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온 신경이 주변에 가 있어.”

김금희 작가가 자주 듣는 말이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정신을 빼앗긴다. 별명도 늘 주위를 살피는 미어캣이다. 지난 주말, 교외의 한 아웃렛에 갔을 때도 그랬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가 많았다. 어떤 남자가 가족의 의자 하나가 모자랐는지 다른 테이블에 가서 의자를 빌렸다. 그 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유모차에서 자고 있던 어떤 아기를 툭 쳤다. 아이가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양해를 얻고 의자를 가지고 가는데 또 같은 자리를 쳤다. ‘툭툭툭.’ 그렇게 세 번을 쳤고 결국 아이는 잠에서 깼다. 아이의 부모는 셀카를 찍느라 그 사실을 몰랐다. 김금희 작가만 그 풍경을 봤다.

“반복되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 남자의 눈빛에서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의지가 느껴졌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깬 아이, 그리고 셀카 찍는 부부의 표정도 눈길을 끌었고요. 각자가 지켜내야 하는 일요일 오후의 어떤 풍경이랄까요.” 엽편소설을 쓰는 시기였다면 그 장면이 반드시 작품에 등장했을 것이다. 소설가 김금희가 일상에서 어떤 순간을 발굴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낸 책의 작가 소개가 떠올랐다. ‘화장품 뚜껑 닫는 걸 늘 잊어버리고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도 등장인물의 이름을 다 까먹어버리지만 하루를 살면서 무언가 흥미로운 풍경이나 사람들을 보면 그것이 주었던 아주 먼지 같은 사소한 기미들도 기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시사IN 조남진김금희 작가는 “괴롭지만, 쓸 때 재밌는 건 장편소설이다”라고 말했다. 오래 생각하고, 필요한 만큼 인물을 등장시킬 수 있어서다.

2016년 제7회 젊은작가상 대상에 선정될 당시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김금희의 시대가 올까. 적어도 지금 내가 가장 읽고 싶은 것은 그의 다음 소설이다”라고 했다. 그에 감응하듯, 김금희 작가는 부지런히 ‘다음 소설’을 발표했고, 올해만 책을 세 권 낸다.
지난 6월 발표한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근 낸 엽편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는 짧은 소설 19편을 묶은 책이다. 곧이어 중편 분량의 소설이 하나 더 출간된다. 모두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작업했던 결과물이다. 장편 연재가 그렇게 힘든 작업인 줄 모르고 진작 해둔 약속을 지키느라 애를 먹었다. 김금희 작가는 “약속을 지키려고 열심히 했구나. 그래서 그렇게 몸이 축나고 그랬구나. 이렇게까지 쓸 필요는 없었는데… 생각했어요(웃음)”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찾는 ‘반짝이는 순간’

단편소설을 한 편 쓰는 데 3개월 정도가 걸린다. 엽편은 구상부터 탈고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어떤 ‘반짝이는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면 되었다. 분량의 제약이 오히려 ‘쓰는 마음’을 산뜻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제 작품을 쉽게 읽지 못하는데 이건 빨리 읽으시더라고요. 여러 장르를 써보는 게 저로서도 재밌고 독자들에게도 좋은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길든 짧든 결국 무얼 말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과정은 동일하다. 뛰어서 갈지, 마라톤하듯 갈지 차이는 있었다. 괴롭지만, 쓸 때 재밌는 건 장편소설이다. 오래 생각하고 필요한 만큼 인물을 등장시키며, 마음 가는 만큼 분량을 할애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이 된 구절은 ‘우리가 헤이라고 부를 때’라는 소설의 일부다. 현재의 두 사람이 대학 시절 만났던 강사를 회상한다. 그는 토론 수업을 하던 중 학생 한 명이 왜 우리가 해고된 노동자를 도와야 하느냐고, 자기가 열심히 했으면 안 잘렸을 것 아니냐고 말하자, 강의실을 나갔고 그 뒤로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 해고되고 만다. 그 수업을 기억하느냐는 주인공의 말에 선배가 답한다. “당연하지.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지금까지.” 생각한다는 건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 이전의 상태다. 책에 실린 엽편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 있었던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과정과 닮았다고 느껴서 그 대사를 차용했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에는 대학 시절의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특이하고 괴짜인 선후배, 시간강사 같은 인물이 종종 나온다. 실제로 대학에 다닐 때 선배들의 무용담 같은 걸 자주 전해 들었고 몇 년 전 상가에 가서 그때 선배들의 모습을 봤다. ‘그런 유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록해두고 싶었다. “작가들이 특정 시기를 자주 쓰는 경향이 있긴 한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안 쓸려고 해도 그때가 재밌어요. 조용하게 학교를 다녔는데 졸업하고도 끝난 게 아니더라고요. 그때 만난 사람들이 겪었을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 대해 상상하고 그래서 계속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문장의 소리 YouTube 갈무리2017년 4월 팟캐스트 ‘문장의 소리’에 출연한 김금희 작가(왼쪽).

소설 속 인물을 그릴 때는 외양 묘사를 잘 안 하는 편이다. 대신 이런 식이다. ‘글을 쓴다고 한다면 써야 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지루하게 설명하다가 결국 본론에는 이르지도 못하는 사람.’ 사람들이 으레 그럴 것 같은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순간을 기억해두는 편이다. “대체로 저를 자극하는 사람들은 욕심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 못 챙기는 사람이에요. 실익으로 따지면 A의 행동을 해야 하는데 B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 그런 생각이 들 때 호감이 확 가더라고요.” 누가 어떤 선택을 할 때는 이면에 무언가 있을 거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그 사람 인생의 상당 부분이 그런 걸로 채워져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해명해주고 싶다. 〈경애의 마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공상수를 대할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인천 호프집 화재 사고로 친구를 잃고 국회의원 아버지의 백으로 입사한, 어떤 면에선 좀 괴짜이지만 자신만의 룰이 있는 인물. 앞으로 일상에서 누군가 그런 행동을 할 때 책을 읽은 독자라면 공상수를 떠올리고, 어떤 이면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금희의 소설에는 재난, 여성, 노동,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가 직간접으로 녹아 있다. 이런 것을 작가는 어떻게 그려낼까. “저랑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현실에 있잖아요. 그게 현실이라면 그런 사람이 어느 한편에 있다는 걸 가능한 한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건 현실에선 다른 곳에 서 있더라도 그 사람들이 읽었을 때 이해 가능한 정도로 그려내는 거예요. 그건 뭐라고 해야 할까, 이상한 얘기지만 정확하게 균형을 맞추면 가능할 것 같아요. 그래서 선명하게 이야기하는 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한 건 문학적으로도 아름답지 않고요. 예쁘면서도 복합적이면서도 중요한 얘기들을 잘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 고민이에요.”

결국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궁극적으로 문학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고 이걸 통해 이 사회가 어떻게든 흔들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잘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읽거든요. 글 자체가 좋고 흥미 있고 문학적으로 가치가 있은 다음에야 메시지가 마음을 울릴 수 있어요. 읽히지 않으면 답이 없어요. 소설은 사람들이 읽어서 좋고 재밌는 부분이 어쨌거나 있어야 해요. 소설이 이야기라는 형식을 띠게 된 데도 이유가 있잖아요.”

올해로 등단한 지 10년째다. 그동안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등을 탔다. 첫 책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2년 가까이 청탁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도 매일 나가서 글을 썼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매일 작업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마음이 많이 다쳤겠구나’ 싶다.

출판사 편집자 생활을 하던 어느 출근길, 파주행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다 심하게 넘어져 피를 흘리며 차에 올라탄 일화는 유명하다. 그때 사표를 쓰기로 결심했다. 중학교 때부터 작가를 꿈꿨고 대학에서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직장에 들어와서는 멈췄다. 회사를 그만둔 이듬해 등단했다. 첫 책이 나왔을 때 전 직장의 선임에게 감사의 이메일을 썼다. 교정 교열이 엄격하던 출판사였다. 편집기자로 일하며 기사도 썼는데 늘 시뻘겋게 칠해진 교정지를 받았다.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문장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걸 깨달았다. 문장이 이러면 안 되는구나. 소설에 필요한 대부분을 직장 생활에서 배웠다.

우울할 때마다 양말을 사 엄마에게 그만 사라는 경고를 받은 그가 최근엔 제주도 오름이 그려진 양말을 샀다. 김금희 작가는 최근 3개월을 제주 가파도에서 지냈다. 작가 레지던스에 머물며 〈경애의 마음〉으로 가득 채웠던 마음을 환기시켰다. 쉬고 싶었고, 다음 소설에선 제주도를 다루고 싶어 초청에 응했는데 마을 주민들은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도 들었다. 집집마다 노래방 기기가 있는 섬마을의 노인정에 도착하자 어르신들이 춤을 추며 그를 맞이했다. 작가에게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부르며 그 시간에 적응했고 빠르게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다.

섬은 다 돌아봐야 한 시간. 자연이 압도적으로 작가를 누르는 기분이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오랫동안 해녀 생활을 한 주민을 만났어요. 그들의, 좋게 표현하면 건강함, 낯설게 표현하면 단호함이나 비정함 이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고요. 막상 만나보니 삶이 깊고 복잡하고 당연히 그렇더라고요. 그냥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지금도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를 들어 관광객이 몰리면 그 영향을 받는 식으로요.” 제주도를 소재로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3개월로는 뭔가 쓸 만큼 알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섬에 일하러 들어왔던 외국인 노동자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잡혀가는 바람에 홀로 남겨진 유기견의 일화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김금희 작가는 늘 카페에서 글을 쓰는데 〈경애의 마음〉은 집이 있는 인천이 아니라 서울 합정동 근처에서 썼다. 창가에 앉아 고뇌하는 그를 본 작가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출간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또다시 카페, 그의 온 신경이 주변 어딘가를 향할 차례였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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