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별이 방향을 잡는다. 지쳐 있는 등을 바람이 밀어 세워 하루를 버티게 한다. 폐까지 밀고 들어오는 연기는 더 큰 호흡의 중요함을 일깨우고, 절망을 비워낸 그 공간만큼 내일의 시간으로 채워 간신히 균형을 맞춘다. 겨울나무처럼 휘었던 시간. 뿌리가 들썩이고 나뭇잎마저 모조리 떨어져 가지까지 부러진 시간. 그러나 뽑히지 않는 뿌리 부여잡고 악착같이 버텨온 시간이었다. 별처럼 하늘에 박힌 굴뚝 노동자들의 하늘 좌표도, 몸뚱아리 하얀 백묵 삼아 검은 아스팔트 위에 써 내려가는 글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우리는 굴뚝 아래에서 400일을 살아가고 있구나. 눈물이 내장 가득 고였던 시간. 굴뚝은 소리 없는 마음의 번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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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고 평평한 세계로
환하고 평평한 세계로
사진 이명익·글 박서련(소설가)
가끔 코아리빙텔 317호를 생각한다. 2평 남짓, 기본 옵션 침대, 책상, 옷장. 317호의 문은 복도 끝의 비상구 문과 직각으로 만났다. 비상구 문 밖에는 딱 한 사람이 설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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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악수
늦은 악수
사진 신웅재·글 은유(작가)
11년 전엔 괴담이었다. 국내 일류 기업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람이 죽고 병을 얻었다는 외침은 ‘말’이 되지 못했다. 듣는 사람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말’의 형태를 얻었다. 삼성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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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는 노동자, 땅에서 정의 외치다
하늘 나는 노동자, 땅에서 정의 외치다
사진 신선영·글 박민정(소설가)
촛불을 든 어나니머스(anonymous)…. 작자 불명의, 개성 없는, 이름을 모르는,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당당하면 가면을 벗으라’는 말은 얼마나 나이브하고 폭력적인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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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낼 수 없는 강제징용의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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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용성·글 김숨(소설가)
사라진 시계, 사라진 창, 사라진 문… 사라진 거울 앞에 두 손과 발을 모으고 앉으면 되살아나는 공포, 수치심, 굶주린 얼굴들, 썩은 콩깻묵 냄새, 설사, 벌거벗은 등짝을 후려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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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4년
여기까지 4년
사진 신선영·글 신철규(시인)
하늘이 파란 5월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듯 옅은 구름이 게으르게 흩어져 있다. 배는 침몰된 상황과 마찬가지로 왼쪽으로 누운 채로 인양되었다가 4년 만에 드디어 바로 서려고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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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연리의 비극을 아십니까
선연리의 비극을 아십니까
사진 이재각·글 고재열 기자
평택시 대추리와 성주군 소성리를 기억하는 사람도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는 알지 못한다. 선연리도 올여름 여섯 마을을 미군 기지로 내주었다. 대추리와 소성리처럼 울부짖지 않았기 때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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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10년의 기록
쌍용차, 10년의 기록
이명익 기자
“30명이라는 소중한 목숨들이 세상을 등졌지만 공장 앞에서, 대한문 앞에서, 길거리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어줬던 국민과 연대해준 사람들 덕분에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길을 만들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