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영 작가(45)의 을지로 작업실은 도시의 섬이다. 세운상가라는 큰 섬에 딸린 작은 섬이다. 10여 년 전 일군의 화가들이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로 작업실을 옮길 때 그도 이주 행렬에 동참했다. 공구상가 건물 계단 끝에 위치한 외진 작업실에 동료 작가들과 둥지를 틀었다.
다른 작가들이 다 떠난 뒤에도 외롭게 작업실을 지키고 있는 손 작가의 작품 주제는 ‘관계(between)’다. 그가 만난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 그가 걸었던 숲 그리고 그 숲과 자신의 관계를 끝없이 탐구했다. 을지로 작업실에서 10년 동안 붙들었던 관계에 대한 탐구를 담아낸 전시 〈In Between_Unclosed Landscape〉 (11월19일~12월1일)를 포월스갤러리에서 열었다.
점 하나하나를 찍어서 배경을 완성하고 그 위에 지그소 퍼즐(조각 그림 맞추기)을 겹쳐 그리는 손 작가의 작업 스타일은 농업적 근면성을 요한다. 하나하나의 점이 모여서 바탕을 만들어내고 흰 퍼즐로 여백을 채워가며 꼴을 잡아간다. 한 점 한 점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형태가 허물어진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그림을 추상과 구상의 결합체로 설명한다. 무한의 점을 찍어나가는 작업은 추상이고, 그 위에 퍼즐로 형태를 잡아나가는 작업은 구상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이 결합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작위와 작위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무작위의 점 위에 작위의 결정체인 퍼즐이 형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얼룩 같은 점이 만들어내는 무작위의 배경은 ‘무결점’이 아니라 ‘완전한 결점’을 구축한다. 원래 퍼즐은 맞출수록 형상이 선명해지기 마련인데, 손 작가는 퍼즐을 주로 여백에 오버랩시키기 때문에 형상이 모호해진다. 작위의 역설인데, 대체로 가까이서 보면 형태가 분산되고 멀리서 보면 수렴된다.
손 작가의 작업 방식은 그대로 주제 의식으로 재현된다. 그의 그림 언어에서 퍼즐은 대상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을 뜻하는데 대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상반된 것이 대립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결합하는 관계, 손 작가의 작품은 이런 역설적 관계를 구현한다. 기법이 복잡하고 작업 과정이 지난한데 결과는 담백하다. 30여 색 물감으로 찍고 수천, 수만 개의 퍼즐로 형태를 잡은 그림은 마치 스케치나 실루엣처럼 보인다. 담백한데 계속 들여다보면 깊이감이 느껴져서 숲이 점점 울창해 보인다. 더하고 더한 것인데 빼고 뺀 것 같은 ‘복잡한 단순함’이 있다. 손 작가는 “사람을 이해할 때 그 사람의 본질은 해체된 채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재구성해서 본다. 나를 감동시킨 명작을,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을, 그리고 나의 기억을 지배하는 공간을 해체한 후 퍼즐을 맞추듯 재구성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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