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었고, 대설이 지났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셈이다. 내 오랜 습관 중 하나, 겨울이 오고 눈이 쌓이면 집을 나설 때 반드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러고는 다음 3곡 중 하나를 감상하면서 천천히 눈길을 밟는다. 눈을 맞이하는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이다.
누드(Nude) (라디오헤드, 2008)
춥다. 냉기가 밀려온다. 야호. 풍악을 울려라. 그렇다. 겨울이다. 겨울이라면, 마땅히 추워야 하지 않겠는가. 각자가 꼽는 최고의 계절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중에서도 ‘여름이냐 겨울이냐’는 인류가 끝내 풀지 못한 난제 중에 하나라고 할 만하다. 오죽하면 이말년 작가와 주호민 작가가 ‘침펄 토론’에서 이걸 갖고 46분 동안 논쟁을 펼쳤겠나. 그래서일까. 내가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고 신해철이 어떤 인터뷰에서 “겨울이야말로 계절의 왕”이라고 고백했을 때 느꼈던 묘한 동질감을 잊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 곡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무조건 폭설이 내린 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폭설이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날, 막 현관문을 나선 내 귀에는 서늘한 냉기가 내린다. 그 냉기의 이름, 바로 라디오헤드의 걸작
〈인 레인보우(In Rainbows)〉에 수록된 발라드 ‘누드(Nude)’다.
오이스터(Oysters) (미셸 은디지오첼로, 2011)
엉뚱하게도,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떠올린 건 굴튀김이었다. 나는 굴튀김을 대단히 좋아한다. 애정의 정도로만 따지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겨룰 수 있을 정도다. 하루키가 누군가. 굴튀김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은 단 하나의 인물 아닌가. 그가 주장한 ‘굴튀김 이론(애정하는 사소한 것에 대해 쓰는 행위를 끝까지 밀다 보면 결국 저 자신에 대해 쓰는 것에 거의 육박할 수 있다)’은 이제 너무 자주 언급되어서 식상할 지경이다. 그래도 괜찮다. 여러분은 대신 이 곡, 미셸 은디지오첼로의 ‘오이스터’를 꺼내 들으면 된다. 기실 이 곡은 사랑 노래다. ‘모두가 세상의 변화를 말하죠/ 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죠/ 대신 당신은 내 앞에서 얼마든지 변해도 돼요’라는 가사를 보라. 눈 오는 밤 조용히 혼자 이 곡을 들어보길 권한다. 날이 춥다고 굳이 방 안의 온도를 올리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참고로, 은디지오첼로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새처럼 자유롭다’는 뜻이라고 한다.
인 하모니(In Harmony) (아우스게일, 2014)
아이슬란드를 동경한다. 오해 말기를.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루기 훨씬 이전부터 아이슬란드 여행은 내 버킷리스트였다. 아이슬란드 출신 음악가·밴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은 시우르 로스(Sigur Ros)와 오브 몬스터스 앤드 멘(Of Monsters And Men)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아우스게일도 만만치 않다. 이 곡 ‘인 하모니’가 수록된 앨범 〈인 더 사일런스(In The Silence)〉로 아이슬란드 차트 2위에 올랐고, 한국에서도 아이슬란드 관련 예능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인기를 모았다. 아우스게일의 음악은 아이슬란드의 풍광을 꼭 닮았다. 특히 혼 섹션과 함께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이 곡의 후렴구는 눈 내린 아이슬란드 대자연을 원경으로 잡은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먹먹하면서도 벅찬 광대함이다. 시우르 로스도, 오브 몬스터스 앤드 멘도 다 훌륭하다. 하나, 나에게 아이슬란드 최고 뮤지션은 아우스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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