션 일레인은 지적이고, 섬세하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담아 노래한다.

 


이기용:중학교 2학년부터 4년간 싱가포르에서 유학했는데 외국 생활은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일레인:영어권 국가이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서보다 동시대의 팝 음악을 많이 듣게 된 점과 가사를 영어로 쓰게 된 점 등에 큰 영향이 있었다. 가사를 영어로 쓰게 된 것은 나의 개인 경험과 엮여 있다. 한국에서 보낸 학창시절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불행했다. 그 우울함을 차마 부모님께 말하지 못했다. 바쁘게 지내는 그분들에게 짐을 주는 거 같아서였다. 그러다 싱가포르로 갔는데 그곳에서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났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지금도 편한 언어는 한국말이지만, 속에 있는 마음을 밖으로 꺼낼 때는 아직도 영어가 편하다. 그 당시 친구들과 나눈 모든 것이 영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기는 영어로 쓴다. 소통이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에서의 삶은 아쉬움이 많았다.

이기용:언제 처음 노래를 만들었나?

일레인:중학교 3학년 무렵 싱가포르에서 처음 곡을 쓰기 시작했고 이번 앨범에 ‘레인드롭스(Raindrops)’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당시에는 내가 작곡을 하고 있다는 인식은 못하고 그냥 여느 날처럼 좋아하는 곡들을 따라 불렀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내 기분에 맞춰 흥얼거리고 싶었다. 거기에 가사를 붙이니 그게 노래가 되더라.

이기용:자신의 목소리가 특별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었나?

일레인:고등학교 때 싱가포르에서 아마추어 경연대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처음 노래를 불렀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떨려서 뭘 했는지도 모르게 끝이 났다. 그때 거기 있던 친구가 ‘이렇게 멋진 목소리를 갖고 있는지 몰랐어. 너무 좋아서 녹음기의 녹음 버튼을 누르는 것도 잊었어’라고 말해주어서 처음으로 ‘내 목소리가 좋은가?’라고 생각했다.

이기용: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감상에 더 적합한 음악인데, 〈K팝 스타〉 오디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어떤 경험이었나?

일레인:〈K팝 스타〉의 마지막 시즌인데 궁금하기도 해서 참가했다. 결과는 톱10을 뽑는 무대에서 떨어졌다. 양현석·유희열 심사위원은 내 음악에 호의적이었는데, 다른 심사위원은 ‘음악에 기승전결이 부족하다’며 조금 비판적이었다. 내 음악이 대중적이지 않아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기용:그런 말을 너무 염두에 두지 않았으면 한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연주자와 프로듀서로 대중음악계에서 활약이 큰 송홍섭씨가 맡았다.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

일레인:송홍섭 프로듀서는 내가 재학 중인 호원대의 실용음악과 교수이다. 그분을 프로듀서로 모시게 된 계기가 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음악적으로 지적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송홍섭 교수가 처음으로 음악에 관해 내게 질책을 했다. ‘너 기타 그런 식으로 치면 안 된다’고(웃음). 나는 싱어송라이터라 나 자신을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송 교수는 ‘싱어송라이터는 보컬도, 기타도, 작사·작곡도 조금씩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다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날 정말 충격을 받았다. 내게 부족한 점을 정확하게 말씀해줄 수 있는 분이라 프로듀서로 섭외하고 싶었다.

이기용: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이기도 한 ‘폴링(Falling)’은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다 마지막에 갑자기 아빠 얘기가 나온다. “아빠 나 자주 넘어지곤 해요. 나를 일으켜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부를 수 있는 모든 노래와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노래를 두고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아빠예요.” 이렇게 사랑 얘기와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한 가사에 들어간 경우는 처음 보는 거 같다.

일레인:곡을 쓰면서 내가 느낀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몇 년 전에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지 않아서 당시 무척 혼란스러운 마음이었다. 내게 아빠는 늘 어려운 존재였다. 또 항상 외국에 계셔서 엄마랑 둘이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아빠에 대한 기억 자체가 많이 없어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리워하는 단계가 없었으니 상상으로 그리워해야 하는 거다.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을 그리워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지내지 못한 시간을 그리워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확실하게 아빠에 대한 애도를 끝낸 기분이 들지 않는다. 엄마 말로는 ‘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둘이 친했으면 나눌 수 있는 게 분명히 많았을 텐데 그것을 못 겪어서 슬펐다. 누군가를 애도할 때 사람이 거치게 되는 단계가 있지 않나.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고 화도 내는 등 여러 단계를 겪다가 결국 그 감정에서 서서히 괜찮아지는데, 나는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곡을 쓸 때 종종 아빠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거다. 나에겐 풀어야 할 하나의 과제이다.


나를 흔들어 깨운 목소리, 일레인. 그가 자신의 음악 경력에서 상업적으로 얼마나 더 뻗어나갈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국내 음반시장과 그의 음악적 성향을 고려해볼 때 ‘마니악한’ 영역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분명 동시대 어느 곳에 내놓아도 좋을 목소리와 작사·작곡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폴링’이나 ‘웨이크 미 업(Wake Me Up)’ 등의 노래에서 보여준 바대로 자신의 음악성을 계속 증명해간다면 머지않아 일레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기자명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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