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목소리 명령으로 집안의 가전제품을 작동시키는 서비스 광고 경쟁이 한창이다. 기본적인 사물인터넷 원리와 목소리 인식 기술이 결합된 것일 텐데, ‘혁신 성장’의 핵심 목표인 ‘4차 기술혁명’의 미래가 실감난다. 이 편하고 아름다운 멋진 신세계가 KT 화재처럼 예기치 않은 아주 작은 사고 하나로도 마비될 수 있다는 건 그저 비약에 불과할까?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다. 현재 인류 사회에 축적된 데이터는 1년에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즉, 신이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명령한 이래 2017년까지 인류가 쌓은 데이터를 2018년 한 해 동안 또 쌓았다는 것이다. 10년 안에 전 세계에는 1500억 개 센서가 연결되고 이제는 12시간 만에 데이터가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 어마어마한 빅데이터를 인간에게 유용한 정보로 바꾸는 건 인공지능이다.
아마존·구글·페이스북이 뭘 했기에
실리콘밸리의 스타 혁신가들은 이 기술이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설파한다. 독일의 ‘산업 4.0’ 등 각국 정부 역시 경쟁적으로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위원회’ 역시 그 일환이다.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현재의 사회 시스템, 특히 규제가 이미 낡아버린(혹은 낡아버릴)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규제 완화가 ‘혁신 성장’의 고갱이가 된다.
하지만 이 기술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다. 현재 세계 최고 부자 상위는 아마존·구글·페이스북 등 디지털 플랫폼이 차지하고 있으며 바이두와 알리바바 등 중국 기업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과연 이들 기업은 무엇을 했기에 이토록 거대한 부를 쌓는 것일까? 세계경제포럼이 스스로 선언했듯이 ‘자산(asset class)’ ‘새로운 석유’로서의 정보를 축적했기 때문이라면 그건 디지털 자산의 소유에 기초한 지대일 테다(논쟁 중이지만). 그런데 그 데이터 대부분은 각 개인이 플랫폼에 제공한 것이다.
알라딘이나 아마존에서 책을 구입하면 당신이 흥미를 가질 만한 책 목록이 제시된다. 당신이 사는 화장품 정보는 당신의 피부가 어떤 종류인지 알려준다. 이들 기업은 말하자면 ‘데이터 필터’를 만들고 있으며 어느덧 나는 이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된다. 내비게이터가 길치를 양산하는 것처럼 어느덧 난 세상에 대한 판단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작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그리고 캐스 선스타인은 아이들의 급식이나 노후 연금제도 실험에서 이미 놀라운 성과를 보인 ‘넛지(옆구리 슬쩍 지르기)’를 “자유지상주의적 가부장제(libertarian paternalism)”로 분류했다.
경제를 넘어 정치에서도 빅데이터를 이용한 ‘빅 넛지’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들 기업은 특정 집단에 선거 불참을 유도하는 정보를 배포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사회 실험을 한 바 있다. 그들이 현실 정치에 얼마나 개입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며, 그들이 사용한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는 한 막을 수도 없다. 적어도 어느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 후보도 이들 기업이 요구하는 바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자유지상주의 가부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자비로운 독재자가 될 수 있다. 영국의 한 연구는 트위터에 쌓인 데이터를 이용해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떤 상태인지를 7가지로 구분해서 각각 대응할 수 있다고 발표했고, 싱가포르는 데이터에 기초한 ‘사회적 실험실’을 천명했으며, 중국은 ‘시민 점수매기기(citizen scoring)’를 통해서 거주와 교육, 해외여행 등 여러 사회적 기회를 차별하려고 한다.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이 소멸한다면 민주주의는 뿌리째 흔들린다.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 낙관론자 리프킨과 뱅클러가 ‘디지털 코먼스’를 거론하고 있듯이 기술은 신뢰와 협동의 원리를 따를 때 비로소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낙관론과 비관론을 모두 검토해서 디지털 사회가 안정적으로 번영할 수 있도록 하는 법과 규범 자체를 새로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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