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나서〉를 읽는 데 별도의 목적이 필요하진 않다. 채식을 하려고, 동물권을 신장하려고 ‘이걸 읽어보라’ 권하고 소개하는, 그런 수단으로 쓰이기엔 아쉽다는 뜻이다. 이 책은 그 자체로 완전한 목표다. 양계장에서 돼지 농장으로, 그리고 개 농장으로 이어지는 한승태의 여정을 독자가 끝까지 따라가며 완독하는 것. 그것만이 이 책이 받아야 할 정당한 대우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읽기 노동’을 마친 독자들이 저마다 갖는 여운 역시 온전히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읽기 노동’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맞서고 저항하고 애쓰며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닭, 돼지, 개 세 동물종이 ‘고기로 태어난’ 죗값으로 사육되는 과정을 담아냈다. 한승태는 산란계 농장부터 종돈 농장, 비육 농장, 개 농장 등등을 오가며 그곳의 일을, 일하는 사람들을, 일하는 환경을 기록했다. 나의 경우는 이랬다. 돼지 농장을 읽으면서부터 확실하게 두려움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자돈(새끼 돼지)들을 한 놈씩 들고 니퍼로 생니를 자르고 고환을 잡아 뜯는 장면에서다. 개 농장에서 첫 번째 개가 ‘개고기’가 되는 대목에서는 눈에서 물이 흘렀다.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이미 예고된 비극 앞에서 페이지 넘기는 게 머뭇거려졌다. 하지만 이 모든 사태가 나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코 읽기를 피할 순 없었다. 중간중간 책 뒷면에 적힌 “당신과 고기 사이에, 한 번쯤은 놓여야 할 이야기”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컨테이너로 된 숙소에서 많은 밤을 서성인 작가에게 감사했다.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펴냄


이 책에는 무언가가 묻어 있다. 병아리들의 털뭉치, 돼지들의 똥따까리, 개들의 울음. 치명적이진 않지만 자꾸 기침을 일으키고 못 견딜 정도는 아닌데 여기저기가 간지럽다. 어떤 생명들은 살고 죽는 일이 딱 그 정도로 취급된다. 하지만 먼지 같고, 얼룩 같고, 메아리 같은 이 가볍고 별것 아닌 것들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안에 쌓여 어떤 무엇이 되었다. 심연에 있던 묵직한 돌이 조금 자리를 바꾼 느낌. 힘없는 죽음이 기록을 통해 두 번째 생명을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독자를 ‘웃프게’ 하는 작가의 글맛도 꿀맛이다. 

이 책은 다른 의미의 산 무덤이다. 고발문이자 추도글이다. “동물을 죽이려면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하는 그들의 품속에서 목숨이라는 것을 폭력을 써서 빼앗아야 한다.” 이 문장은 상식에 최선을 다해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나는 이 책이 아주 많이 팔리길 바란다. 그래서 고기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끝내 고기로 죽어간 단명의 무덤 앞에 더 많은 독자들이 변화의 꽃을 한 송이씩 올리길 바라본다. 

기자명 김다은 (CBS 라디오 PD·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 제작)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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