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비었고 객석의 열기는 식었다. 감동과 흥분의 한 해였던 것은 맞는데 무엇이 남았는지 조금 허탈하다. 남북 접촉은 계속되고 있지만 북·미 관계의 진전 없이는 힘을 받기 어렵다. 북·미 관계는 자신들의 선행 조치에 대해 미국이 상응 조치를 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북한의 고집에 막혀 있다. ‘어어’ 하는 순간 북한은 스스로 채권자가 되었다. 미국은 빚진 게 없다고 하니 ‘셀프 채권자’인 셈이다.
북한의 태도에 의문을 갖게 된 요인 중 이 문제의 비중이 결코 작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분명히 그랬다. ‘미국과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처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억류 미국인을 석방하겠다.’ 선심 쓰듯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 당시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 발표도 같은 맥락이었다. 만약 조건을 걸었다면 미국이 받을 건지 말 건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놓고 나중에 가서 상응 조치 운운하는 것은 누가 봐도 억지다. 미국 측 항변이 틀린 얘기가 아니다.
미국이 상응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는 주장도 수긍하기 어렵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언제든 재개할 수 있기 때문에 상응 조치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미사일 엔진 시험장 역시 마찬가지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이미 내구연한이 다해 북한 내부적으로 대체 실험장을 물색 중이었다. 미사일 엔진 시험장이라는 것도 사실은 콘크리트 거치대에 불과하다.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시키기 위해 그동안 그토록 노력해온 북한이 미국의 중단 조치에 대해 한마디로 폄하해버리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15년 1월9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했던 말은 그럼 뭐였나. 국내 전문가들은 왜 이런 명백한 사실에 대해 침묵하는가?
억지 주장을 통해 북한이 얻는 것은 평판의 훼손, 즉 신뢰감 상실뿐이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서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을 얘기하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 한 사람뿐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마저 돌아서면 미국 전부가 돌아설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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