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고역이지만 손발을 맞추는 동료가 있고, 노동요가 있다. 거기에 비해 독서는 홀로 하는 고독한 노동이랄 수 있다.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이 손발을 맞추듯이 책을 읽으며 입을 맞출 수는 없을까. 문학평론가이면서 출판기획과 출판평론을 겸하는 장은수의 〈같이 읽고 함께 살다: 한국의 독서 공동체를 찾아서〉(느티나무책방, 2018)는 독서의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지은이가 전국에서 활동하는 24곳의 독서모임을 탐방하고 쓴 결과물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은 독서 공동체를 이루어 같이 책을 읽으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모임이 이루어졌는지, 같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인지, 어떻게 모임을 진행하는지 등등. 현장 인터뷰를 통해서 이 책은 독서 공동체의 속살을 속속들이 펼쳐놓습니다. 한국의 독서 공동체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는지를 알고 싶은 모든 이에게 훌륭한 정보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지영

〈같이 읽고 함께 살다〉에서 다룬 독서 공동체는 적어도 3년 이상 같이 모여 책을 읽어온 곳들이다. 제주 남원북클럽은 2011년 4명이 처음 시작한 뒤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같이 책을 읽는다. 그사이 회원이 상당히 늘어 30대부터 70대까지 매번 10명 넘게 참석하고 있다. 이들이 집중해서 읽는 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제주’에 관한 것이다. “문화에 대한 고민 없이 지역은 성숙하지 못한다. 자기 삶을 스스로 주체로서 기록하지 못하는 세계는 반드시 사멸한다. 독서 공동체는 책을 넘어서 문화의 넓이와 깊이를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중요한 진지로 성숙할 수 있다.”

보령 책익는마을은 절친한 친구 세 사람이 서로 책을 선물하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모임이 조금씩 커지더니 결국 국내 최대의 자발적 독서 공동체 중 하나가 된 경우다. “‘책익는마을’은 현재 활동 회원만 50명에 가깝다. 회원의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청소년 독서모임 회원도 중학생과 고등학생 각각 두 모둠씩을 이루어 스무 명 넘게 별도로 있다. 한 해에 한 번씩 인문학 축제를 열고, 분기별로 저자 초청 토론회도 한다. 이 행사들은 비회원도 참석할 수 있다. 겨자씨만 한 책 선물이 지상에 떨어져 어느새 거대한 뿌리를 뻗은 셈이다.”

원주 그림책연구회는 2004년 여름, 어린이 그림책을 좋아하던 이들이 그림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뛰어넘어 더 큰 꿈을 그렸다. 바로 원주를 어린이 그림책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어린이 그림책을 모은 도서관이 있고, 그 주변에 대학, 숙소, 공원, 마을 등을 꾸며 어린이 그림책 세상을 만들고, 해마다 어린이 그림책 전시회를 겸한 축제가 열리는, 그야말로 그림 같은 도시. 지역 역사 인물을 하나씩 그림책으로 출판하고, 그림책 교실과 아트북 교실 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함께할 시민을 모으는 중이다.”

이 책에 소개된 독서 공동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1985년 처음 시작되어 무려 30년 동안 매주 목요일 책읽기를 이어온 홍동 할머니 독서모임이다. 이 독서모임의 고정 회원 다섯 명은 불혹의 나이에 시작해 어느덧 칠순을 모두 넘겼다. “〈토지〉는 참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박원순의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도 괜찮았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좋은 말이 있는 것만 읽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내촌감삼 전집〉을 다시 읽기로 했습니다.”

친교 공동체에서 시민 공동체로 발전

독서 공동체는 교육철학자인 파울루 프레이리가 말한 프락시스(praxis)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프락시스는 성찰과 이론이 부재한 행위(action)와 차별화하기 위해 프레이리가 의식적으로 애용한 용어로, 말과 실천이 일치되는 사고와 행동의 총합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프레이리는 〈페다고지〉(그린비, 2002)에서 말과 행동이 이분화되어 있을 때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말에서 행동의 차원이 제거되면 성찰도 사라지고 말은 한가한 수다, 탁상공론, 소외적인 ‘허튼소리’가 되어버린다. 이런 공허한 말로는 세계를 비판할 수 없다. 반면 행동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성찰이 부족할 경우, 말은 행동주의(activism)로 전화된다. 행동주의-행동을 위한 행동-는 참된 프락시스를 부정하며,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독서 공동체가 프락시스라는 것은 앞서 살펴본 모임 이외에도 서울 상경다락방, 청주 북클럽 체홉, 인천 마중물, 서울 보라매독서동아리의 사례로도 알 수 있다.

장은수 지음, 느티나무책방 펴냄
소박하게 시작한 독서모임은 독서 공동체로 발전하고, 독서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그 지역과 밀접한 연계를 맺거나 더 큰 사회문제를 고민하면서 사회운동으로까지 발전해나간다. 처음에는 ‘친교의 공동체’나 ‘학습의 공동체’로 시작했다가 ‘시민의 공동체’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독서 공동체는 대부분 이런 진화 과정을 밟았다. 그래서 장은수는 책 읽는 사람들의 연대가 민주주의 가치를 육성하고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독서 공동체는 삶을 함께 나누는 시민 공동체다. 책을 통해 일터와 삶터의 여러 문제들을 함께 성찰하고, 깊이 있게 논의함으로써 ‘깨어 있는 시민 되기’를 추구한다.” 또한 자발적인 독서 공동체는 모바일 혁명 이후 위기에 빠져든 책 문화를 지켜주는 단단한 보루가 된다. 독서 공동체는 “같이 읽기에 적합한 책을 고르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양서와 악서를 가려내고, 좋은 책이 널리 알려지고 보존되는 데 영향을 끼침으로써 양서가 꾸준히 출판될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름 붙인 독서 공동체를 나는 ‘사회적 독서’라고 말해왔으며 그런 모임을 두 번 꾸린 적이 있다. 사회적 독서는 앞으로 좀 더 다듬어져야 할 개념인데, 반갑게도 전주 북세통의 어느 회원이 사회적 독서의 한 면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함께 모여 읽는 재미가 우선이지만, 책은 주로 인문·사회과학 쪽의 교양서를 읽습니다.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 관계를 만들려고 애쓰면서 살아가는 ‘생각하는 시민’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한 해에 4~6권 정도 사회적 이슈와 연결된 책을 읽습니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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