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계, 사라진 창, 사라진 문… 사라진 거울 앞에 두 손과 발을 모으고 앉으면 되살아나는 공포, 수치심, 굶주린 얼굴들, 썩은 콩깻묵 냄새, 설사, 벌거벗은 등짝을 후려치던 가죽 채찍, 하늘이 노래지도록 퍼 담아도 줄지 않던 석탄….
가마이시 제철소로 징용 끌려갈 때 나이가 열일곱,
올해 아흔다섯.
쇳덩이 같은 얼굴을 들고, 사라진 거울을 말끄러미 응시하며 울먹인다.
“나 혼자… 혼자 남아…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다….”
-
늦은 악수
늦은 악수
사진 신웅재·글 은유(작가)
11년 전엔 괴담이었다. 국내 일류 기업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람이 죽고 병을 얻었다는 외침은 ‘말’이 되지 못했다. 듣는 사람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말’의 형태를 얻었다. 삼성 직...
-
동료가 떠난 자리
동료가 떠난 자리
사진 윤성희·글 전혜원 기자
3월31일 밤, 서울 이마트 구로점 24번 계산대에서 일하던 계산원 권 아무개씨(48)가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지나던 고객이 심폐소생술을 했다. 10여 분 뒤 병원으로 ...
-
하늘 나는 노동자, 땅에서 정의 외치다
하늘 나는 노동자, 땅에서 정의 외치다
사진 신선영·글 박민정(소설가)
촛불을 든 어나니머스(anonymous)…. 작자 불명의, 개성 없는, 이름을 모르는,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당당하면 가면을 벗으라’는 말은 얼마나 나이브하고 폭력적인가. 그들...
-
여기까지 4년
여기까지 4년
사진 신선영·글 신철규(시인)
하늘이 파란 5월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듯 옅은 구름이 게으르게 흩어져 있다. 배는 침몰된 상황과 마찬가지로 왼쪽으로 누운 채로 인양되었다가 4년 만에 드디어 바로 서려고 하는 ...
-
선연리의 비극을 아십니까
선연리의 비극을 아십니까
사진 이재각·글 고재열 기자
평택시 대추리와 성주군 소성리를 기억하는 사람도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는 알지 못한다. 선연리도 올여름 여섯 마을을 미군 기지로 내주었다. 대추리와 소성리처럼 울부짖지 않았기 때문일...
-
전선과 전선
전선과 전선
사진 장성렬·글 손아람(작가)
그들은 무채색 옷을 즐겨 입는다. 때로 경찰처럼 입는다. 경찰을 기다리지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대신 경찰의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표정에 익숙하다. 말이 적다. “씨발” “...
-
굴뚝 위의 절실함 오체투지의 간절함
굴뚝 위의 절실함 오체투지의 간절함
사진 정택용 글 이창근(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기획실장)
달과 별이 방향을 잡는다. 지쳐 있는 등을 바람이 밀어 세워 하루를 버티게 한다. 폐까지 밀고 들어오는 연기는 더 큰 호흡의 중요함을 일깨우고, 절망을 비워낸 그 공간만큼 내일의 ...
-
강제징용과 원폭 피해자 유족의 끝나지 않은 싸움
강제징용과 원폭 피해자 유족의 끝나지 않은 싸움
정희상 기자
“승소했다고 한국에 있는 일본 전범기업 자산을 강제 매각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아베의 진정 어린 사과다.” 강제징용 피해자 14명이 낸 소송의 박상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