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유럽뿐 아니라 북미에서도 주목되는 가장 핫한 작가 바스티앙 비베스의 신간이 나왔다. 한겨울에 읽는 우리의 ‘뜨거운 여름’ 이야기. 누구나 통과했을 10대의 추억이 담겼다. 열세 살 앙투안은 어린 동생 티티 그리고 부모와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러 브르타뉴의 바닷가 별장으로 떠난다. 떠나는 길에 앙투안의 엄마는 친구 실비가 유산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도 앙투안을 낳기 전 유산한 경험이 있었음을 처음 알게 된다.

〈누나〉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김희진 옮김, 미메시스 펴냄

많은 가족의 풍경이 그렇듯, 부모는 늘 일로 분주하다. 엄마는 무얼 먹을까 걱정하며 장을 보러 나가거나 아빠는 고장 난 무언가를 고치고 바비큐 불을 지피느라 바쁘다. 남겨진 아이들은 그들만의 이야기와 추억을 만든다. 아이들은 다음 날 우연히 해변에 나갔다가 60유로를 줍게 된다.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고 공모한다. 그렇게 아이들만의 비밀이 생겼다. 이튿날, 엄마 친구 실비와 그녀의 딸인 열여섯 살 엘렌이 휴가지에 동참하면서, 앙투안의 가슴 설레는 시간이 찾아온다.

‘누나’인 엘렌은 거침없이 행동한다. 어른들은 무심하게 셋을 같은 방에 묵게 했는데 엘렌은 거리낌 없이 앙투안 앞에서 속옷을 갈아입는 등 ‘도발’한다. 엘렌은 앙투안에게 키스해본 적이 없으면 가르쳐주겠다며 입을 맞춘다. 자신이 어울리는 친구들에게 앙투안을 데려가 담배나 술 등 금기시되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섬세한 감정 그려낸 아름답고 절제된 선

우리는 누구나 사춘기 시절 ‘그해 여름’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도 교회 수련회를 떠났던 그해 덕적도 여름이 떠올랐다. 성경 공부나 행사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밤이면 쏟아지던 별, 공동 텐트를 빠져나와 남자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며 어울렸던 여름밤의 향기, 우연히 스치던 손끝, 그 떨림의 시간이 지금까지도 생각난다. 때로 부끄럽고 후끈거리지만, 돌이켜보면 사랑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가르쳐준 달콤하고 소중한 기억들. 아무 일도 없었지만, 모든 일이 있었던 그해 여름의 추억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된 것이다.


바스티앙 비베스는 섬세하게 그 추억을 돌아본다. 그리고 어쩌면 이 작품을 통해 자신에게 있었던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엘렌이 떠나기 전날 밤, 앙투안은 누나가 이끄는 대로 다른 형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낸다. 바다를 헤엄쳐 다른 곳으로 가자고 종용하는 형들을 따라 웃통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려다 용기가 안 나 포기한다. 앙투안은 말한다. “나는 커다란 짐 덩이일 뿐이야. 난 아무 데도 낄 자리가 없어. 누나 혼자 놀게 두고 갈 걸 그랬어.”

이튿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실비네 가족이 먼저 배를 타고 휴가지를 떠날 때 앙투안은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아침 신문 안 보셨어요? 젊은 애들 셋이 어젯밤 헤엄쳐서 포르블랑에 가려다가 익사했어요. 열일곱 살 어린애들이랍니다.” 앙투안은 떠나는 엘렌을 향해 소리친다. “누나!” 그 목소리에 엘렌이 고개를 돌리면서 이 책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그해 여름의 기억은 이 마지막 컷처럼 누구나의 가슴에 영원히 박제되어 있을 것이다.

〈염소의 맛〉으로 2009년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올해의 발견 작가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작가 바스티앙 비베스는, 이후 2015년 공동 작업한 〈라스트맨〉 시리즈로 ‘최고의 시리즈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 〈폴리나〉는 쥘리에트 비노슈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아티스트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비베스의 신작 그래픽노블 〈누나〉는, 특유의 아름답고 절제된 선으로 소녀와 소년의 섬세한 감정을 그려냈다. 

기자명 김문영 (이숲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