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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2018년 11월 30일(금) 제585호
오수경 (자유기고가)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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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 고등군사법원 특별재판부(홍창식 판사)는 해군 성소수자 여성 중위(현재 대위) A를 성폭행한 혐의로 지목된 B소령에게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B소령과 같은 혐의로 기소된 C중령(현재 대령)도 얼마 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의 발단은 2010년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같은 함정에서 근무하던 B소령은 A중위가 부하이고 성소수자라는 점을 빌미로 “남자 맛을 알려주겠다”라며 위력을 사용해 수차례 성폭행 및 강간을 했다. 이 일로 A중위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중절수술까지 해야 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중위의 상관이던 C중령은 중절수술을 위한 휴가를 받으러 어쩔 수 없이 사건의 경위를 밝힌 그녀가 수술을 받고 돌아오자 ‘위로한다’는 구실로 자기 숙소로 유인한 뒤 강간했다. 결국 A중위는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고, 2016년에는 근무 이탈하여 징계와 전출 명령을 받게 되었다.
ⓒ정켈 그림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피해자가 근무하던 함정은 120~130명이 타는 곳이었으나 여군은 단 두 명이었다. 그나마도 선배 여군은 그해 5월 말 전역하여 여군이 A중위 한 명이 되었고, 9월 말 처음으로 성추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군대와 함정이라는 폐쇄된 구조에서 단 한 명의 여군이 성폭력의 표적이 되었다. 게다가 이 사건은 지위나 힘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남성 상관이 지속적으로 저지른 범죄였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었다. 1심 재판부가 B소령과 C중령에게 각각 징역 10년과 8년을 선고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1심 결과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진술이 피의자의 진술에 비해 신빙성이 부족하다”라는 게 이유였다. 성폭행 사건 때마다 등장해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바로 그 이유였다.

이 사건은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피해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셈이다. 우리 사회에는 위력과 힘을 사용해 끔찍한 (성)폭력을 저지른 죄보다 그것을 거부하지 못한 죄가 더 크다고 판단하는 사례만 켜켜이 쌓이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8월14일, 부하 여성 직원에게 기습적인 강제추행 5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무죄로 풀려나는 걸 보았다. 그때도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사용하지 않은 ‘죄’를 물었다.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저항하지 않고 무얼 했냐는 것이다. 감당하지 못할 위력과 힘 앞에서 얼마나 거부하고 저항해야 피해자는 무죄일 수 있을까?

법은 ‘강간 시스템’의 공모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

A중위는 평소 군인으로서 자긍심이 높았다고 한다. 그녀가 6년이나 이 끔찍한 사건을 밝히지 않은 것도 ‘자랑스러운 해군 장교’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을 것이라는 신뢰가 없었기에 밝히기를 꺼렸다. 즉 이번 판결은 자랑스러운 해군 장교가 되겠다는 어느 군인의 당연하고도 옳은 희망을 짓밟았음은 물론 군대 스스로 기강과 명예를 훼손했다. 그리고 법은 유죄라 인정한 사건을 무죄로 뒤집으며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더불어 우리는 이 사회가 여성이나 성소수자에게는 지옥과 같은 곳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A중위는 상고할 뜻을 밝혔다. 그리고 11월29일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 항소심 첫 번째 공판이 열리는 날이다. 우리는 법과 제도가 가해자의 대변자이자 ‘강간 시스템’의 공모자라는 오명을 벗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곳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끈질기게 지켜볼 것이다. 안희정 재판도, B소령과 C중령 재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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