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째 고기를 구워온 집이다. 1979년 태능정이란 이름으로 창업해 지금은 ‘배갈비’라는 상호로 문을 열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다. 서울 교외에 갈빗집이 들어서면서 외식 문화가 꽃피던 시대의 산증인 같은 곳이다.
“한국 사람은 굽는 재미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웃음).” 이 집 김태형 사장은 돼지갈비 하면 한국인의 ‘구이 사랑’부터 떠오른다고 한다. 불에 굽고, 김치류·쌈거리·샐러드와 각종 반찬까지 너끈히 한상차림을 내는 고깃집은, 어쩌면 한국 요식업만이 가진 문화적 자산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돼지갈비는 아버지의 음식이에요. 힘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어른의 음식이죠. 잘 숙성한 양념 돼지갈비를 석쇠에 올려 구우면 양념의 맛과 향이 ‘캐러멜화’(당류가 열에 의해 변하는 현상)해서 진하게 올라옵니다. 잘 구운 갈비 한 점에 어른들은 소주 한잔 하게 되고, 아이들은 갈비 뜯는 재미에 빠져들었지요.”

 

ⓒ시사IN 조남진‘배갈비’에서 내는 돼지갈비는 다른 부위를 섞지 않고 오로지 돼지갈비만 쓴다.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돼지고기가 소고기와 어깨를 나란히 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적어도 조선시대 이후 1980년대까지, 한민족의 돼지고기는 소고기의 대체재였다. 예부터 중국에서 고기 ‘육(肉)’의 기본값은 돼지고기였다. 하지만 조선에서 고기란 곧 소고기였다. 구이든 찜이든, 불고기에서든 갈비에서든 소고기가 기본값이었다. 조선의 상류계층은 숯불 피운 화로에서 소고기를 구우며 술 한잔 기울이고, 여기에 표고버섯과 장국까지 곁들인 ‘난로회(煖爐會)’라는 식도락 유희를 일찌감치 완성했다. 최근 100년의 외식업을 통해 새로이 태어난 불고기 또한 소고기를 전제로 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대중식당의 기본 품목으로 떠오른 설렁탕, 냉면의 육수 또한 한국인의 소고기 선호와 잇닿아 있다.

 

해방이 되고도 그랬다. 한국전쟁 이후 신문에 광고까지 하면서 영업한 음식점의 불고기, 불고기와 나란한 품목이었던 스키야키(일식 불고기 전골), 갈비구이도 소고기가 기본이다. 1980년대 초반 신문 기사에서 한국인의 유난한 소고기 선호 때문에 양돈 산업과 돼지고기 음식 문화가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걱정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서민 대중은 소고기를 그리워하며 돼지고기를 먹었다.

부모가 고깃집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1972년생 김태형 사장의 잔잔한 설명을 뒷받침할 기록은 시원찮다. 소갈비나 소불고기 요리법이 시나브로 돼지고기로 건너갔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갖은 양념’은 돼지갈비와, 고추장 및 고춧가루 양념은 제육볶음과 손잡았다. “우리 집 돼지갈비와 소고기 양념은 별 차이 없어요. 비율의 문제, 숙성 시간의 문제예요. 부모님과 제가 내린 결론은, 돼지갈비는 사흘 이상 숙성해야 제대로 맛이 밴다는 겁니다. 과일은 오직 배만 써요. 그래서 우리 집 상호를 ‘배갈비’라고 한 것이죠. 간장·배·마늘·생강·후추· 설탕·술·참기름, 누구나 아는 양념입니다. 누구나 아는 양념으로, 은은한 단맛과 짭조름함을 돼지갈비의 맛에 조화시키는 거예요. 바로 이 양념이 캐러멜화의 열쇠죠. 그런데 양념이 전부라면 무슨 고기 음식이에요? 양념이 고기와 조화를 이루며 고기에 맛을 더해야지.”

돼지갈비는 손으로 주물러 잰다. 한 번 잰 뒤 다음 날 뒤집어가며 양념이 밴 정도를 확인하면서 사흘을 숙성시킨다. 첫 양념에서, 사흘을 지내며 관리하는 동안 ‘제사상에 음식 올리는 심정으로 작업해야’ 제대로 된다. “세심한 작업이죠. 간이 세면 겉돌아요. 단맛과 짠맛은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양념이 고기 맛을 덮으면 안 돼요. 양념을 너무 먹어서 고기가 아주 처져도 안 되고.” 직설이 이어진다. “결국 원육이 좋아야죠. 질 낮은 고기를 양념 맛으로 먹는 행태가 계속되면 ‘한국형 고깃집’의 미래는 없을지도 몰라요.”

 

ⓒ시사IN 조남진40년째 영업 중인 식당 내부에는 종사자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문구가 붙어 있다.

바비큐의 매력 완벽히 갖춘 한국 고깃집

 

이상한 말이지만, 돼지갈비는 오로지 돼지갈비만 쓴다. 돼지 갈빗대라는 게, 음식점에 가면 나오는 물수건쯤 되는 크기에 실제로 포를 뜨면 살은 얼마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돼지갈비라 하면, 갈비에다 다른 부위를 섞어 양을 푸짐하게 해서 내곤 했다. 돼지갈비란 곧 갈비라는 이름의 푸짐한 ‘돼지고기 양념구이’이기도 했다. 김태형 사장은 돼지갈비의 매력을 이렇게 정리한다. “불기운을 쐬면서 고기 색이 점점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짙어져요. 달큼하면서 고소한 냄새가 함께 어우러지죠. 바비큐의 매력을 한국 고깃집보다 더 잘 갖춘 데도 없을 거예요.”
고깃집의 다양한 반찬과 ‘사이드 메뉴’ 문제도 그렇다. 반찬 낭비만 타박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채로운 구성의 매력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를 연구한다. 이른바 ‘사라다’라는 한국식 샐러드 역시 한국 대중식당의 강점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1만원대 불고기 메뉴에도 반찬 가짓수는 비슷하다. 반찬 몇 가지 줄이면서 ‘마진’을 높여도 될 성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상차림은 손님들과 한 오랜 약속이기도 하다. 

대개의 한국 식당이 그렇듯 고깃집 역시 밥집과 술집 사이 어디쯤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밥집, 다른 이에게는 술집이었다. 어려서부터 식당에서 국물이 넉넉한 불고기를 접하며 커온 김 사장은 밥집에 주안점을 둔다. 불고기에 밥을 곁들여 점심으로 먹던 기억, 냉면 사리를 별도로 주문해 국물에 자박자박 익혀 먹었던 기억이 선하다. 반찬거리, 흰쌀밥, 냉면, 청국장 또한 고기 못잖게 살피는 이유다.

 

ⓒ시사IN 조남진고깃집의 다양한 반찬이 한국 대중식당만이 가진
강점이 될 수 있다고 김태형 사장은 생각한다.

요식업에서 장보기는 ‘사장님’ 재교육의 핵심이다. 요식업의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이성적이지만은 않다. 장을 보면서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특상품 미역 구하는 방법을 아세요? ‘산모 먹을 미역’이라고 하면, 건어물상이 바로 알아듣습니다. 내가 재료 보는 안목, 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거래처도 신경을 씁니다. 좋은 물건을 골라본 사람만이 정말 좋은 거래처를 고를 수 있죠.” 청국장은 자신과 지인이 함께 아는 믿을 만한 생산자로부터 받는다. 청국장에 쓰는 김치는 1년에 한 번, 겨울에 통김치를 담가 쓴다. 밥은 해남산 유기농 쌀을 받아 하루에 다섯 번 이상 짓는다. 이 밥을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면서, 그 쌀을 사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실제로 이 집에서 쓰는 쌀은 상시 판매되고 있다.

 

이 집 냉면에도 ‘옛맛’이 있다. 100%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사리를 직접 뽑고, 소고기 사태와 뼈만을 주재료로 육수를 낸다. 동치미는 한 방울도 섞지 않는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높이 쳐줄 만한 냉면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양념구이를 먹은 사람들이 익히 기대할 바로 그 냉면이다. 그 익숙한 것의 밑절미에서 품질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육수 맛에 제 기준이 있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버려요. 그것도 관리의 방법이라면 방법입니다. 냉면 못 팔아도 할 수 없죠. 급하게 육수를 내겠다고 분말, 조미료 농축액을 물에 풀 수는 없어요. 부모님 때부터 40년 업력인데, 그걸 생각하면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시사IN 조남진김태형 사장(위)은 지역 농산물을 식당에 올리는 등 음식문화 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음식 장사란 무엇인가’ 성찰해야

 

고깃집 사장은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한다. 길고 긴 노동시간, 지인들과 마음 편히 술 한잔할 시간도 없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을 대하지만, 사실 일하는 모든 시간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만하면 완벽하다고 자신을 속이면 결국 일을 망친다. 그래서 김 사장은 장사의 달인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사람들, 음식보다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사람들이 영 불편하다. 오히려 요식업 종사자들로 하여금 ‘음식 장사란 무엇인가’를 성찰할 수 있는 자리가 절실하다고 느낀다.

김태형 사장은 음식문화 운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다. 슬로푸드, 로컬푸드 운동에 참여했고, 남양주 지역 농산물을 식당에 올리고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농업, 인류학, 경제학을 공부하는 자리에도 나간다. 심지어 고깃집을 운영하는 처지에 ‘육식 및 잡식 동물의 딜레마’까지도 화두라고 했다. 지속 가능한 고기 소비, 축산의 조건까지도 그는 고민한다. 꽤 거창하다고? 아니다. 돼지갈비 한 대에 깃든 요식업의 한 세상이 이만한 것이다.

기자명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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