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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짚어낸 사회의 그늘

2018년 11월 26일(월) 제585호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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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신 지음, 글항아리 펴냄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재판 거래 의혹 문건이 공개된 후 어느 누리꾼의 한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로스쿨에 디자인 수업을 필수로!” 양승태 대법원은 진지하게 ‘사법 한류’를 운운하며 각종 ‘아래아 한글 레이아웃 스킬’을 발휘한다. 장평과 자간은 제각각이고 초록과 빨강이 맥락 없이 뒤엉킨다. 한반도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화살표 이미지는 필수. ‘엄근진(엄격·근엄· 진지)’의 표상인 사법부는 이 지점에서 스스로가 가장 ‘한국적’임을 선언한다. 누군가 ‘헬조선’의 미감(美感)을 물으면 법원행정처 법관들의 피·땀·눈물을 보여주리라.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세련된 감각과 ‘사법 한류’ 문건이라는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우리의 안목이 존재한다.

근대를 열어젖힐 기회를 박탈당한 한국은 차용과 변용을 자양분 삼아 성장했다. 산업이나 제도뿐 아니라 디자인도 베끼고 바꾸며 압축적인 역사를 밟았다. 삶과 가장 가까운 물건들, 예컨대 라면 봉지·그릇·책·소주·담배·약 봉투 따위의 디자인에서 우리 현대사의 일관성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평범한 물건의 역사를 훑으면서 가장 표준화된 삶의 변천을 설명한다.

대표적인 ‘헬조선 껍데기’의 역사가 여기 담겨 있다. 단순히 옛 디자인이 촌스러워서가 아니다. 물건을 포장하고 광고하는 방식이 여전히 헬조선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주 포장은 점차 부드러운 톤으로 바뀌면서도 여전히 젊은 여성을 내세워 성적 코드를 겨냥해 광고하고 있다. 라면은 커다랗고 자극적인 외피를 두르며 통각의 극대화를 자랑한다. 과자 포장은 질소로 가득 채워 ‘우람한’ 풍채를 뽐낸다. 저자는 내실보다 겉보기에 골몰하는 우리 사회의 그늘을 디자인 역사에서 짚어낸다.

유행은 빠르다. 한때 사랑받던 디자인이 찬밥 신세가 되거나, 하찮고 천대받던 디자인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차근차근 일상의 디자인사를 쫓다 보면, 어느새 이 물건의 역사가 우리의 민중사와 닮았다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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